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교육

교육개혁 '어떤 사람'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서 시작해야 한다

코이네 2017. 7. 3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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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교육한다고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어떤 사람”에 대한 목표가 분명할 때 교육은 방향성을 갖게 되며, 어떤 사람을 교육하기 위한 각종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환경 속에서 실제로 우리 아이들은 교육을 받으며, 그 환경의 영향 속에서 한 사람의 성숙한 인격으로 또한 사회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며 자라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사람”에 대한 고민이 더욱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어떤 사람에 대한 아주 포괄적인 것에서 좀 더 현실감 있게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좀 더 다양한 방면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 이 고민은 곧 교육의 목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 내는 것으로 구체화될 수 있다. 기존에 가졌던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끊임없이 토론하고, 이런 것에 대한 다양한 실험적인 모델들이 나오며,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노력을 이어갈 때, 우리는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며, 이렇게 형성된 기반은 새로운 것을 이어가는 토대로 이어질 때 교육은 발전해갈 수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는 이 “어떤 사람”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전의 조선왕조가 무너지고, 식민지 시대가 되었을 때, 우리 민족의 맥이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약 35년간의 일제통치에 의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하였고, 타의에 의해 우리의 모습이 조종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해방이 되고나서도 오랜 기간 군부독재로 인해 사회는 폐쇄사회를 지향하였고, 이 사회는 국민들의 합의에 의해 이끌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독재자와 지배층에 의해 주도되어졌고, 이끌어져왔다. 그 오랜 세월이 국민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정체성을 세울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부산대학교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급변하는 사회 현상 또한 이런 “어떤 사람”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이 나라는 해방 후 지금까지 그야말로 격동의 세월을 겪었다. 우리 내부의 역사 또한 쉼 없는 변혁기를 거쳐 갔고,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 또한 엄청난 변화를 이루고 있어, 우리는 자기 정체성보다는 어떻게 하든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적 위기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저는 “어떤 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되, 좀 더 안정성을 확보한 상황에 있는 것이었다. 이른 바 경쟁력에서 우위를 갖는 것이었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긴급한 과제였으며, 교육 또한 이런 상황에 매몰된 채 끌려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 있어서 학교란 어떤 곳인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하는 환경이며, 이런 교육의 목적을 갖고 만든 기관이 바로 학교이다. 학교는 교육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어야 하며, 교육에 필요한 환경을 제대로 갖추어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교육환경으로서의 우리 학교는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학교가 교육하는 곳으로서의 기능에 실패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떤 사람”에 대한 논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이라 할 수 있는 모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이 학교를 자퇴하며 대자보를 남겼다. 그녀의 말을 일부 인용해보면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도.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었다. 우정도 낭만도 사제간의 믿음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순수한 시절 불의에 대한 저항도 꿈꿀 수 없었다...그리하여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한번 다 꽃피지도 못하고 시들어 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쓸모 없는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이제 나에게는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하다. 자유의 대가로 나는 길을 잃을 것이고 도전에 부딪힐 것이고 상처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삶이기에, 삶의 목적인 삶 그 자체를 지금 바로 살기 위해 나는 탈주하고 저항하련다. ”   

 

이것은 단지 이 여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제기하고 아파하는 현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참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아무 목표도 목적도 없이 표류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에 대해 실제적으로 도전하는 현상이며,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몸부림이 있다는 것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는 또 다른 새로운 희망을 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아직 차분하게 “어떤 사람”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할 수 없어서 이런 사회적 현상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도전을 통해 이 여학생이 대자보 말미에 “이제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동시에 대학을 버리고 진정한 大學生의 첫발을 내딛는 한 인간이 태어난다. 이제 내가 거부한 것들과의 다음 싸움을 앞에 두고 나는 말한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라고 한 것처럼, 우리 사회가 환골탈태할 수 있는 새로운 여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며, 여기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이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