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왜 아브라함을 대인배라 할 수 있는가?

코이네 2011. 2.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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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3장, 조카 롯과의 갈등을 풀어가는 대인배 아브라함,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 13장입니다.


애굽에서 아브라함은 등에 식은 땀을 흘려야 할만큼 얼굴이 화끈거리는 수치스런 일을 겪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신기하게도 그런 부끄러운 아브라함의 편을 들어주시고, 아브라함의 약점을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 더이상 머물 수 없어 조카 롯과 아내 사라 그리고 가속들을 이끌고 다시 예전에 장막을 쳤던 벧엘과 아이 사이의 초원지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전에 이 초원을 떠나기 전에는 롯이나 아브라함의 식구들이 모두 살기에 넉넉한 곳이었는데, 시간이 지나서 다시 왔을 때 이곳이 좁아진 것이죠. 이유는 다른 게 아닙니다. 아브라함이나 롯 모두 이집트에서 올라올 때 재산이 엄청나게 많이 불어났던 것이죠. 자신들은 변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일단 물이 부족하여 물을 얻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고, 초원에 있는 풀이 부족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브라함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게 되고 이것이 점점 감정싸움으로 비화되어, 아브라함과 롯은 더이상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지경으로 번져간다면 우리 생각엔 당연히 조카가 삼촌을 찾아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러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삼촌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고개를 숙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롯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제가 만일 아브라함이었다면 속이 좀 상했을 것입니다. "이거 보라, 이제껏 먹여주고 키워주었더니 이럴 수가 있나?" 자존심도 상하고 속도 상하고, 그리고 롯의 이런 배은망덕한 행위 때문에 치를 떨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힘으로 누르는 것입니다. 본떼를 보여주는 것이죠. 다시는 이런 무례를 범치 않도록 제대로 교육시키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질 않습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조카를 사랑했기에 어떻게 하든 조카와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볼썽싸나운 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서 하나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추구하는 목적이 달랐기에 아브라함이 취한 행동도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촌인 그가 먼저 롯을 찾아갑니다. 윗 사람이 아랫 사람을 찾아가는 것이죠. 그리고 아주 좋은 말로 권면을 합니다. 너나 나나 한 가족이 아니냐? 가족끼리 이렇게 싸우면 안되니 이제 우리가 좋은 해결책을 논의해보자라며 윗 사람의 권위로 아랫사람을 가르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맛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안을 제시합니다. 여기 초원은 이제 우리가 거하기엔 좁다, 그리고 네 소유도 많아져서 이제 우리가 함께 다니기엔 어려움이 많이 따른다. 여길 떠나되 이제 우리 각자 갈 길을 가는 것이 좋겠다. 그렇게 제안을 합니다. 아브라함의 말은 아주 정확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그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확인하고 나름대로 고민하며 그 대안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보를 합니다. 네가 먼저 갈 길을 택하라는 것이죠. 당시의 목축은 자기 목장에서 양을 가두어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소유의 가축을 몰고 다니다가 초지를 발견하면 그곳의 초지가 다할 때까지 키우다가 먹이가 다하면 또 다른 곳으로 옮겨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목축을 하기 위해서는 정보가 중요하고, 또 먼저 선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를 조카에게 양보한 것이죠.

아브라함의 말을 들은 롯은 두 말 하지 않고 그 지역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 사방을 둘러봅니다. 그리고는 강이 흐르며 문화와 문명이 발달한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향해 자신의 소유를 이끌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삼촌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말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런 롯을 원망하거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고, 롯이 떠난 자리에 서서 이제 자신이 가야할 길을 정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해주십니다. 롯이 떠나간 자리에 하나님이 오신 것이죠. 그리고 롯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영안으로 아브라함은 축복의 땅을 향해 출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창세기 13장 14절)

제가 참 좋아하는 성경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눈에 무엇이 보였을까요? 세상의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이지만, 하나님의 눈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전이 나오는 것이죠.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비전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