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부적응자
본문 : 에베소서 4장 31절~5장 7절
2018.7.8.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1.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전에 읽었던 에베소서 1장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이며,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2장 19절에는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2:19)
라고 했습니다. 권속이라는 말은 식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후부터 외인도 아니고 손도 아니고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성도들과 동일하게 하나님의 권속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3절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그냥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고 물 위로 올라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해서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녀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사용하신 동일한 사랑의 표현으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러니 너희들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을까? 여러분 자녀가 아버지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을 닮는 것은 신기한 일이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이 거룩한 하나님을 닮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오히려 하나님을 닮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본받으며,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 자녀답지 못한 생활은 청산해야 합니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버려야 할 것, 속히 청산해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성도는 모든 악의를 버려야 합니다. (4:31-32)
4:31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의는 헬라어로 ‘카키아’인데, 결점이 있다, 쓸모가 없다, 무능력하다, 나쁜 것, 사악한 죄, 고통, 불행, 파멸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데 필요 없는 쓸모없는 것들, 무능력하게 하는 것, 고통과 불행과 파멸로 이끄는 사악한 죄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2. 성도는 음행을 버려야 합니다(3,5절)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한 것을 타락하고, 파괴하는 것이 음행입니다. 성에도 도리가 있습니다. 성에는 먼저 남녀의 진정한 사랑이 배여 있는 행위입니다. 성은 자녀를 낳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성은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하고, 부부를 더욱 성숙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도리가 파괴되어 성이 그저 쾌락의 도구가 되는 것이 음행입니다. 성이 타락하면, 그래서 사람이 음행을 저지르게 되면 인격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사회를 파괴합니다. 또한 영적인 음행은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헛된 것을 하나님처럼 숭배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음행입니다. 우리는 이런 음행을 버려야 합니다.
3.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3절).
더 이상 재물이 필요치 않을 것 같은 한 부자에게 얼마나 많이 벌면 만족하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탐욕은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을 말합니다. 재물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청지기적인 삶을 살면 재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좋은 도구가 됩니다.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이 재물에 얽매이고, 재물을 숭배하고, 오로지 재물을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 사로잡히며, 재물의 노예가 됩니다. 우리는 이런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는 성도의 품위를 잃어버리는 누추한 말, 어리석은 말, 남을 비꼬고 비하하는 희롱의 말을 버려야 합니다.
어느 교회 젊은 집사님이 담배를 끊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명색이 집사라는 사람이 담배도 끊지 못한대서야 체면이 서질 않는다고 생각한 끝에 고심하다가 여름 휴가를 기해 보따리를 꾸려가지고 철원에 있는 모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기도의 능력으로 담배를 끊어보고자 한 것입니다. 열심히 찬양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은혜 받았다고, 성령받았다고 난린데, 이 집사에게는 성령님이 올 생각이 없는지 맹숭맹숭 시간이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담배기 피우고 싶어집니다. 슬그머니 기도원을 나와 인적이 없는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 그는 담배를 피웠습니다. 한 이틀 금연했다가 피우는 담배맛, 그것도 남들 모르게 숨어서 피우는 담배맛은 꿀맛이었습니다. 그는 한 주 동안 이러기를 계속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또 그렇게 숲속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갑자기 이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처량할 수가 없어 보였습니다. 주님 전 여기 담배 끊으러 들어왔는데 이게 뭡니까? 담배는 성령님도 어쩔 수 없는 것입니까? 담배를 끊지 못하는 탓을 성령님께 돌렸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버려라, 내버려라” 뭐지 하면서 순간 손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잡히는게 있습니다. 바로 라이터와 담배입니다. 아하~ 뭔가 깨달음이 온 순간. 그는 지체하지 않고 담배와 라이터를 기도원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원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다가 성령충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 간에도 갑자기 담배가 당기는 순간이 있었지만 이미 담배와 라이터를 버려버린 터라 담배를 태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구나. 그래서 성령께서 버리라고 했구나.. 그리고 새로운 삶이 그에게 찾아왔고 그는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 날부터 담배 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성령의 말씀대로 버렸더니 담배도 끊고, 성령충만한 새로운 삶도 살게 되고..이걸 일석이조라고 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본문 5절에 아주 심각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기업을 얻지 못한다.’ 천국에 있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못 버리면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여러분 천국에 노숙자가 있을까요? 물론 천국에는 노숙자가 없겠죠.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버릴 걸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천국에 갔더니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자신을 보니 이건 뭐 거지도 아니고 온갖 더러운 꼴을 한 채 있는 겁니다. 그러니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하고 계속 어두운 뒷골목으로만 전전하게 되고.. 그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그렇게 이끄는 세상을 참 많은 거짓말들이 있습니다. 뭐 그 정도쯤은 괜찮아, 예수님이 다 용서해주셨는데 뭘 그래? 그러면서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도록 하는 거짓말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아주 엄한 목소리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본받는다"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미메테스(μιμτηs)라는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은 "흉내내다, 모방하다, 본받다"에서 온 말로 "모방자, 본받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려면 그리스도를 모방해야 합니다. 흉내 내야 합니다.
어느 목사가 새로운 교회에 부임을 하여 첫 설교를 하려고 할 때 강대상 위에 종이 쪽지가 올려져 있어서 급한 광고인줄로 알고 읽어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는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은 목사님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두고두고 이 말씀을 생각하며 목회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교인들은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즉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거룩하고 진실 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또 하나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 모든 성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성도들 앞에서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하고 모든 성도들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서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모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따라하고, 흉내 내야 합니다.
1.용서를 모방합시다(4:31-32).
지금 이 세상에는 용서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아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00만 명의 젊은이들이 가출을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하루에 수십 명씩의 어린 청소년들이 집을 떠난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출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기들이 작은 잘못을 저질렀는데 부모가 용서해 주지 않고 혼낼까 두려워서 집을 나간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의 어느 아버지가 작은 잘못으로 가출한 아들을 찾기 위하여 이곳 저곳으로 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파코에게
지난 날의 모든 것을 용서하마 내일 정오에 신문사 사무실에서 만나자꾸나. 파코를 사랑하는 아빠로부터” 짧은 내용의 광고였습니다. 그 다음날 아버지고 신문사로 나가 보았더니 파코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800여명이 모여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두 아버지의 용서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가 있고 잘못을 저지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잘못을 깨닫고 인정할 때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다.
2.희생을 모방합시다(2).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자기위해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교도소에 가 보십시오. 온통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사람은 남을 위해 자기가 손해 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엄청난 고통이었고, 저주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자신의 희생시켜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희생은 고통이지만 가장 고귀하고 가치있는 결실을 가져옵니다.
3.주님의 거룩함을 모방합시다(2-6).
예수님처럼 늘 기도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내거는 그 거룩한 모습을 모방합시다.
주님의 인격을 주님의 사랑을 모방합시다. 예수님처럼 용서해 봅시다. 희생해 봅시다. 성결해 봅시다.
아주 오래 전에 ‘베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TV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어미를 잃은 새끼 곰이 혼자 돌아다니다가 사냥꾼의 총에 부상을 입고 사나와진 왕곰을 만나게 됩니다. 둘은 어떻게 마음이 통했는지 함께 살게 됩니다. 새끼곰은 왕곰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합니다. 왕곰이 일어서면 새끼곰도 일어서고, 앉으면 앉고, 먹으면 먹고, 싸면 싸고, 그리고 사냥하는 법도 배웁니다. 한번은 새끼곰이 굶주린 표범을 만났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그런데 새끼곰은 처음에도 두려워 벌벌 떨었는데 갑자기 두려워하던 태도를 바꾸어 왕곰이 했던 대로 입을 크게 벌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랬더니 표범이 기겁을 하고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정작 더 놀란 건 새끼곰입니다. 왜 도망가지? 그런 표정으로 도망가는 표범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새끼곰이 왕곰 흉내를 내었을 때, 뒤에는 실제로 왕곰이 다가와 포효했던 것입니다. 표범이 놀라 도망간 것은 새끼곰의 포효가 아니라 왕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모방하며 살 때’ 하나님이 우리 뒤에서 역사하십니다. 레위기 19장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예수님도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전한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여러분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처럼 온전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을 흉내냅시다.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닮을 때까지 계속해서 모방합시다. 인도에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좋은 말이 내 말이 되게 하려면 최소한 3만번을 되뇌어야 한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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