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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5장, 하나님에게서 난 것과 사람에게서 난 것

코이네 2014. 9. 12.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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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5장, 체포된 사도들을 변호하는 가말리엘의 말

진짜와 가짜
본문 : 사도행전 5장
2014.3.30.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별그대 천송이의 대사

“내가 이번에 바닥을 치면서 기분이 더러웠지만, 좋은 게 있었어. 그건 사람이 딱 걸러져. 진짜 내 편과 내편을 가장한 적, 인생에 가끔 큰 시련이 오는 거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인기리에 방영 되었던 별에서 온 그대의 한 장면입니다. 천송이라는 배우가 스캔들에 휘말려 인기가 곤두박질 칠 때, 그 기회를 이용한 친구가 승승장구할 때, 그 친구에게 한 말입니다. 이 대사 중에 ‘가끔 시련이 오는 거 진짜와 가짜를 걸러내라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 싶다.’ 이 말이 참 가슴에 와닿네요. 

2. 예수님의 출현에 당황한 제사장들

그런데 이 말은 신앙에도 그대로 해당합니다. 예전에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은 제사장들과 이 제사장들의 엘리트 집단인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이 율법으로 나라의 법을 만들고 백성들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제사를 집례하며,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론대로라면 이들은 하나님과 가장 친해야 했고, 지상과 천국을 오가는 그런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을 통해 제사장으로서 존경 받고, 또 백성들을 지배하고, 그래서 이 땅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며 사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 천국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하면서도 “있겠거니”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겠거니, 천국이 있겠거니, 율법이 하나님의 뜻이겠거니 하였지 정말 그렇다고 믿고 살지 않았습니다. 있으면 좋겠지만 그닥 있을 이유가 없을 것 같이 생각하며 산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지금 이들이 딛고 살아가는 이 현실, 세속 세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당황시킨 한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두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천국에서 왔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에 있다고 선포합니다. 저 시골 이름도 듣도 못한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선포하며, 활동을 하였을 때 그들은 처음에는 웬 미친놈인가 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거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갑니다.

먼저 당시 모든 백성들에게 선지자로 추앙받던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두고 메시아라고 소개합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이름 없는 정신 나간 시골 청년이 아니라 당대의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보증을 서고, 추천하는 존귀한 이가 되어 버립니다.

어떻게 하든 약점을 좀 잡아보려고 했는데, 이 사람 사는 방식도 목적도 자기들하고는 완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였는데, 아무리 탈탈 털어도 먼지 한 톨 나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 약점을 잡아보려고 함정을 팠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권세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천재지변이 잠잠해지고, 아픈 사람이 벌떡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심지어 죽었던 사람이 살아납니다. 자신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어도 능력은 없는 무늬만 하나님의 사람들인데, 예수는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참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면 할수록 그들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지금까지 백성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중재자로 하나님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는 하나님과 그들이 말해왔던 하나님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죠. 진짜가 없었을 때에는 자신들이 진짜인양 행세할 수 있었는데, 예수님이 나타난 순간 그들은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가짜라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람들이었기에, 스스로 자신을 가짜로 인정하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든 예수님을 회유해 보려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예수님을 제거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가 되게 하는 음모를 꾸몄고, 그래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계획은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예수, 다시는 자신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그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은 부인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는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더 골치 아픈 사실은 이미 예수님께서 죽기 전에 공개적으로 자신이 죽었다가 부활할 것은 예언해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가 세워지고, 이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두려워서 도망갔던 그 겁쟁이 제자들이 한 데 모여서, 성령에 충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 그 겁쟁이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전도에 감동되어 교회로 모여들고, 회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든든히 서가고, 백성들이 교회를 칭송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성령에 충만한 사도들이 예전의 예수님처럼 복음을 아주 심도있게 전합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그 제자들에게서도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그림자만 비쳐도 병든 사람이 나아버렸습니다. 교회는 가장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고 백성들이 교회를 칭찬합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들은 자신들이 가짜라는 사실이 사도들 때문에 드러나는 것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하였고, 그들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도들을 체포하였으며, 채찍질하고, 협박하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천사들에게 의해 풀려나고, 그들은 아무 제재 없이 다음 날 성전에서 또 복음을 전합니다.

아무리 부인하려고 해도, 예수와 그 제자들 때문에 부인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단지 있겠거니’ 생각했던 것을 “있습니다”로 고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분노하고, 사도들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어 어떻게 하든 진실을 덮으려고 애를 씁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봐야 부질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 그들은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도 사도들처럼 “믿습니다”라고 하려면, 이제껏 그들이 살아왔던 것을 포기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개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은 시기심에 가득하였고, 권위의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피해의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들의 잘못과 거짓된 모습을 순순히 인정하고, 회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마음이 완악해 있었습니다.

이번 100일 기도문에 보면,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심어주셔서 완고한 마음을 버리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게 참 중요한 것입니다. 우린 완고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셔서 진리 앞에 고개 숙이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는 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사는 길보다 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3.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 무너지지 않는 반석에 세운 집

이렇게 마음이 완악하여 제자들을 죽이려고 하는 공회원들에게 같은 공회원이지만 출신이 다른 랍비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중재안을 내놓습니다. 가말리엘은 우리가 잘 알다 시피 사도 바울의 스승이 되며, 당시 가장 존경받는 바리새인 랍비였습니다. 랍비 중에서 랍비의 스승이라 일컫는 칭호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추측해보건대 그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미안한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에 내심 당황하면서도 호기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도들을 굳이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죠.

이 현명한 랍비는 당시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이 제자들 때문에 너무 당황해서 지금 감정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는 제안을 하나 하게 됩니다. 그의 제안은 우리가 손대지 말고 그냥 두자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드다와 유다라는 급진과격파들이 백성들을 선동해서 일을 벌이려다가 그들이 죽자 없던 일이 되어 버렸지 않는가? 이처럼 사람들이 억지로 일으킨 일들은 그 우두머리만 죽고 나면 그냥 없어져 버린다. 그냥 두어도 없어질 것 우리가 힘을 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또 만일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꼴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어제만 해도 꼭꼭 잠긴 감옥 문을 아무 흔적도 남겨두지 않고 감옥을 나온 것 보지 않았느냐? 이거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의 대적자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듣고 보니 그 말이 맞거든요. 그래서 공의회는 사도들을 석방하게 됩니다. 그래 한 번 두고 보자, 진짜면 진짜의 면모를 갖출 것이고, 가짜면 곧 가짜로 드러날 것이다. 시간이 판단해 줄 것이다. 그렇게 믿었던 것이죠.

여러분, 가말리엘이 한 말을 잘 새겨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은 무너지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이 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무너지지만,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홍수가 나도 끄덕 없다며,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운 집이 그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집은 어디에 세워져 있습니까?

 

톰모너건_도미노피자

미국 미시간주의 성 요셉보육원에 아주 포악한 고아 소년이 있었습니다.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웠고, 학교에서 퇴학까지 당했으며, 그런 아이를 아무도 입양하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고아 소년은 웃음과 눈물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베레다 수녀가 그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놓지 않는다. 너를 사랑한다. 힘들 때는 울며 기도하여라.”

소년은 이 말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음을 고쳐먹고, 피자 만드는 기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피자 만드는 일에 몰입했습니다. 마침내 피자 한 판을 11초에 반죽하는 최고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피자 체인점을 만들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도미노 피자를 만든 톰 모너건입니다. 그가 최근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이 이제껏 내가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일과 내가 얻었던 돈, 요트, 좋은 집 등 그 어떤 것보다 더 훌륭하였습니다.” 

여러분, 당시 진짜를 보고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의 공의회는 무너져버렸습니다. 예수가 진짜인가 한 번 기다려보자고 했던 그들은 모두 역사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역사의 주인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토대가 되었다', 이 말은 지금 이 시간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의 간증이기도 한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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