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혼인잔치와 결혼증서, 이스라엘 결혼풍습의 모든 것

코이네 2015. 11. 25.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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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결혼 예식, 결혼증서, 결혼예복, 결혼행렬, 결혼잔치 

 

 

유태인들은 아내를 갖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축복도 없으며, 선행도 쌓이지 않는다고 믿으며, 결혼을 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만일 딸이 이방인과 결혼할 경우 그 딸의 장례식을 치루고 딸이 죽은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현대의 유태인들은 이스라엘 랍비회의 결정에 따라 1950년에 공포된 혼인법에 의하여 결혼을 한다. 결혼식은 반드시 랍비(robbi: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이라는 뜻의 히브리어)가 집전을 해야 인정이 된다. 

 

1. 결혼 장소(후파)  

 

마당이나 회관등에 사방 2미터의 붉은 융단 가장자리를 수시로 엮어 내리고 네 귀퉁이를 장대에 고정시킨다. 요즈음에는 신랑의 친구들이 장대를 붙잡기도 한다. 이것을 후파(canopy)라하는데 이 아래서 랍비가 집전한다. 성경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결혼예식을 하는 주간에 거처하는 방을 일컫는다.  

 

(욜 2:16)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  

(시 19: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당시에는 아들을 낳으면 삼나무, 딸을 낳으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 나무를 베어서 후파를 받치는 장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전에는 기도숄(탈릿)을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펼쳐서 후파로 사용하기도 했다. 신랑과 신부의 머리 위에 기도숄을 덮는 것은 룻기 3장 9절과 겔 16장 8절에 근거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민간에서 후파는 결혼식 자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2. 결혼 의상  

 

결혼식 날 신부는 실제로 아름다운 여왕처럼 몸치장을 했다. 신부는 목욕을 하고 가족이나 이웃에게서 보석을 빌려 한껏 멋내 머리를 장식했다.그리고 신부는 베일로 얼굴을 가렸는데, 이 베일은 결혼식을 올리는 장내에 들어갈 때까지 벗을 수 없었다. 전통적으로 신부 베일은 겸손과 존경과 순결의 상징이었다. 베일은 참석한 사람들에게 신랑 신부가 결혼서약을 하고 결혼이 공식적으로 인정된 후에만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서약을 하고 남편과 아내가 됐음을 선언받은 후에야 베일을 걷을 수 있었다.

 

 화려하게 치르는 결혼식도 있지만, 대체로 신랑과 신부의 의상은 검소하다. 신랑은 흰 남방과 신부는 수수한 하얀 드레스를 입는다. 후파 기둥을 잡고 있는 신랑의 친구들도 평소의 남방 차림이다.  

 

 

이스라엘_신랑양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신부에게 향하는 신랑

 

이스라엘_신부야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후파로 입장하는 신부

 

 

3. 결혼 예식의 절차 

 

약혼을 하고 일년 후 랍비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르게 된다.  

 

1) 결혼서약과 혼인증서

 

이스라엘에서는 결혼을 할 때 신랑이 신부에게 히브리어로 '크투바'라고 부르는 '결혼계약서'를 준다. 옛날에는 결혼을 하려면 신부를 데려오기 위하여 신랑이 지참금을 내야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결혼하기도 어려웠다. 주전 1세기 랍비 시몬 벤 쉐타흐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하여 신랑이 지불해야할 금액을 결혼계약서에 기록하는 것으로 대신하도록 했다. 실제로는 돈을 지불하지 않지만 그렇게 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하지만 결혼할 때는 지불하지 않았지만 이혼을 하려면 결혼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금액을 남편이 아내에게 지불해야만 했다. 

 

유대인의 결혼계약서는 여성을 위한 제도이다. 고대사회에서 여성의 권리는 존중받지 못했다. 고대의 어느 사회나 남편은 아내를 쉽게 내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유대사회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남편이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내쫓으려면 결혼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던 금액을 남편이 아내에게 지불해야만 했다. 결혼할 때는 지불하지 않았지만 이혼을 하려면 큰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이 규정은 힘이 없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주후 10세기 랍비 게르솜은 아내의 동의가 없으면 남편은 일방적인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결혼계약서는 언제 어디서 신랑 아무개와 신부아무개가 결혼을 한다는 글로 시작된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지켜야할 의무, 주고받은 폐물의 명세가 기록되고, 신랑 신부와 증인들이 서명을 한다.  

 

크투바 맨 위에는 왕관이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는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왕관'이라고 히브리어로 쓰여 있다. 양쪽으로는 신랑과 신부의 그림이 있고 신랑신부 아래로 12개의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 크투바에서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티브는 예루살렘이다. 중앙에 산이 둘러싼 예루살렘의 전경(황금의 사원과 도시)이 그려져 있고 그림 위에는 시편의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영원히 너를 지키시리로다"는 구절이 기록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크투바에는 당시 이탈리아의 예술적인 성향이 그대로 들어있다.  

 

결혼계약서는 보통 달력 크기만 하며 전에는 양피지를 사용했지만 요즈음에는 종이를 사용한다. 하나님은 그 어떤 것보다도 결혼을 축복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는 종종 결혼에 비유된다. 유대인들은 결혼의 지속을 위하여 결혼계약서라는 관습을 지켜왔다. 가정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결혼서약

 

 

2) 서명: 친척이 아닌 두 사람이 증인으로 서명을 한다. 

3) 신랑신부가 술잔을 교배한다. 

4) 랍비가 결혼 서약서에 다시 서명한다. 

5) 신랑이 신부의 술잔을 밟아 깨뜨린다. 

6) 신랑과 친척, 친지들이 신부의 주위를 일곱 번 돈다.(옛날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고 점령했듯이 신부의 처녀성을 점령한다는 것을 의미) 

7) 15분간의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린다.  

 

 

 

 

 

 

식이 끝난 직후 신랑이 후파에서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찐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 찌로다"(시편 137:5)라는 성경말씀을 암송하면서 호일로 감싼 글라스를 발로 밟아 깨는 의식을 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인 결혼식 날에도 과거 선조들의 힘겨웠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여기까지의 절차가 모두 끝나면 신랑 신부는 키스를 한 후 비로소 부부가 됨을 선언하고, 파티를 열게 된다. 

 

 

 

4. 결혼 예복


또 이스라엘 결혼식에서는 결혼예복을 입는 것이 중요한 풍속이었다. 부잣집 잔치에는 손님들에게도 미리 준비해둔 결혼예복이 제공됐다(마태 22,12 참조).

 

 

5. 결혼 행렬

 

이스라엘 결혼식에서는 결혼행렬도 중요했다. 결혼행렬은 신부집에서 신랑과 신부, 두 사람이 살 새 집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어두운 길목은 결혼식 손님들이 들고 있는 등잔불로 밝혔다. 새 집에 도착한 신랑 신부는 작은 천막 모양의 차양 밑으로 들어간다.이 차양은 이스라엘 유목민 장막과 신랑 신부가 함께 살게 될 새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6. 결혼잔치

 

신혼집에 도착한 그들은 주로 먹고 마시는 일로 이루어지는 결혼잔치를 주관했다. 이 혼인잔치는 초대받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행사였다. 여기에 참석한 이들이 공식적으로 혼인 증인 역할을 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 장소도 가나지방의 혼인잔치에서였다(요한 2,1-12). 결혼잔치는 보통 7일간 지속됐으며 때로는 두 주간 동안 계속되기도 했다.

 

 


그리고 신부가 처녀라는 증거로 딸의 자리옷을 성읍 장로들에게 가져가 펴보이기도 하였다(신명 22,13-21 참조). 그리고 참석자들은 결혼잔치가 진행되는 동안 함께 춤을 추며, 축가를 불러주고, 또 하나님 축복이 부부에게 내리길 기원했다.

 

 

 

 

 

*사진은 이스라엘한인회 회장이신 이강근 목사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진 원문글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a9Rt&articleno=9554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