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할례와 아브라함의 개명 그리고 포경수술에 대한 논란

코이네 2011. 4. 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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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할례와 포경수술, 그리고 아브라함의 개명



창세기 17장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는 인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누구 말처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을 보면 그 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때 나타나셔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언약의 백성이 되는 표징을 몸에 새겨 언제 어디서라도 그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이름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그와 함께 내년에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다시금 약속해주십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이름을 바꾸게 된 것부터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이 아브람입니다. 창세기 17장까지는 아브람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이후부터는 아브라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아내 역시 원 이름은 사래인데, 이후부터는 사라가 됩니다. 비슷한 것 같은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아브람이 ‘고귀한 아버지’라는 뜻인데,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조상’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래 역시 ‘귀부인 또는 여주인’이란 뜻인데, 사라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름을 바꾸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더 큰 비전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한창 나이일 때가 아닌 99세의 할아버지에게 말입니다. 그가 175세에 죽었으니 99세면 중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이 비전은 남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부부 모두에게 주어졌다는 것이죠.

아브라함을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좀 더 혈통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4장 16절에 구원은 믿음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증명된 것이라고 논증하면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즉 아브라함의 온전한 믿음을 통해 후세에 혈통은 다르지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그 귀감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또한 그리스도인은 죽을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몸도 마음도 믿음도 그리고 비전도 그렇게 성장하되, 우리가 예수님처럼 될 때까지 성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비슷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릴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더욱 성장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이 보수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보수라는 말은 이전에 좋았던 것을 지키며 살아가자는 삶의 방식인데, 우린 이전에 좋았던 것에 머물며 살자고 하는 순간부터 죽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달라져야 합니다. 달라지되 목표가 분명합니다. 바로 예수님처럼 달라지는 것입니다.


변명표정

이 그림 제목이 "변명표정"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또 하나의 명령은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끝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포경수술을 하라는 것이죠. 이렇게 몸에 하나의 표식을 새김으로써 두 가지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남에게 없는 표식이 내 몸에 있기 때문에 남과 구별된다는 것이며, 이 표식을 볼 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된다는 것이죠. 즉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할례가 갖는 의미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숙지해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분리된다는 뜻입니다. 즉 죄에서 분리되어 하나님을 닮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에 몸담고 살아도 그 속에서 거룩함을 잃지 않도록 세상 사람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는 매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살아갈 때 가능한 것이죠. 이스라엘 백성들 중 남자는 태어난 지 8일이 되면 이 의식을 행하여 유대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였고, 우린 할례 없는 이방인들과 다르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의미는 우리 개신교에서 유아세례 의식에 접목이 되어 있습니다. 아직 어린아이지만 이 아이도 하나님의 귀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하나님의 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며, 이 아이를 믿음으로 키우겠다고 부모가 서약할 뿐 아니라, 교회가 그 책임을 함께 지겠다고 언약하는 것이 유아세례가 갖는 의미입니다.

 요즘 포경수술에 대해 논란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의 의학자들은 성경을 근거로 해서 포경수술이 갖는 의학적인 효과에 관심을 갖고, 위생적으로 또한 성적인 능력을 키우는 데 포경수술이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이는 비뇨기과 의사들의 농간이라고 반박하며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이 할례가 신앙논쟁의 쟁점이 되어,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될 때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측과 그럴 필요 없다는 측이 팽팽히 맞서다 마침내 받을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받아야 한다는 측은 그리스도인이 되더라도 일단은 먼저 이스라엘 사람이 된 후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으며, 할례는 곧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는 표식이기 때문에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구원을 어느 한 민족에 국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안식교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합니다. 그들은 성경대로 살아야 한다며,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을 그대로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죠. 그래서 이단이 된 것입니다.

요즘 목회를 하다 보니 저는 이 할례에 대한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정말 안타까운 것은 인사 청문회나 크고 굵직한 비리를 밝혀내는 청문회에 나온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들입니다. 이번 한기총 사태에서 보듯이 교회의 정치 문화도 우리 세상의 문화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비리와 불법으로 얼룩져 있고, 이런 모습이 개 교회에도 만연해 있다는 것이죠. 어떤 경우는 불법을 저지르는 데 있어서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한 부분도 있고, 더 나쁜 것은 이런 불법으로 이루어진 일을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되었다는 식으로 포장하거나 합리화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우리교회에 승합차를 한 대 구입하면서 교회표지를 차에 부착하느냐 마느냐로 조금 논란이 있었습니다. 괜시리 교회 표지를 달고 다니다가 불법을 행하게 되면 하나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 좋은 우리 성도들, 우리 교회 이름 걸고 제대로 운행해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어 마침내 표지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차 주일에는 담당 집사님들이 운행하시지만 평일에는 제가 거의 운전해야 하는데.. 좀 걱정입니다. 이렇게 예수쟁이 표내고 다니니까 아무래도 조심스러워지구요. 조심스러워져야지 교묘해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 이름에 숨겨진 비밀
갈수록 꼬여만 가는 인생 앞에 선 당신
아브라함에게 계약서를 써주신 하나님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