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문화

벤허의 작가 루 웰레스의 회심이야기가 날조된 것이라니

코이네 2016. 3. 2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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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원장이신 양승훈 목사님이 벤허의 원저자 루 웰레스의 회심이 왜곡된 이야기임을 밝힌 글이 있어 여기 소개합니다.

 

언젠가 제가 섬기는 학교 채플 설교를 준비하면서 예화로 사용하기 위해 벤허(Ben Her)의 작가 월레스(Lewis "Lew" Wallace, 1827–1905)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벤허’는 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든 영화입니다. 월레스가 1880년에 발표한 ‘벤허’(Ben-Hur: A Tale of the Christ)라는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월레스를 소개하는 문헌을 보면 그는 변호사·주지사·정치인·장군·역사소설가라고 적혀 있습니다.

 

 

Lew Wallace (루 윌리스)

 

미국의 작가, 군인, 법률가, 정치가. 1827년 인디애나 주 브룩빌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시와 짧은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낭만적 기질과 혈기왕성한 행동력의 소유자로, 1845년 멕시코와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자 아직 학생임에도 스스로 의용군을 모집해 출정하려 했고, 이에 반대한 아버지가 학비 지원을 중단하자 열여섯의 나이에 자립하여 지방신문 기자로 일했다. 서른 살 때 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861년 남북전쟁 시에는 인디애나 주 연대장으로 출정해 도넬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샤일로 전투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어 격렬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변호사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해, 1873년 역사소설 《아름다운 신(The Fair God)》을 출간했다. 이 작품은 2년 동안 15만 부가 팔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5년간의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집필 과정을 거쳐, 1880년 《벤허》를 세상에 내보냈다. 출간 직후 비평가들의 반응은 미미했으나 점점 대중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판매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가 출판될 때까지 50년 동안 미국 소설사상 최대의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또한 소설로는 처음으로 교황의 축성을 받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이름을 올렸다.

《벤허》에 감명받은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으로부터 터키 주재 공사를 임명받아 4년 동안 임무를 수행했고, 귀국하여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썼다. 1893년 또 다른 역사소설 《인도의 왕자(The Prince of India)》를 출간했으며, 1905년 자서전을 집필하던 중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실 이전에도 저는 월레스 장군에 대해 다른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요한복음 강해를 준비하다 보니 그 분의 얘기가 적절한 예화가 될 것 같아서 자세히 찾아본 것입니다. 월레스 장군의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목사님들이 설교 시간에 즐겨 사용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루웰레스_무신론자 루 웰레스가 무신론자였으며 그가 회심하여 벤허를 썼다는 내용의 동영상

 

 

미국 남부에 월레스라는 장군이 있었는데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언젠가 그는 유명한 무신론자 잉거솔(Robert G. Ingersoll)을 만났는데 그는 월레스에게 기독교의 가르침은 다 거짓말이고 쓸 데 없는 것이며, 기독교는 믿을 수 없는 거짓 종교임을 증명하는 책을 쓰면 대단한 베스트 셀러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웰레스는 성경의 허구성을 철저하게 파헤쳐서 성경의 이야기가 허무맹랑한 거짓임을 밝히고, 인류를 신에게서 해방시키기로 작정했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서 거짓된 내용을 찾아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읽어가는 가운데 성경 속에서 거짓을 발견하기는커녕 도리어 성경에서 놀라운 진리를 발견했다. 성경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그는 마음속에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으며, 마침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가 예수를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양심은 "아니야, 그렇지 않아.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경은 진리야!"라고 부르짖는 것 같았다. 결국 월레스는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 말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었다. 기독교를 파괴할 목적으로 2년 동안 열심히 자료를 찾으며 연구하던 그는 끝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다. 기독교를 비판하려고 들었던 펜을 꺾고 그는 만인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사람을 예수께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 ‘벤허’를 썼다.

 

 

벤허_전차신 영화 벤허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전차전투씬

 

 

 

정말 설교에 사용하기는 너무나 좋은 예화지요. 특히 성경은 믿을만한가를 의심하는 사람들, 성경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감동적인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월레스에 대해 조사하면서 그 동안 설교 예화로 그렇게 많이 인용되던 위 얘기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월레스는 ‘벤허’의 원저자일 뿐 아니라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장군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남아있습니다.

 

문헌들에 의하면 그는 처음부터 무신론자도, 반기독교적 성향의 인사도 아니었습니다. 열정적인 신앙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일평생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성경 얘기를 들으면서 자랐고, ‘벤허’를 쓰기 전에도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까지 가는 얘기를 소설로 쓰기도 했습니다.

 

자서전 ‘나는 어떻게 벤허를 썼는가’와 1899년에 발표한 ‘첫 성탄’ (The First Christmas) 서문에서 그는 ‘벤허’에 “예수님이 탄생하셨던 당시 세계의 종교적, 정치적 상황들”(religious and political conditions of the world at the time of the coming)을 그렸다고 했습니다. 그는 글을 쓰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a conviction amounting to absolute belief in God and the divinity of Christ)을 갖게 되었지만 원래 기독교를 파괴하기 위하여, 혹은 성경을 부정하기 위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가 결국에는 ‘벤허’를 썼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양승훈 목사님의 글입니다. 이 글 다음에 목사님은 은혜가 되기만 하면 사실을 왜곡 날조해도 된다는 생각과 선교가 되기만 하면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기독교의 탈을 쓴 이데올로기라며 비판하는 내용이이어집니다. 저도 설교에 몇 번 인용한 내용이기에 이 글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벤허 서문의 내용을 찾아봤더니 한 네티즌께서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주셨네요.

 

Wallace가 Ben Hur의 서문에서 밝힌 본인의 저술 동기에 나온 내용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Wallace는 어릴 적 동방 박사 이야기를 가장 감명 깊게 들었고, 잡지사에 보낼 목적으로 그에 관한 글까지 썼지만, 서랍에 묵혀 두고 만다.

2. Wallace는 유명한 목사들의 연설문을 종종 읽었지만, 화려한 문체에만 주로 관심이 있었다.

3. Wallace는 공화당 총회에 가던 열차 간에서 철저한 무신론자인 Ingersoll과 신과 종교에 대한 토론을 하게되고, 그의 반기독적인 화려한 논설에 압도 당한다.

4. Wallace는 열차에서 나와 객사로 걸어 가면서, Ingersoll에게 가부간 논박치 못한 자신의 무지와 무관심을 반성하고, 관련된 모든 사항들을 철저히 연구하여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에서 십자가의 수난에 이르는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진정으로 가치있는 주관을 세울 수 있기를 원했다(after which, possibly, I would be possessed of opinions of real value.)”

 

그는 이런 이유로 글을 쓰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a conviction amounting to absolute belief in God and the divinity of Christ)을 갖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인으로 살아왔지만 그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던 그에게 무신론자 잉거솔의 도전은 참된 신앙인이 되도록 일깨우는 반면교사가 되었고, 그 후 마침내 온전한 신앙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