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중보 기도'라는 단어 바른 용어일까?

코이네 2023. 4. 1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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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 기도'라는 단어의 쓰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다. 

그 중 ‘중보기도’는 ‘도고’라고 해야한다며 기독신문에 권능 목사(대구 예본교회)의 주장이 있어 먼저 소개하고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도 적어보고자 한다. 

 

 

 


아래는 권능 목사의 '중보 기도는 도고라고 해야 한다' 는 기독신문 ( 입력 2006.11.14)에 실린 글의 전문이다.  

 



‘중보기도’라는 용어는 한국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마다 중보기도팀이 있고 중보기도에 열심이다. 그런데 이 ‘중보기도’라는 용어는 과연 올바른 것일까?


▲중보의 의미

 

중보는 중재를 의미한다. 즉, 두사람 사이에 개입해서 서로 화해시키거나 관계를 유지시켜주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는 중보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온다.(사 38:14. 갈 3:19, 3:30. 딤전 2:5, 히 8:6, 9:15, 12:24)
성경에서의 중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가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화목 제물로 드리셨다.(롬 3:25)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하나님과 인간은 화목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중보자가 되셨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예수님 이외에는 누구도 중보자가 될 수 없다. 구약시대에는 천사, 모세, 선지자가 중보 역할을 했지만,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오직 예수님만이 중보가 되신다.(딤전 2:5)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 않는 기도는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는다. 반드시 예수님을 거쳐야만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담을 허무셨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예수님이 중보로 계신다. 우리는 결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보 기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중보 기도자는 오직 예수님뿐이시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신다. 따라서 ‘중보 기도’라는 요어는 사람에게 붙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도고’란 무엇인가

 

‘도고’라는 단어는 성경에 단 한 번 나온다.(딤전 2:1)
도고는 헬라어로 ‘엔튜크세이스’인데, 

이는 ‘타인을 위한 기도’ 혹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자유롭고도 친밀한 기도’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도고는 ‘타인을 위해 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우리가 말하는 ‘중보기도’는 타인을 위한 기도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과 기도 대상자를 중재하려는 기도가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며, 그 사람을 보호하시고 복 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비는 것이다. 이는 중보자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람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위한 기도를 ‘중보기도’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도고’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도고 기도'라는 단어도 문제가 있다. 

도고라는 한자어가 현재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는 사어(죽은 문자)라는 것이다. 

도고라는 말은 현재 한글 개역성경에서도 오직 한 곳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 

그러니 도고 기도라고 이름을 붙이면 일반인들은 그 뜻이 무엇인지 의아할 것이다. 

단어라는 것은 들었을 때 그 의미가 명확해야 하는데 '도고 기도'는 우리말이 아닌 외국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필자의 생각에 굳이 어려운 한자를 이용해서 단어를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남을 돕는 기도, 타인을 위한 기도'라고 사용해도 그리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요즘 우리말 조어 추세가 풀어쓴 말을 줄이는 것인데,

그 추세를 따르면 '남기도, 타기도' 라고 할 수 도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의미 전달이 확실하게 전해지는 '남을 위한 기도'  또는 '돕는 기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