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고난주간 특새] 눅 15:1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_박동진목사

코이네 2025. 4. 21. 09:4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본문: 누가복음 151124

찬송 : 563

기도 : 최종수 집사

2025.4.17. 소토교회 고난주간특별아침기도회 설교(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번 고난주간 특별아침기도회를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활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새사람이 된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삶의 시작도, 변화도, 회복도 모두 그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론이 아닙니다. 마음을 녹이고, 인생을 바꾸고, 공동체를 세우는 능력입니다.

 

1.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일서 48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이 놀라운 진리는 그분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탕자의 비유는 바로 그 사랑이 얼마나 실제적인지, 우리 삶에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2. 돌아온 탕자 사랑의 이야기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합니다. 살아 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는 건, “아버지는 내게 더이상 필요 없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살겠습니다.” 하는 선언과도 같습니다.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죽인 행동이며, 해서는 안되는 패륜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을 꾸짖지 않습니다. 그의 요구를 묵묵히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십니다. 억지로 붙잡거나 강제로 막지 않으십니다.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십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아들은 자유를 얻은 것 같았지만 결국 가진 것을 다 잃고, 돼지우리에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는 처지에 이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돼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 음식조차 얻지 못했다는 것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그때 그는 깨닫습니다. ‘내 아버지 집이 얼마나 좋았던가!’ 그리고 결심합니다. ‘아버지께 가서 말하자. 아버지,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종으로라도 써주십시오.’

이 결심의 밑바탕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아버지가 자비로운 분이라는 확신.

둘째, 지금 이 상황보다 아버지 집의 종이 더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 그래서 돌아갑니다.

그런데, 여러분. 정말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멀리서 아들의 모습이 보이자, 먼저 달려가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다시 찾은 아들이다.” 그리고는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엽니다. 완전히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 그를 다시 아들로 회복시켜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랑은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낙심할 때, 실패 앞에서 자책할 때, 사람들의 시선 속에 상처받고 외로울 때, 하나님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기도가 잘 나오지 않을 때에도, 믿음이 흔들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 사랑으로 우리 곁에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사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자리에 닿아 위로하고, 회복시키고, 다시 일으켜 세우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과거에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나와 함께 살아 숨 쉬는 현실입니다.

 

4. 큰아들의 이야기 사랑의 넓이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더 등장시키십니다. 바로, 큰아들입니다. 큰아들은 겉으로 보기엔 아버지 곁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동생이 돌아오자 그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분노하고, 거부합니다. "이 아들은 창녀들과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삼켜버렸습니다." "저런 아들에게는 잔치를 열어주시면서, 저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못 받았습니다."

이 큰아들의 모습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당시, 자신은 의롭다고 여겼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오늘날 우리 안에 자리한 사랑 없는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으시는 청중, 곧 회개하는 죄인들을 비난하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을 겨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자신은 늘 하나님 곁에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에는 깊이 들어와 있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을 기뻐하지 못하는 마음, 그 마음이 바로 큰아들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큰아들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는 정말 아버지를 알고 있는가?” “너는 정말 아버지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잃어버린 자가 돌아올 때입니다. 죽었던 자가 살아날 때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그 기쁨을 함께하지 못합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있었지만, 아버지의 마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있느냐?” “사랑 없는 신앙에 머물러 있지 않느냐?”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섬기고 예배하면서도 누군가를 용납하지 못하고, 심판과 비교, 냉소와 정죄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 안에 큰아들의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단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에 감동받는 것을 넘어, 큰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정말 아버지의 마음에 가까이 있는가? 내가 누군가의 회복을 함께 기뻐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회개한 죄인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동시에,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책망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누리는 자일 뿐 아니라, 그 사랑을 함께 나누고 흘려보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삶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을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누군가를 정죄하기 전에 기다려주는 마음 실수한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시선 내 기준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주시고, 회복시키시며,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그 사랑 안에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시 떠나지 말고, 그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 그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그 사랑을 삶으로 살아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그 사랑이 오늘도 여러분의 삶을 붙드시고, 넘어질 때 다시 일으키시며, 매 순간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

 

🛐 기도합시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자격 없는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끝까지 사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탕자처럼 방황했던 우리를 기다려주시고, 돌아올 때 달려와 안아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오늘도 거하게 하소서. 그 사랑을 기억하며, 그 사랑을 닮아 살아가게 하시고, 삶의 자리마다 그 사랑을 전하는 자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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