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32:22] 이스라엘, 하나님이 져 준 사람

코이네 2017. 5. 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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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져주신 사람

본문 : 창세기 32:22~28

설교 : 박동진 목사 (소토교회)

 

 

 

1. 시작하기

 

후회 없이 잘사는 법 10가지

1. 힘차게 일어나라 2. 당당하게 걸어라 3. 오늘 일을 오늘로 끝내라

4. 책을 읽어라 5. 웃는 훈련을 반복하라 6. 말하는 법을 배워라

7.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하라 8. 자신을 해방시켜라

9. 사랑을 업그레이드 하라 10. 매일 매일 점검하라

 

이삭에게 쌍둥이 아들이 있었는데, 형은 에서이고 동생은 야곱이다. 에서는 몸이 붉다는 특징에서, 야곱은 나올 때 형의 뒷다리를 잡고 태어났다는데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 형의 장자의 직분과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목숨의 위협을 느껴 메소포타미아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지냈다. 20년 후 그는 두 명의 아내, 두 명의 첩, 한명의 딸과 열한명의 아들을 데리고 수많은 재물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의 고백처럼 자신이 이 요단강을 건널 때는 지팡이 하나만 들고 갔는데, 지금은 두 떼를 이루었다는 고백을 할 정도로 그는 객지에서 성공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맞으러 나오는 사람은 질풍노도처럼 4백명의 군사를 거느린 에서였다. 그는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그의 재산을 둘로 나누어 하나를 에서에게 선물하고자 한다. 그러면 형의 분노가 가라앉을까? 그는 두려움에 차서 기도한다. 이제 이 밤에 이 강만 건너면 에서를 만날 터인데, 모든 가족과 재물을 먼저 보낸 뒤 그는 얍복강나루에 홀로 남았다. 이 때 한 사람이 그에게 시비를 걸더니 씨름을 한다. 밤새워 씨름한 끝에 야곱은 부상을 당하고 그에게 축복을 요구한다. 그와 씨름한 사람은 그에게 야곱이라는 이름대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떠난다. 그제야 그와 싸운 사람이 하나님이신 것을 안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도 죽지 않았다면 그 곳 이름을 브니엘하나님의 얼굴이라고 지었다.

 

 

 

 

2. 왜 져주시는가

 

하나님이 야곱에게 지어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다. 이 말뜻은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는 뜻이다. 야곱은 남의 뒷다리 잡는 인생에서 하나님과 싸워 이긴 승리자가 되었다. 그런데 이 이름의 뜻을 조금만 생각하면 하나님과 싸워 이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져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길 수 없는 사람이 우리 집에 하나 있다. 바로 막내다. 막내와 게임을 하던지 놀이를 하던지 무엇을 하더라도 막내가 이긴다. 왜냐하면 이미 시작도 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 져줄까 고민하고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오빠와 언니들이 편애한다고 불평을 해도 나는 일단 진다. 삼세판하면 한 판은 이기고 꼭 두 판은 져준다. 이 녀석은 내가 져주는 줄 알면서 그 승리를 즐긴다. 아빠가 져줄 줄 알고 게임한다. 왜 져주는가?

 

1)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2) 복을 주고 싶어서 진다.

3) 승리자가 되게 하려고 진다.

 

다시 말해 야곱은 하나님이 져주셔서 성공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져주시는가를 알아야 한다.

 

3. 왜 야곱을 사랑하시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먼저 쌍둥이 야곱과 에서를 비교해보면 쉽게 드러난다. 에서는 그 몸이 붉고 성격이 활달하며 다혈질적인 사람이다. 친구가 많은 스타일이며 남을 지도하고 이끌어가는 장수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멋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한 번씩 벼락을 맞긴 해도 같이 있는게 수지 맞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인심을 후하게 쓰고, 남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야곱은 집에서 조용히 곱게 자란 스타일이다. 꼼꼼하고 치밀하다. 내성적이며 말을 잘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승부근성이 강하다. 지지 않으려고 하고 게임을 해도 이길 때까지 한다. 성공과 성취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 자신이 목표로 한 일에 대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내는 성격이다. 한 마디로 까칠하면서도 독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 옆에 있으면 힘들다.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 중에 하나님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셔서 에서에게는 져주지 않고, 유독 야곱에게만 져주신다. 이유가 뭘까? 에서는 하나님의 스타일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 모든 성격과 성품도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에게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인가?

 

바로 둘의 성품과 성격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 하는 그 차이 때문이다.

 

1) 야곱은 그의 생애에서 최고의 목적은 하나님의 복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최고인 삶을 살았다. 이것이 두 사람을 하나님께서 구별하는 기준이다.

 

에서는 장자이며 당연히 부모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는 장자였다. 하지만 그는 이것을 아주 경홀히 여겼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에 팔아넘길 정도로 하나님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야곱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과 하나님이 택한 후손이 되는 것을 그 인생 최고의 복이며 목적으로 삼았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소망을 갖고 산 사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져주신 이유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주고 싶어 하시고, 그를 승리자로 만드시고자 하시는 것이다.

 

2) 야곱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소유와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목숨까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을 무릎 쓰고 얍복강을 건너 그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져주시고 이런 사람을 승리자, 성공자가 되게 하신다.

 

3) 그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끝까지 의지하였다.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씨름한 것 이것이 바로 기도다. 하나님에게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자세. 그래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것이 바로 기도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에서를 설득하고 에서와 화해를 이루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지만, 야곱은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받아내는 것이 자신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는 구체적인 방법이었다. 즉 하나님이 이 일을 맡아주시면 그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해결하고자 손을 쓰시면 에서라도 그보다 더 어려운 인물, 더 어려운 문제라 하여도 해결된다는 믿음을 지녔고 그렇게 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되 하나님이 전혀 미동도 하지 않으셔도 끝까지 씨름하였다. 밤이 새도록 끝까지 씨름하였다. 천사가 그의 위골을 상하게 하여 더 이상 붙잡을 힘이 없어도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고 씨름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에게 져 주신 것이다. 이렇듯 기도는 끝까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언제까지 붙잡아야 하는가? 끝까지 해야 한다.

 

4. 그런데 우리는 왜 끝까지 하지 않는가?

 

1) 먼저 우리가 구하고 원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죽더라도 이루어야 할 비전이 있어야 한다. 이 비전이 없는 사람은 야곱과 같이 기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어쩔 수 없다는 단정을 이미 내린 뒤라면 한두 번 기도해버리고 말아버릴 것이다.

 

3) 끝까지 기도하는 훈련과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 밤이 맞도록 씨름할 수 있는가? 기본적인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날 하루 반짝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밤새 씨름할 수 있는 영성이 훈련되어 있었다. 그는 매사에 주님과 함께 하였으며 주님께로부터 해결 받은 은혜의 체험이 있었고, 이를 매 순간 삶의 습관으로 가지고 있었다.

 

5. 하나님이 져주신 결과

 

그렇게 하나님은 야곱에게 지셨고, 그 순간 야곱의 이름이 달라졌다. 야곱이란 이름의 뜻은 남의 뒷다리를 잡는 자라는 뜻이다. 쌍둥이로 태어날 때 그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그런데 그는 정말 그 이름대로 살았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는 남의 뒷꿈치를 잡는 일도 서슴치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였다. 하나님과 싸워 승리한 사람.

 

다시 막내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막내와 게임을 하면서 져주면 옆에 언니와 오빠들이 더 난리다. 왜 져주냐고 따진다.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이 너희도 옛날에 아빠가 그렇게 져줬다. 다음에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 아이 키우는 이 법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이에게 져주라. 그러면 아이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승리자의 기쁨을 맛보게 되며 성장하게 된다. 아빠를 이겼다. 세상에 아빠보다 위대한 사람이 없는데 그 아빠를 이겼으니 오직 기쁘겠는가?

야곱이 그렇다. 28절을 유심히 읽어보라. 하나님이 야곱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이겼지 않은가?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두려워할 것이 무에 있는가? 하나님은 그렇게 야곱을 승리자로 만들고 싶으신 것이다. 바로 야곱과 같은 믿음을 가진 여러분들을 그런 승리자로 삼으시고 싶어 하신다.

 

야곱의 성공의 비결이 눈에 들어오는가? 당신도 하나님이 져주시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태도를 점검해보라. 하나님이 최고인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매달릴 수 있는 하나님의 비전이 있는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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