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인간을 구원하는 하나님 그 신비한 비밀에 대하여

코이네 2017. 9. 21. 21:54
>

하나님의 구원 그 신비한 비밀에 대하여
로마서 11장 25-36절

 

롬11:25-26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한 비밀을 알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비밀은 이러합니다. 이방 사람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일부가 완고해진 대로 있으리라는 것과,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는 밀교라는 것이 있었다.

그들의 교리는 등급별로 비밀에 부쳐져 있어 신비로움을 갖게 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교리를 등급화 시켜 놓으면, ' 지금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난 좀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지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한다.

그래서 점점 더 깊이 그 종교에 빠지도록 하는 유도 장치가 되는 것이다.

여호와 증인이나 요즘 기승을 부리고 있는 신천지 이단들이 이런 류의 조직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런데 바울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비밀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당시 다른 종교와는 달리 이 비밀은 감춰진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공개된 비밀이라고 말한다.

 

 

공개된 사실이 어떻게 비밀이 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구원의 계획은 성경을 통해서 완전히 공개되어 있다. 이 외 달리 감춰둔 것이 없다. 대제사장급 정도 되어야 열람할 수 있는 그런 비밀 문서 같은 것은 없다. 지금 일반인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성경에 모두 나와 있고, 이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된 것이다. 누구나 읽고자 한다면 읽을 수 있고, 연구하고자 한다면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공개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그 공개된 내용이 믿어지는 사람이 있고, 믿겨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믿겨지는 사람이나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 놀란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 대단해서 놀라고, 이렇게까지 해서 구원하고 하는 하나님의 의지와 사랑에 놀라고, 또 하나님의 그 희생이 믿겨지지 않아 놀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은 신비롭다. 알듯 모를 듯, 때로 이해가 갔다가도 어떨 땐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그래서 신비롭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특혜를 받았다.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족속이 된 것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잘 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가를 예수님이 이땅에 왔을 때 드러났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안다는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해 무지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러면 살아왔는지,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놀랐고, 당황했고, 부인했다. 그래서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시켜 죽였다. 동원할 수 있는 온갖 불법을 다 동원했다. 

 

예수님은 정치적 희생양이었고, 억울하게 죽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예수의 죽음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셨다. 그의 아들을 사람들을 용서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삼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이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그 죄와 무관한 흠없는 양이나 소를 성전에 가져와서 자신의 죄를 그 죄없는 짐승에게 전가시킨 후 그 짐승을 죽였다. 그 짐승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그 고기는 불에 태웠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죽을 죄를 용서받은 것이다. 이 제물이 바로 희생제물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예수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의 죽음을 통해 예수를 죽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셨고,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셨다. 이것이 죄인인 사람들을 용서하는 하나님의 용서법이다.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게 해 ,죽여도 시원찮을 죄인된 인간들을 살리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법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난 도무지 하나님이 왜 이러셨는지 모르겠다.

신학적인 논리로는 뭔가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데, 도무지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하나님 머리로는 이해가 될 지 몰라도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용서법은 그게 뭔지 알지만 이해되지 않는 신비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해가 되지는 않는데 믿어진다. 하나님이 그러셨다는 것이 믿어지고, 그래서 내 죄가 용서되었다는 것이 믿어진다. 그 결과로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도 사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런데 믿어졌고, 또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게 살고 있다. 이것도 정말 신비로운 현실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예수를 보내셨고,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이 일이 일어나게 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활한 예수를 직접 보고 만지고 그들의 현실 속에서 만났지만 믿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서 그런 것이다. 그 덕에 복음은 이스라엘을 넘어 이전까지 하나님을 몰랐던 이방인들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모르는 개라고 경멸했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었고,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호세아서에 기록된 것처럼 내 백성 나의 자비라고 불렸던 이들은 내 백성이 아니며 나의 긍휼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되었고, 도리어 내 백성이 아니라고 했던 이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스라엘의 입자에선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이것도 신비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이방인들의 믿음을 통해 마침내는 이스라엘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다고 하였다. 좀 모호한 의미로 번역된 말씀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자면 하나님이 한 번 주고자 결심했던 계획 그리고 그 은총과 은혜는 다시 철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이 완악한 마음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거절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그들의 구원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모두 다 구원해 내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지이며,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방식이다.

 

 우리는 도무지 이런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비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롬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