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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으로서의 교회 / 지승룡 목사

코이네 2015. 12. 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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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으로서의 교회

지승룡 | (주)민들레영토대표이사

 

1.  왜 문화이어야 하는가?

 

첫째, 교인 감소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민족 복음화를 위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 소박한 꿈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불가능한가를 지금은 알기에 가슴 아픈 마음으로 이 글을 적습니다. 우선 한국교회 성장이 안타깝게도 1980년대에 멈추었습니다. 대충 교인수가 전체의 20%이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는 15%이하에서 멈추고 있다는 것이 정확한 통계입니다. 특히 1990년도부터는 대다수 교회의 교인수가 감소되었고 마이너스 성장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물론 급성장한 교회도 있지만 대부분은 능력 있는 목회자와 교회로 수평이동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기독교 반감이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기독청년잡지에 난 통계에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의 호감도가 불교, 유교, 천주교와 비교해서 가장 반감이 높은 종교로 나왔고 70%정도의 일반인은 기독교에 대한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망스러운 조사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전도가 상당히 힘들어질 것이고 기독교 확장이 이제는 장벽에 부딪혀 기독교 외연확대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분열과 사명감 상실, 교회와 사회와의 단절, 교회 지도자의 부패 등이 이런 반감을 크게 했을 것입니다. 결국 민족 복음화는 구호에 불과한 허구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교인수가 전체적으로 준 것도 문제지만 더욱 걱정스런 것은 일반 사회에서의 기독교인의 대 사회 장악력과 영향력이 아주 약하다는 데 있습니다. 3·1운동 당시 1%미만의 교인수로 사회적 영향력과 모범을 보였다면 지금은 그 영향력이나 사회적 기대가 오히려 그 때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실제 우리 크리스천들이 대 사회적 능력이나 도덕적 감화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넷째, 민족 복음화는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위의 열거한 부정적인 면이 우리에게 있다 할지라도 우리의 결론은 민족 복음화이고 포기할 수 없는 사명이 민족 복음화이기에 지금 깨어 있는 신앙인들을 통해서 회자되고 있는 ‘문화선교’를 꼬투리로 해서 민족 복음화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2.  문화선교의 정의

 

문화선교는 21C를 이끌어 가는 문화세대 속에서 문화를 도구로 해서 선교하는 도구이론과, 문화 자체를 선교의 대상으로 하는 하나님의 선교차원에서 문화를 향한 선교를 감당하는 목적이론이 있는데, 이 두 가지를 같이 이루는 것이 문화선교의 역량을 확장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5대 직무가 예배, 교육, 친교, 전도, 봉사라고 일반적인 정의를 한다면 교회가 문화공간으로의 기능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제1의 공간:

전통적인 한국교회는 ‘방주’입니다. 방주 안에 있으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고, 방주 안은 구원이고 방주 밖은 죄악이란 생각입니다. 방주형 교회는 1960년대까지 한국의 대표적 교회 상으로 예배와 전도가 핵심이었고 교회성장만이 교회의 사명을 유일하게 감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아직도 어깨띠를 두르고 ‘예수천당 지옥불신’을 외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실제 필자가 서울 명동에서 이런 전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사를 해 보았더니 비신자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더 크게 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제2의 공간:

1970년대가 들어서면서 어느 정도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형성되면서 여러 모순과 소외그룹이 나타날 때, 이런 현실에서 교회는 부패하고 부정직한 사회를 견제하고 소외계급을 위한 위로와 그들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인권과 정의 서민들의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참여의 공간으로 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시도는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적극적이었는데 결국 사회적 이미지를 높히고 소외계층이나 청년층을 교회로 유인하는 간접적인 효과를 주어서 최근 가톨릭의 성장에는 이런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제3의 공간:

1990~2000년대가 되어서 한국교회는 혼돈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무리 전도를 강조하고 강요해도 또 부흥회를 열어도 사람들이 교회로 오지 않았고 사회개혁을 위한 강좌나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상을 노크해도 거의 무관심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방주형 교회관을 가진 전통적인 사람들도, 참여형 교회관을 가진 개혁적인 사람들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위기상황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화여대 손운산 교목은 “교회가 지금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원화되고 전문화되고 구조화된 사회 속에서 교회의 영향은 거의 전무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 어떤 영성이나 종교성을 형성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영성과 종교성에 관심이 없거나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그들의 영성과 종교성을 다른 형태, 즉 세속을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틀을 갖고 찾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교회는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삶의 한복판인 문화를 새롭게 보아야 하며 그 문화와 연대하고 녹아 내는 문화공간으로 교회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많은 시도들

 

교회가 선교적 한계를 절감할 때 새로운 시도를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해 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시도가 개인적으로 혹은 이상적으로 있었기에 성공하지를 못했고 경험이 이어지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것이 교회지도자나 신학자들의 깊은 관심과 지원 속에 있고 그것에 대한 신학적이고 목회적인 고찰이 있다면 상당히 바람직했을 터인데 그동안은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교회 내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이 상당 부분 시도되고 있으며 문화선교에 대하여 여러 신학적인 연구가 따르고 구체적인 실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대형교회에서 교회공간을 오픈하고 예배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달라지고 매주 목요일 다양한 공연과 행사를 일반인들과 청년들에게 개방하여 직접적인 전도를 하지 않아도 교회의 영향력을 높여 전도의 가능성을 열었고 CCM이나 워십댄스를 통해서 신나고 재미있는 열정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예배가 고리타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또한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카페 등을 열어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4.  문화이해를 위한 작은 시도

 

첫째, 교회건물의 아름다움을 주변환경과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가를 생각하고 건축 시부터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어둡고 권위적인 외형을 벗어나 좀더 밝고 세련된 모습이 필요합니다.

 

둘째, 본당이 예배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교인 전체의 친교를 위한 공간으로 공연과 다른 집회를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으로 향상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조명시설을 현대에 맞게 바꾸어야 하며 음향은 듣는 소리가 아닌 느끼는 소리가 나도록 설치되어야 합니다.

 

셋째, 친교실을 대중성 있는 공간으로 다양하게 개발하여 교인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완전 오픈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넷째, 교육관을 교회 부속관으로 사용하지 말고 학생들을 위한 숙소나 입체적 교육체험을 시킬 수 있는 현장체험의 장으로 활용하면 좋습니다.

 

다섯째, 교회 안에서만 교회공간을 운영하려고 하지 말고 한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곳에 서점, 카페, 슈퍼, 부동산, 독서실 등을 교인들과 연결하여 사업성과 목적성이 같이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인 모색이 요구됩니다.

 

여섯째, 교회공간 운영의 결정을 교회 항존직을 지닌 분들이 일반적으로 결정하는 데 청년들과 교회학교 학생들 그리고 지역유지를 포함해서 운영을 하면 좋을 것입니다.

 

일곱째, 교회가 교회의 주요목적과 함께 지역사회를 위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상당한 전문적인 식견과 그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많은 연구도 필요합니다. 성공적인 운영을 하는 곳을 잘 참고해야 할 것이며 훈련된 인물들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필자가 경험한 것은 교인성장을 어느 정도 이룬 분들이 교회를 건축하면서 사회문화센터처럼 운영한다고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한 후에 활용도를 찾지 못하고 프로그램을 실제 운영하지 못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여덟째, 돈이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관심과 정성이 있다면 재정이 따르지 않더라도 교회가 문화적인 공간이 되어 교인들의 선교적 사명 고취와 사회선교를 아주 잘할 수 있습니다.

아홉째, 기존의 교회 개념적 사고를 버리고 창조적이고 본질적인 교회 상을 구현하면 됩니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갖고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면 절대 문화 창조적인 교회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지도자의 열린 사고와 말씀에 든든히 서 있으면서 소신을 갖고 밀어붙이는 힘이 문화공간으로서의 교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5.  작은 문화공간 실천

 

필자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문화공간 형식의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0평에서 시작해서 수 년 만에 수천 평의 공간으로 확장되었으니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운영하면서 필자는 신학적인 지식과 목회적 경험이 제일 중요한 경영요소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처음 인테리어를 할 때 자본이 없어서 업자를 정하지 못하고 직접 했습니다. 비록 문외한이었지만 정성으로 하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고집을 갖고 인테리어를 하늘과 땅 인간을 주제로 행복한 천지창조를 구성했는데 손님들이 좋아하시더군요.

 

주일날 점심을 나누어 먹는 것을 응용해,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한다는 말씀을 “드시고 더 드세요”라는 리필 프로그램으로 개발했는데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프로그램이 되어서 손님들이 우리 공간에서 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첫 단추를 열게 되었습니다. 독서실, 세미나실, 서점, 영상실 등 건강한 공간이지만 수익성에는 문제가 될 것 같은 것들이 오히려 효자 공간이 되었습니다.

 

결국 필자의 결론은 고객 중심의 사고를 갖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지극정성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문화공간으로서의 교회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어야 합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에 문화적 콘텍스트(context)를 적극 이용하고 참여해서 하나님의 선교영역을 더욱 넓혀야 할 것입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