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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19:1] 거룩에 대한 열정 /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19. 3. 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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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에 대한 열정

본문 : 레위기 191- 2

설교 : 박동진 목사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십자가가 최우선 항목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이 없고, 십자가 없는 용서가 없으며, 십자가 없는 영광도, 기쁨도 없습니다. 십자가 없이 주어지는 부활, 용서, 기쁨, 영광 등이 있다면 그것은 다 거짓이거나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그저 사람들이 지어내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십자가인데 우리는 십자가란 말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 십자가를 바라보면 그곳에는 우리의 죄가 있습니다. 십자가가 힘든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영도에 있는 모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 장로님이 자기는 예배 시간에 참회의 기도 순서가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자신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살필려니 참 힘이 들뿐 아니라, 성도의 삶에서 죄에 대한 회개보다 감사라든지 기쁨이라든지 하는 그런 신앙적인 요소도 많은데, 왜 자꾸 죄를 끄집어내서 예배 분위기를 흐리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일리가 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다닐 때 일주일에 두 번 채플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 시간마다 어김없이 참회의 기도 시간이 찾아왔는데, 예전에 그 장로님이 하시던 푸념이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사회에 있을 때는 지은 죄가 많아서 회개거리를 찾는 것이 어렵진 않았는데, 여러분 신학교 다니면서 그것도 매일 공부에 숙제에 쫓겨다니고, 틈만나면 성경읽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무슨 죄를 그리 많이 짓겠습니까? 한 두어 달 예배드리고 나니 내가 무슨 죄를 지었지, 죄를 찾는 것도 참 힘이 들어요. 그것도 일주일에 세 번의 참회기도를 해야 되잖습니까? 어떨 때는 참회의 기도를 위해서 몇 가지 회개거리를 좀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교만 충만했었다 생각이 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지 가슴 아프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가 성자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고통은 하나님께서 받으셨습니다. 죄는 우리가 지었는데, 형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우리가 겪어야할 죄의 고통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당해야할 우리 죄의 댓가입니다.

여러분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시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고통을 당하신 예수님이 불쌍하다고 여기십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바로 우리의 죄를 생각해야 합니다. 죄가 가져다주는 무시무시한 고통을 생각하며, 내가 저 고통 속에 허덕이다 죽어야할 불쌍한 인생임을 깨달아야 하며, 그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하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대신 그 고통과 형벌을 받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 고백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를 사람들이 외면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십자가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인생을 사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의 인생이 무엇인지를 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도 주님을 위해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살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를 외면하면 불행히도 그는 아직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제대로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우리 인생의 일차적인 목표가 됩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영광의 천국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어떤 기대를 갖고 있었을까? 예수님은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시면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는데 무엇이 보였을까요? 바로 자신을 조롱하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비난하는 사람들, 예전에 자신에게 은혜를 받았는데 지금은 애써 외면하고 있는 비겁한 사람들, 이제 우리 계획대로 되었다고 얼굴에 만연히 웃음을 머금고 좋아하는 무리들이 보였을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떠시겠습니까? 우리 시각으로 참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주님은 그런 인간들을 보시면서 그들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죽으셨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죽으신 것은 주님의 목숨을 걸어도 좋을만한 주님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고통당하시만, 내가 지금 여기서 죽지만, 죽어도 결코 아깝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성경을 다같이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1717-19입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유언장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주님은 이 소망을 하나님께 간절히 아뢰었습니다. 거룩함을 얻게 하는 것, 하나님의 진리로 거룩하게 하는 것 바로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바람이며, 유언입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레위기 19장에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거룩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 성도의 거룩함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바람이며, 주님의 유언이며,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이 우리의 거룩한 모습을 바라보며 죽으셨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은 이제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인생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거룩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구원은 두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것으로 우리를 괴롭게하고 비참하게 하는, 우리 인생의 불행의 근원인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면은 하나님 안으로의 구원입니다. 죄로부터 벗어난 것이 구원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야 그 구원은 온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의 영향권 아래 자신을 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을 닮아가고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를 무척 당혹하게 만듭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 내가 예수님처럼 완벽한 사람이 될 것이며, 하나님처럼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거룩해지고 싶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아멘하고 대답할 분은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며, 거룩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거룩한 인생을 생각하기 전에 거룩에 대해 먼저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품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카도쉬헬라어로는 하기아조라고 하는데, 다음 네 가지 측면으로 거룩하다란 의미를 살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소극적인 면으로 구별된다, 분리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하든 안 하든 간에 예수를 믿는 순간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마귀에게 속하여, 하나님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는데, 이제 하나님 나라 백성에 속하여, 마귀의 요주의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관심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며,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죄에서 분리된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죄 짓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죄 짓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살았고,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나만 그랬나 하며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켰고, 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죄를 지은 것을 이전보다 더욱 명확하게 알게되고, 죄 지은 것에 대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전에 죄짓는 것을 아무 생각없이 행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그리스도인인데 그렇게 하면 되는가 싶은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행동이 조심스러워집니다. 성도라는 말이 부담이 가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죄의 습관들이 이제는 슬슬 부담이 됩니다. 힘이 듭니다.

여러분 저는 예전에 맹장 수술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수술이냐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그 수술 때문에 얼마나 아파했는지 모릅니다. 떼낸다는 말은 쉽게 수술하는 것입니다. 수술하고 난 뒤에 정말 후련합니다만 수술을 마칠 때까지 그것은 힘든 작업입니다.

 

두 번째 거룩이란 헌신하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물들은 여타 다른 그릇들과 구별이 되어서, 오직 성전을 위해서만 쓰게 됩니다. 그렇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란 말은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헌신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얼마만큼 헌신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기까지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의 세 번째 요소입니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예전에 죄를 짓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아, 하와야하고 부르시면 아담이 하고 대답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한 자리에서 어울려 즐거움을 나누는 장면을.. 거룩한 이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습니다. 거룩한 자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대면하여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진실하게 대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함을 내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이룰 수 있으며, 하나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우리가 거룩하도록 이끌어주시며, 변화시켜 주십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은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 그것을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구별된 백성으로 이 땅에 살아갈 때에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부분에 이르러 아주 마음이 찔렸습니다. 혹시 내가 하지 않아야 할 일도 믿음이 있다고 그 정도는 괜찮다며 교만을 떨지 않았는가? 그리고 회개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 각자 이렇게 물어봅시다. 나는 성별되었는가, 내가 내 몸과 혼과 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살고 있는가? 내가 내 재능과 시간과 목소리와 생각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실제로는 나를 위해 살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살고 있는 체하는 것은 아닌가? 내가 모든 것을 드린 척하면서 얼마를 숨겨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사람은 아닌가?

 

여러분, 자기 검증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71절에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레위기 207절에 너희는 스스로 깨끗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스스로 깨끗케하여,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데,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일일까요?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은 다음 네 가지를 권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삶을 주의 깊게 살펴서 이를 모범으로 삼고 살라. 둘째는 성령께서 죄에 민감한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 셋째는 항상 눈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향하려고 애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꿰뚫어보는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설교가 마음의 위안을 주면서 감미롭기만 한다면 주의해야 한다. 설교는 죄를 벗지 못하고 사는 영혼의 마음을 찔러서 아프게 해야하고, 곪은 상처를 터지게 하여, 하나님 앞에서 피를 흘리게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좋은 설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거룩하기를 원하십니까? 혹시 아직 단 한번도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 이런 일은 하지 않겠다, 이런 일은 하겠다라고 결심한 적이 없다면 그분은 아직 거룩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주님 나도 거룩하길 원합니다. 거룩하게 살길 원합니다. 주님이 싫어하시는 죄된 삶은 살지 않겠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은 목숨을 다하는 한이 있어도 해보겠습니다.

시편의 기자들은 내가 주님을 갈망합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망합니다.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여 헐떡였나이다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거룩케되고자 갈망합시다. 맹수에 쫓긴 사슴이 숨을 헐떡이며 간절하게 시냇물을 찾듯이 그렇게 갈망합시다. 이거 없으면 내가 죽겠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헐떡이며, 주님의 거룩을 열망해봅시다.

 

우리가 이렇게 거룩함을 열망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대가 달라지게 됩니다. 어떻게요? 하늘나라에서 대접받는 모습으로 변화된 자신을 꿈꾸게 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멋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 호흡하시는 성령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세 말로 한다면 노는 물이 달라집니다.”

주기도문에 두 번째 기도말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이 거룩히 여기도록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의 그 귀하신 이름을 나로 인해 이 세상이 정말 거룩한 분인줄 알고 경배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거룩하신데, 타락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며, 하나님을 저주하며,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거룩함을 알리게 하고자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세상에 존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거룩하기를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말입니다. 여러분, 정말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 주님 나를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신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정말 거룩한 분으로 여겨지며,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주옵소서” (*)

 

주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저를 거룩하게 하옵소서.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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