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아브라함과 318 특공대

코이네 2011. 3. 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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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14장,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318특공대를 이끌고 나선 '아브라함', 그리고 멜기세덱과 십일조




창세기 14장입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는 우리나라의 단군왕검과 거의 같은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는 부족국가가 점점 발전해가는 그런 시기였고, 지역을 다스리는 강력한 부족이 주변 세력과 연합하여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아브라함도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한 부족의 족장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 당시 이런 부족국들의 세력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 주변에 있던 부족들이 강력한 연합전선을 형성해서 전쟁을 벌인 것이죠.


시날왕 아므라벨, 엘라살왕 아리옥, 엘람왕 그돌라오멜, 고임왕 디달이 한 편이 되었고, 소돔왕 라와 고모라왕 비르사와, 아드마왕 시납과 스보임왕 세메벨과 벨라왕이 또 한 편이 되었습니다. 아래 다섯왕은 대부분 팔레스타인의 남쪽인 사해 근처에 위치한 나라들이어서 이를 사해연합군이라고 지칭하기도 합니다. 당시의 패권자는 엘람왕 그돌라오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주변의 왕들이 조공을 바쳤는데, 소돔왕 편에 선 나라들이 배반을 한 것이죠. 팔레스타인 최초의 남북전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전쟁의 결과는 사해연합군이이 대패하고 맙니다. 그들은 모든 소유를 다 빼앗기고 많은 백성들이 사로잡혀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한 것이죠. 그런데 이 포로들 틈에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들어 있었고, 아브라함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앞 뒤 가리지 않고, 자신이 기르던 사병 중 318명을 거느리고 당시의 패권자인 엘람왕의 연합군과 전쟁을 벌이고는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오게 되죠. 개선장군으로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소돔왕이 맞이하며, 재물은 다 가지고 사람들은 돌려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에게 나누어줄 조금의 재물 외에 모두를 소돔왕에게 돌려줍니다. 그때 그가 소돔왕에게 이렇게 말했죠.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주 하나님께, 나의 손을 들어서 맹세합니다.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끈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소돔왕 사이에 어떤 숨어있는 속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재산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겐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살아간다는 말을 듣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재물만 많이 모으면 만사오케이라는 식의 사고를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죠.

그런 아브라함에게 아주 반가운 손님이 찾아옵니다. 이 분은 신비인으로 신약성경에도 알려져 있는데, 바로 살렘왕 멜기세덱입니다. 살렘은 아마 현재의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라 추정하고 있고, 또 멜기세덱이라는 말은 "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에서는 그를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죠. 살렘왕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아브라함은 살렘왕에게 전리품의 1/10을 예물로 바쳤습니다.

사람이 이리 달라질 수 있을까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브라함은 자기 한 목숨 살려고 비겁하게 자기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그 땅의 왕에게 바치는 속물이었는데, 지금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당시의 패권을 차지하던 북쪽 연합군과 당당하게 전투하여 승리를 거두는 개선장군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아브라함을 이렇게 달라지게 만들었을까? 아브라함을 보면서 사람은 분명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결벽증과 같은 신앙의 태도를 본받아야겠습니다. 그가 엄청난 재물을 전리품으로 얻어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을 자기 것이라고 말해도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없고, 또 소돔왕조차도 다 당신이 가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내가 소돔왕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기 싫다는 이유로 다 돌려주고 맙니다. 아브라함은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죠. 아브라함의 이 결벽증과 같은 신앙의 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남달리 보신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