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엡1:1]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코이네 2017. 10. 10.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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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본문 : 엡1;1-4

2017.10.8.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분의 말씀으로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였다고 하니 사람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도깨비 방망이 두드리듯 장난삼아 물 나와라 뚝딱그런 식으로 세상을 창조한 것 같이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한 다음 그 마음에 흡족하여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부분을 생각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술가가 자신의 마음에 흡족할 정도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합니다. 대충 장난하듯 만들어서는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정열과 정성, 솜씨와 있는 능력 없는 능력 다해야 겨우 그런 작품을 한 두 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실 때 당신의 능력을 다해서 정말 열정과 혼신의 힘을 쏟아 넣어 만든 것이며, 이 세상은 그런 하나님의 노력의 결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어 놓고는 너무 좋다고 하였습니다. 이전의 다른 것을 만들 때보다 더 혼신의 힘을 쏟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이 계획한 일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최선의 노력, 혼신의 힘을 다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 우주가 만들어졌고, 사람이 만들어졌고, 지금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도 그러셨지만, 죄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도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먼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셔서 우리 사람들을 이해하며,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셨고, 참 사랑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어야 마땅한 데,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의 죽음 대신 그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그 아들 예수의 생명과 맞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찾아가셔서 이 복음을 알리셨습니다.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도 포기하지 않고 믿을 때까지 당신의 사자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직접 나타나시기 해서 어떻게 하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나를 구원하겠다고 하는 불굴의 의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그 은혜로 믿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동되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천지창조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 지금의 다마스쿠스라는 지역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길을 가다 예수를 만났고, 그는 구원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연히 그 길을 가다 환상과 현실 속에서 예수를 만났고, 그 음성을 들었고, 마침내 예수가 그리스도 나의 구세주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깊어가면서, 하나님을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이건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나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깊이 계획하셨고, 때를 기다리셨고, 그리고 마침내 믿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믿는 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엄청난 노력의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믿고자 해서 믿게 된 것이 아니라 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그 절실한 염원, 그 노력과 사랑, 포기하지 않으신 불굴의 의지, 하나님의 그 사랑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내가 믿고자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믿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더 깊이 묵상해보니, 믿는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그 계획을 만드셨고, 실행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바울도 그렇지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할 계획을 하셨고, 마침내 여러분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구원의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믿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 예정대로 이루어진 것이고,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예정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구원을 받아들이면 그제서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한 말씀대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이 놀라운 예정을 이해했기에 자신을 소개할 때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

 

나는 누구냐?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사람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고, 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간다.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바울은 에베소서 첫 머리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은 에베소에 사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한다.” 바울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가 된 것처럼, 에베소 교회에 있는 여러분 역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한 사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이 시간 성령을 통해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소토교회에 있는 여러분들을 향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받을 수 없는 특별한 복이 있고, 그 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어떤 복입니까? 3절을 읽어봅시다.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어떤 복이라구요? “신령한 복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 신령한 복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땅의 복의 아닌 하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이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복을 말할 때 흔히 오복을 말합니다.

((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을 말합니다. ()長壽(장수)하는 것, ()은 부유한 삶을 영위하는 것, 물질적으로 넉넉하게 사는 것, 康寧(강녕)은 우환이 없이 편안한 것, 몸이 건강하고 마음이 편안한 것, 攸好德(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며 즐겨 덕을 행하려고 하는 것, 考終命(고종명)天命(천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명대로 살다가 편히 죽는 것 이러한 복은 세상적인 복입니다. 그런데 전도서를 보니 이것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이런 세상적인 복도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에게 이 복이 흘러넘치길 바랍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오복을 누리고 살아가도 하늘의 신령한 복이 없으면 세상의 복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나그네가 홀로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걱정에 휩싸였습니다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하거나 마실 물이 있는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하면 영락없이 죽을 형편이었습니다. 나그네는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며 걸음을 재촉했습니다그때 나그네는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제 살았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분명히 마을이 나타날 것이다. 이 발자국을 나침반 삼아 부지런히 걷자나그네는 발자국을 따라 열심히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마을과 오아시스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밤이 되자 섬뜩한 생각이 들어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발자국을 따라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알지 못하면 사막을 헤메는 이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 뿐입니다. 우리는 신령한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지상적이며 육적인 축복이 아니라 천상적이며 영적인 복입니다. 성도들이 누려야 할 참된 축복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신령한 복을 깊이 누렸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스스로 예수의 종이 되길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이 종으로 충실하기 위해 온갖 어려움과 고난, 시련과 역경, 죽음의 위기도 마다하지 않았고, 마침내 이 때문에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를 보면 충실한 종들을 칭찬하면서 그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라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이제 많은 것을 맡길 것이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세일즈맨이며, 성공학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그 지글러는 교회에는 세 종류의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속적인 성공과 욕망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예수에 대해 알기는 하지만 실제 만나지 못하거나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는 너무 비장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신앙하면 오직 십자가를 지는 것과 순교하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기쁘고 행복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령한 복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으로 참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부르시며, 우리의 수고와 노고를 인정하셔서 고생해도 가치가 있고, 복이 있는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에베소서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 본문의 하늘의 신령한 복까지 합쳐서 신자가 이미 하늘에 속해 있다고 5번이나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신자는 이 땅에서부터 영원과 연결되어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차원을 정말 하늘에 속한 자답게 한 차원 더 높여야 합니다. 천국에서만 혹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해야만 주님과 함께 이 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분의 뜻을 이 땅에서부터 얼마든지 펼칠 수 있습니다. 하늘의 거룩한 보배를 이 땅으로 옮겨 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확신과 헌신이 있는 신자를 통해서만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십니다.

 

나이팅게일은 30세 되던 날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가 그의 사명을 시작한 나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 헌신적인 간호사로서 나이팅게일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으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길 축원합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