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32;21] 야곱과 이스라엘

코이네 2017. 5. 30.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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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이스라엘

본문 : 창세기 32:21~28

2016.9.18.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우리는 점점 훌륭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고 있는 야곱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 처음 소개된 야곱은 형의 뒷다리를 잡고 세상에 태어난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야곱입니다. 야곱이란 말의 뜻이 발꿈치를 잡은 사람, 속이는 사람, 찬탈자그런 뜻입니다.

 

야곱에게는 쌍둥이 형이 있습니다. 야곱에게 발 뒷꿈치를 잡혔지만 야곱보다 먼저 태어나서 야곱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정말 부러운 인간, 바로 에서입니다. 야곱은 이 에서를 부러워합니다. 사내답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고, 그 무엇보다 아버지로부터 축복의 우선권을 갖고 있는 에서’, 야곱은 그것이 너무 부러워 에서가 갖고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약을 술수를 쓰기도 하고, 사기도 칩니다.

 

그러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거기서 20년을 살았습니다.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낼 땐 정말 혈혈단신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몸을 의탁했던 외삼촌 라반은 야곱보다 더 사기의 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기의 달인인 외삼촌 밑에서 정말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한 인생인데, 20년이 지났을 때 그는 아내가 넷, 딸이 하나, 아들이 열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식구들을 모두 건사하고 남을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모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많은 식구와 재산을 가지고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얍복강에 이르렀습니다. 이 강만 건너면 아버지가 계신 곳과 지척입니다. 그런데 형이 군사 400명을 이끌고 그를 죽이러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한 후 야곱은 또 다시 변화합니다. 이전까지 어떻게 하든 내 재물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으로 온갖 고민을 했는데, 기도한 후 야곱은 그것을 형에게 줄 선물로 바꾸어버립니다. 그리고 도망가지 않고 강을 건너기로 결단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무엇이 중헌디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는데, 기도 후 야곱은 무엇이 중한지를 알았고, 그 중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또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들로 먼저 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가족들을 따라 함께 가지 않고, 얍복 강변에 홀로 남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얍복강변에 왠 낯선 사람이 찾아와 그에게 시비를 걸고, 그 둘은 밤이 새도록 격렬하게 싸움을 하였습니다. 새벽이 오자 그 사람이 이제 그만두자고 해도 야곱은 막무가내입니다. 도저히 안되어 그의 환도뼈를 쳐서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도록 해도 야곱은 그 사람을 붙잡고 축복해주기 전에는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야곱에게 말합니다. “내가 졌다” . 그리고 그는 야곱을 축복해줍니다. 그가 밤새도록 싸운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었고, 그는 하나님을 밤새도록 대면하여 싸웠으며, 마침내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이 생깁니다.

야곱이 사생결단으로 받아내려 한 축복은 대체 무엇일까요?

 

당시에 야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축복을 달라고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누리고 싶은 요소들을 골고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여럿이었고 자식들도 많았고, 목축을 통해서 상당한 재산가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형이 4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자기를 만나러 온다는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야곱이 가진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흔히 축복하면 이런 걸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 하나님이 주신 가정, 하나님이 주신 사업, 하나님이 주신 성공, 하나님이 주신 인간관계, 하나님이 주신 그 무엇.. 그런데 지금 야곱은 이런 것과 확연히 다른 그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 자체입니다. 야곱이 지금 이 순간에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축복은 무엇인가? 그는 바로 하나님 자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했습니다. 본문 30절이 그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의 새로운 이름인 이스라엘이나 지명인 브니엘이나 모두 하나님 경험이라는 점에서 서로 동일한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 경험이 야곱에게 최대의 축복이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6: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6: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야곱을 향해 하나님이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자 야곱이 대답합니다. “저는 야곱입니다.” 저는 야곱입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입니다. 20년 전 야곱은 그 아버지가 넌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전 에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에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하나님이 넌 누구냐고 물었을 때에 전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내 이름이 야곱이니 야곱이라고 대답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게 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야곱입니다. 전 남의 뒷다리나 잡는 야곱입니다, 전 에서가 되고 싶었던 야곱입니다. 전 에서가 아닌 야곱입니다. 전 그저 야곱입니다. 전 에서처럼 장자도 아니고, 남자다운 멋진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전 특별나지 않고 전 평범하며, 에서처럼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사람도 아닙니다. 정말 저는 형에게 사기치다 걸려서 저 먼 곳으로 쫓겨나 뼈빠지게 고생하고 돌아오는 그저 그런 야곱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드라마를 보면 정말 막장 스토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막장 스토리를 이어가는 주요 주제가 바로 에서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지 에서가 되어보겠다는 헛된 집념과 야망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특권층인 에서들이 갑질하는 내용이 주요 소재가 되지 않습니까? 야곱은 에서가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에서들은 에서의 특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속에 벌어지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야곱은 제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더 이상 에서가 부러운 야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왜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제가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했을까요? 바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보낸 세월에 그 답이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 최고의 밑바닥에서 시작한 야곱의 새로운 인생은 에서가 되고 싶은 야곱이 아니라, 그저 야곱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20년간 온전히 야곱으로만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야곱으로만 살았던 인생에서 그는 놀라운 영적인 경험을 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와 늘 함께 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합니다. 매 순간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합니다. 외삼촌의 그 간교한 계략에서 하나님은 늘 야곱이 손해보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그리고 그의 갈 길을 일러주시고, 만나주십니다.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나님의 군대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그 20년동안 온전히 야곱으로만 살았는데, 그 야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으며, 그 하나님께서 그 20년동안 그저 지팡이 하나만 들고 혈혈단신 외삼촌의 집으로 피난갔던 그에게 두 떼나 되는 엄청난 재산과 사랑하는 네 아내와 열둘의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은혜를 입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 옛날 야곱은 하나님께서는 그저 에서에게만 축복해주시는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에서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가족에게 온갖 모략과 거짓을 일삼았고, 사기를 쳤습니다. 그 결과는 가족이 붕괴되고, 자신은 그 가족에게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에서가 아닌 야곱으로 살아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며 복을 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은 복을 받을 자격도 없는 불쌍한 인생인데 하나님은 무슨 이유에선지 그런 야곱을 사랑하시며, 엄청난 복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야곱은 이 20년동안 더 이상 에서가 될 이유도 없었고, 에서가 부럽지도 않았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저 야곱만으로 충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대답합니다. “전 야곱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은 새 이름을 주십니다. 넌 이제 야곱이라고 하지 말아라. 남의 뒷다리 잡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이다. 여러분 사람이 어찌 하나님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프로그램이 있던데 거기 보면 아빠들이 아기들과 팔씨름도 하고, 이런 저런 게임도 하면서 져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빠를 이겼다고 엄청 기뻐하고 으스대기도 하죠. 이스라엘은 이처럼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늘 져주듯이 그렇게 져주겠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야곱을 사랑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할 때 난 야곱의 하나님이다여러분 또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야곱 이전까지 하나님은 적자와 장손에게 그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 이후에는 그런 법칙이 사라져버립니다. 야곱의 모든 자녀 12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불려진다는 것입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