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총리가 된 요셉 그 아들의 이름에 담긴 신앙고백

코이네 2012. 12. 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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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1장, 총리가 된 요셉,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 두 아들의 이름과 이름에 담긴 신앙고백


창세기 41장

요셉은 이집트 왕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었고, 그는 아주 훌륭하게 국정을 운영한다. 정치적인 경험이 전혀 없음에도 마치 잘 준비된 사람처럼 왕이 꿈에서 본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하나씩 일을 진행시켜나간다. 요셉의 해몽대로 이집트에 대풍년이 찾아왔을 때 그는 마을마다 큰 저장고를 만들어 여기에 곡식을 안전하게 저장하였고, 7년 후 흉년이 찾아왔을 때 능숙하게 흉년을 대비하여 도리어 나라를 더 안정되고 강국이 되도록 만들어갔다. 그 덕에 이집트는 내적으로 왕권이 강화되고, 외적으로는 곡식을 구하기 위해 가뭄에 허덕이는 각 나라들이 이집트의 눈치를 봐야 했고, 이집트는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1. 하나님의 계획과 요셉의 치세

공자는 나이를 논하며 30살을 두고 이립이라 하여, 인생의 모든 기초를 세워야 할 나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서른을 넘기며 그 뜻을 펼쳐 50에는 지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요셉이 이집트왕에게 불려간 때가 바로 30살, 그는 그 동안 인생의 기초를 정말 튼튼하게 쌓았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 밑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신앙의 훈련을 쌓았고, 노예로 팔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는 인격의 훈련을 받았다. 또한 보디발의 집에서 집사장으로, 감옥에서는 간수장의 일을 대신하며 일정한 행정력과 사람을 이끄는 리더십과 인간관계의 훈련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그 땅에 엄청난 풍년과 지독한 흉년의 때를 대비하여, 그 모든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왜 풍년과 기근이 이 땅에 들어야 할까? 우리 그런 질문을 쉽게 하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만 더 안다면 그러질 못할 것이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자연의 일은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 모두가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우리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다.인간세상도 하나님 창조 세계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한 부분에 불과한 인간들을 구원하고자 하나님의 계획을 세우시고, 이를 이루어가시며, 인간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시며, 그에게 세상을 구원하는 사명을 주신다.

그런 사명자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사람이라야 하며,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있는 실력자여야 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드러내는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기에 사명자는 끊임없이 하나님에 의해 훈련하는 속에서 만들어진다.

요즘 한국교회에 안타까운 현상이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교회 안의 일이나 교회와 연관된 일에 국한한다는 것이고, 둘째 사명자를 성직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그리고 교회의 청년들이 신앙과 세상에서 일할 수 있는 자기 실력을 키우는 것보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에 치중하다보니 사회부적응자들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택한 길이 신학이라는 것이다. 이런 편향된 신앙의 형태를 고쳐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능력을 제대로 갈고 닦아 사회를 주도해갈 수 있는 실력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주님의 뜻을 깨닫고 요셉처럼 제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하며, 이런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교회가 격려해야 한다.

2. 요셉의 자녀들

요셉이 왕의 중매로 이집트의 온이라는 지역의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이 결혼으로 요셉은 이집트에서 유력한 가문을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두 아들이 태어났다. 그는 첫째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고, 둘째를 에브라임이라 하였다. 첫째 아들 므낫세라는 이름의 뜻은 잊어버렸다이며, 에브라임은 창성하다는 뜻이다. 그는 첫째 아들의 이름을 지으며 그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고난의 시절과 나를 죽이고자 했던 내 형제들의 일을 다 잊어버리게 하셨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 하나가 잊어버리고 용서해버리는 것이다. 요셉은 지금까지 정말 말 못할 어려움을 겪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기고, 노예가 되어 갖은 고생 설움 다 겪다가 나중에는 아무 죄 없이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죄수로 오랜 시절을 감옥에서 고통받았다. 보통 이런 경우 사람들은 대부분 복수할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요셉은 미움도 버리고, 분노와 절망, 고통, 갖은 모든 설움을 다 잊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용서하고자 한다. 그는 이 일을 하나님이 하게 하셨다고 한다. 잊어버리고 용서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잊어버리고 용서하기 위해 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 다 잊어버렸다 라고 하였다.

이름을 그렇게 지어놓았으니 도리어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아들 볼 때마다 더 생각날 것이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람이 그렇지가 않다. 잊어버리고 용서하는 것은 그저 아무 생각이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잊고자 하고 용서하고자할 때 잊어지고 용서되는 것이다. 가슴속에서 까닭없이 옛날의 분노가 올라올 때 그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래 난 다 잊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선포하며 잊고 용서하겠다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을 통해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어릴 적에 주신 꿈, 그 꿈을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대하게 하셨다. 지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또한 그 옛날 어린날에 주신 하나님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소망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이루어주고자 하시는 꿈,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가 꿈꾸며 이루어야 할 것,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성장해가는 것이다 .(*)



by 소토교회 코이네 박동진 목사 
  

하나님은 왜 덜떨어진 요셉에게 꿈을 주시는가?
하나님의 영이 감동한 사람 요셉은 무엇이 다를까?
꿈을 꾸는자 꿈에 사로잡힌 자 꿈을 해석하는자
감옥에 가두어도 꿈은 가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