코이네 신앙

신약성경의 정경화 과정 어떻게 이루어졌나?

코이네 2015. 6. 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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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정경화 과정

 

로마 제국 때 사이비 종교로 몰려 탄압받던 기독교가 4세기에 정식 종교로 공인된 이후(밀라노 칙령), 기독교의 교세는 폭발적으로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새로운 경전을 확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로마카톨릭 교회는 신약성경 후보에 해당하는 많은 복음서, 행전, 편지(서신) 등의 문헌들을 다음의 기준에 따라서 분류하였다.


 

1.사도로 인정되는 이가 직접 기록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이가 기록한 문헌.
2.성령의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고 믿을 수 있는 문헌.
3.다른 문헌들과 모순되는 내용이 없는 문헌.
4.믿음과 직제가 통합된 보편교회(Catholic Church)에서 사용되기에 적합한 문헌.

 

이에 따른 당시의 결론을 유세비우스의 분류에 따라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호모루구메나(경전성에 의심이 없는 문서)

   - 4복음서, 바울 서신, 베드로 전서, 요한 1서
2.안티레고메나(경전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서)

  - 베드로 후서, 요한 2-3서, 유다서, 야고보서
3.노타(경전성 인정은 어려우나, 잘 알려진 문서)

   - 베드로 묵시록, 요한 묵시록, 디다케, 바나바의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 등

 

키릴루스는 이 중에서 호모루구메나와 안티레고메나를 합쳐 26권의 목록을 만들었는데, 이는 현재의 신약성경 구성을 결정하는데 뼈대 역할을 하였다. 이에 아타나시우스는 키릴루스가 '노타'로 분류했던 요한 묵시록을 호모루구메나로 보아야 하며, 총 27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이 관철된 27권의 신약성서 구성은 382년 로마 공의회에서 확정되었다.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는 구약성경 목록과 더불어 27권을 신약정경으로 최종 인정하였다.

 

이러한 결정에 논란이 없지는 않았다. 일부 동방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일방적인 경전 확정에 반발하였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아포크리파와 신약성경의 안티레고메나가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트룰란 에큐메니컬 공의회(692)에서 동방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결정 일부를 수용하여 신약성경 목록을 공유하고, 구약성경의 아포크리파는 일단 정경으로 간주하는 개선된 태도를 택하였다.

 

신약성서와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재야의 신학자들이 기존 로마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경전들의 경전성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과정에서, 구약성경의 제2 경전 부분에서 강한 논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신약성경은 비교적 논란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다만, '오직 믿음'(Sola Fide)을 신봉하던 루터로서는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하는 야고보 서간을 "지푸라기"에 비유하고 불에 태우는 등 강도높게 비난하기도 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루터교를 포함한 개신교계에서 그 경전성이 부정되는 결과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다만 루터는 성경의 각 문헌 사이에 차등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식으로(Kanon im Kanon) 야고보 서간 등 그가 배척했던 일부 문헌의 영향력 약화를 유도하기 위한 시도를 했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