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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결핵퇴치에 앞장선 셔우드홀 선교사의 묘비명

코이네 2015. 1. 14.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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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결핵 퇴치에 앞장 선 셔우드홀

 

 

1991년 4월 5일 셔우드 홀(S.Hall)이 98세를 일기로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한 카나다 출신의 의사이다. 그의 생전에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흔치 않았다. 그런데 그의 유해가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이유는 그의 부모와 누이가 묻혀 있는 그곳에 함께 묻히기 위해서였다.

 

 

셔우드홀 그는 어떤 사람인가?

 

셔우드 홀 Sherwood Hall. 1893년 11월 10일 서울 출생. 1991년4월5일 사망. 캐나다인.

 

선교사인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忽)과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許乙) 사이에서 태어났다.

 

홀은 1911년 미국 오하이오 주 마운트허먼(Mount Hermon)학교를 거쳐, 1919년 마운트유니언 대학을 졸업하고 1922년 매리언과 결혼했다. 1923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4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홀츠빌 서퍼크 결핵요양소에서 결핵을 전공했다. 1925년 8월 미국 감리회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926년 4월 19일 부인 매리언 버텀리(Marian Bottomley)와 함께 내한하였다. 

 

 

 

셔우드홀부부셔우드홀 부부

 

1926년 7월 해주구세병원(Norton Memorial Hospital) 원장으로 부임하여, 의창(懿昌)학교 교장직도 겸임하였다. 운산금광(동양연합광업회사) 담당의사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1928년 10월 27일 해주 왕신리에 폐결핵 퇴치를 위하여 한국 최초로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했다.

 

결핵요양원의 필요성에 대하여 셔우드는 “결핵은 다른 나라에서는 20명에 한사람 꼴인데 한국에서는 5사람 중 한사람 비율로 희생자가 난다. 일단 병균이 침투하면 한국인은 병을 피할 수 있는 희망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결핵은 불치의 병으로 <부끄러운 병>이며, 악귀의 기분을 상하게 한 사람이 운명적으로 받는 벌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요양원은 치료뿐만 아니라 계몽과 교육 목적에서도 꼭 필요하다.”고 했다.

 

결핵치료의 재원마련을 위해 1932년 크리스마스 씰을 도입했으며, 이후 1940년까지 9회에 걸쳐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으나, 일본 헌병대에 스파이혐의로 체포되어 벌금 5000엔과 함께 국외추방되었다.

 

한국에서 추방당한 1941년부터 1963년 은퇴할 때까지 인도에서 결핵퇴치에 앞장섰으며, 1991년 4월 5일 98세를 일기로 별세. 4월 10일 리치먼드 사우스 암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유해는 유언에 따라 한국으로 돌아와 1991년 4월 17일 대한결핵협회 장(葬)으로 양화진 제1묘역에 안장되었다.

현재 양화진 제1묘역에는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 홀, 어머니 로제타 셔우드 홀, 셔우드 홀의 쌍둥이로 태어난 날 죽은 프랭크, 여동생 이디스 마거릿, 셔우드 홀, 91년 9월 19일 타계한 아내 매리언 버텀리등 홀家 6명이 잠들어있다.

 

그의 아버지 윌리암 홀(W.J.Hall) 그의 어머니 로제타 호을(R.S.Hall)도 의사부부로서 한국에서 헌신하다 한국에서 숨지고 묻힌 사람들이다.

 

 

셔우드홀_묘비셔우드홀의 묘비

 

 

 

그들의 묘비에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 14:8)

 

라는 성구가 씌어 있다.

 

2대에 걸쳐 한국인에게 봉사한 공을 찬양해 1984년 한국정부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서울시에서는 명예시민증을 수여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