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세 가지의 경우

코이네 2023. 5. 2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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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은 하나님이신데 성령께서도 근심하시는가? 하나님도 근심하시는가? 우리는 흔히 인격적인 하나님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감정을 느끼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근심하기도 하고, 질투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유머도 있고, 다정다감하기도 한 분입니다.

 

그러면 근심하다란 무슨 뜻일까요? “근심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루페오(lupeo)인데, 이는 고통, 비관, 슬픔을 갖게 하다는 뜻입니다. 표준새번역이나 공동번역성경에는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걱정과 근심 그리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정도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근심하십니까? 자녀들이 밤이 늦었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니 걱정이 되어서 근심하지 않습니까? 또 내일이 카드값 갚을 날인데 돈이 없어 쩔쩔매는 경험 해보셨죠.

 

루페오근심하다는 말은 이 정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습니다. 한 밤 중에 아들을 피해 도망가면서 그는 걱정과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입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작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짐작이 되십니까? 이는 마치 로마 황제 율리우스 시저가 충복이었던 Brutus의 배반으로 칼에 찔리는 것과 같은 반역의 정치상황 속에서 왕이 갖게 되는 충격적인 아픔을 겪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성령을 근심하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성령을 마음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령과의 관계가 악화된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성령과 틀어진 그래서 성경을 근심하게 하는 경우를 세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성령을 거스리다

"성령을 거스린다"는 말을 헬라어로 안티핍토(ωντιπιπτω)라는 말을 씁니다. 이 말의 뜻은 반대하다”, “거역하다”, “저항하다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순종하지 않고, 반대하고 거역하고, 오히려 저항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거스리면 성령은 근심하시며 슬퍼하십니다.

 

2)성령을 훼방하다

훼방한다는 것은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잘 못되도록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이 들려서 눈멀고 벙어리 된 자를 고쳐 주셔서 그가 말하며 보게 되었습니다. 이 때 주변에 둘러서 있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마귀의 왕 사탄의 힘으로 고쳤다고 고집을 부리며, 예수님이 행한 기적들을 마귀의 일이라고 사실을 호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바리새인들을 향해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경고하였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죄란 성령이 하신 일을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이지 않고 도리어 이를 사탄의 역사로 폄하하고, 왜곡하고, 조롱하여 결국 성령을 모독한 죄를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면 성령께서 근심하십니다.

 

3)성령을 소멸하다

데살로니가전서 5:19절 말씀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했습니다. 여기 "소멸하다"라는 말은 "불을 끄다"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불로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그 성령님의 불을 꺼 버리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 성령님을 소멸하는 것에 대해서 이런 예화를 했습니다. 한 청년이 대학에 들어가서 한 여학생을 가슴 깊이 짝사랑하게 됐답니다. 그런데 주일 아침에 느닷없이 이 여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답니다. “오늘 야외로 놀러 가려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 순간적으로 너무 바라던 일이어서 가겠다고 하고 약속을 했답니다.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계속해서 마음속에서 한 음성이 들려 왔답니다. “오늘은 주일이야! 가면 안 돼.” 바로 성령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듣고 괴로워하면서도 야유회를 다녀왔답니다. 돌아와서 너무 괴로워서 울면서 다짐을 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한 달쯤 지나서 그 여학생이 주말마다 하는 학원에 함께 다니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여학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생각 없이 그렇게 하자고 동의를 했답니다. 또 마음속에서 음성이 들려 왔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취소해라그러나 이 청년은 애써서 이 음성을 외면했답니다. 그런 음성이 들릴 때면 다른 생각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려 했답니다. 주일에 교회가지 않고 학원으로 야외로 다니기 시작하면서 계속 그 음성 때문에 시달렸는데 한 달 지나고 두 달 지나면서 점점 그 음성이 희미해지더니 언제인가 부터는 아예 그 음성조차 들리지 않더랍니다.

 

성령은 우리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말하실까요?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고 깨닫게 하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당신의 뜻을 알려주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생각을 갖도록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 마음속에 어떤 음성을 들려주실 때도 있고, 때로는 큰 감동을 주시고, 때로는 큰 결단을 촉구하시고, 때로는 크게 책망하시기도 합니다. 그 때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고 그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행위가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주님을 떠나 살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은 소멸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을 무시하면 성령과 멀어지고 마치 불이 꺼지듯 우리 안에서 성령의 활동이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심을 잊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지 마십시다. 내 안에 계시는 그분 성령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며 성령을 사랑하고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과 역사하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