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엡1:7] 구속 죄사함을 받은 사람

코이네 2017. 10. 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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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 죄사함을 받은 사람

본문 : 에베소서 1:7

2017.10.15.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지난 주에 우리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에서 많은 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받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였습니다. 이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고 살아야 우리의 인생은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복을 가지고 있어야 우리는 우리 인생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받는 인생을 살 수 있고, 하나님의 기쁨 그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자의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선생님, 우리 사람이 살다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 공자는 이 사람들아, 사람이 살아생전의 일도 다 모르고 사는데 어떻게 죽은 다음의 일까지 알 수 있겠나?”하면서 오히려 반문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해 힘들어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을 마친 후의 인생에 대해 알 리가 없는 것이죠. 신령한 복은 바로 죽음 이후의 인생도 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 신령한 복, 죽음 이후까지도 대비하며 살아가게 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세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신령한 복의 첫째가 바로 구속, 죄사함입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죄인의 인생에서 구원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신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 된 인생, 이게 바로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1) 내가 죄인인가?

 

우리가 신앙을 가질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도 죄인 죄인 회개 회개 하니 뭐 죄인이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할 거지만,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사형을 선고받을 만큼 중차대한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죄를 아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죄가 우리가 겪는 불행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흔히 죄라고 하면 감옥에 가거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나쁜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보다 더 근복적인 것을 죄라고 합니다. 바로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사람들이 자신을 창조한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고, 떠나서 살아가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창조된 사람이 그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천륜을 떠난 것이 바로 죄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낳아준 부모의 은혜를 저버리고 살아갈 때 배은망덕하다고 합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인간들입니다.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인간들, 그 죄인들이 저지르는 죄짓거리가 온갖 나쁜짓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 인생을 비참하게 하는 원인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를 두고 헬조선이라는 말을 씁니다. 지옥 같은 세상이라는 것이죠. 이 지옥 같은 세상 그 원인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합니다만 그 근본원인은 사람들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날뛰며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지옥 같은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만드는 세상이니 지옥 같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죄인으로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참 행복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왜 행복하지 못하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인생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잠시 행복할 순 있어도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면 죄가 우리를 행복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질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배은망덕한 인간이 어찌 행복하게 살길 바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마귀의 말에 그리고 자기 욕심에 귀기울이며 살아가는 인생이 어찌 행복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어불성설인 것이죠. 우리가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불행할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아무리 위대한 권세와 능력을 가져도, 행복할 수 있는 모든 필요조건들을 다 충족하여도 불행하게 사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해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사형수의 삶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시간이라는 영화를 보면 감옥 안에 사형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살아있으나 때가 되면 불려나갑니다. 자신의 죽음을 알 땐 다리에 힘이 풀리고 엄청난 두려움에 싸여 교도관에게 끌려가듯 형장으로 가게 됩니다. 예전에 모래시계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에 우리나라를 제패했던 밤의 제왕 태수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최민수씨가 이 역을 맡았는데,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던 이 깡패 두목이 형장 앞에 서서는 친구에게 말한다. “나 떨고 있니?”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수많은 것이 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죄인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비참하게 이끄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난 구속받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7절에 보니 우리는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속량이란 말을 이전 개역성경에서는 구속救贖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구속이라 번역하다보니 구원은 곧 하나님께 구속(拘俗)되는 것이다는 식으로 이해되기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속(救贖) 곧 속량이라는 말은 노예에 관한 말입니다. 아주 못된 주인을 섬기는 노예가 있습니다. 이 노예를 구할려면 그 주인에게 노예의 값을 치르고 사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못된 주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값을 치르고 사와서 구원하는 것을 두고 구속또는 속량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죄에 매여 있는 우리들을 죄값을 치르고 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 값이 무엇이라고 합니다. 그 앞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예수님의 피가 내 죄값이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내가 내 죄 때문에 죽을 순 없으니까 내 죄를 대신할 희생양을 잡는 것입니다. 내 생명 대신 양의 생명으로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를 대속(代贖) 제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만드신 하나의 예시이지 본질은 달리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목숨 값과 양의 목숨 값이 같을 수 있겠습니까? 같다면 우리는 양 같은 소 같은 가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죄인을 위해 죽어줄 희생양이 될만한 사람이 있는가? 모두가 다 죄인이고 모두가 다 자기 죄로 죽어도 시원찮을 사람들인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단언합니다. 그럴 수 있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우리 사는 곳에 태어난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우리와 똑 같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런데 또 문제가 있습니다. 예전에 어릴 때 대부분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했습니다. 밑에 큰 독을 묻어두고 위에 널빤지를 깔아서 볼 일을 보았습니다. 대부분 화장실은 어둡습니다. 그래야 볼 일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밝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침 햇살이 비칠 때 화장실 문을 열면 그 속이 리얼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구더기들입니다. 그 구더기들이 똥물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구더기들이 불쌍하게 보이고, 이들을 구원해서 밝고 맑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픈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당신에게 네가 구더기가 되어서 저 구더기들을 대신해 죽어야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보실 때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겠습니까? 구더기 보다 낫겠습니까? 욥기에 빌닷이라는 사람이 말합니다. “우리는 구더기보다 못한 인생이다하나님이 사람이 되신다는 것은 이보다 더 심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미친 짓을 하시고자 결정하셨고, 마침내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려보내기로 결정하십니다. 혹 어떤 사람은 하나님 참 비겁하다, 자기가 할 일을 왜 아들에게 시키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건 아직 자녀를 키워보지 않았거나 좋은 아버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아버지는 자식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합니다. 자식을 위해 죽을지언정 자식으로 자기의 목숨을 대신하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 자식은 실제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버러지만도 못한 우리 인생을 살리기 위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정말 말도 안 되는 미친 결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이고, 또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을 두고 7절에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 모든 사람의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죽어야 하되 단순히 죽어서는 안 됩니다. 최고의 극형으로 비참하게 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최고로 비참하게 죽어야 할 사람의 죄 값도 치러서 그 사람도 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순순히 언도 받았습니다. 십자가 형벌이 그런 것입니다. 이 형을 집행하기 이전에 실로 상상하기 힘든 고문을 받습니다. 거진 반 죽어서 십자가에 매달립니다. 십자가로 된 형틀에 사람을 묶고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몸에서 피가 슬슬 흘러나오고 살점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못에 뼈가 갈리는 고통을 겪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몸에 피가 다 흘러내릴 때 쯤 죽습니. 그렇게 하루 종일 매달아 두어서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입니다. 너무도 잔인한 형벌이기에 로마 사람들에게는 이 형벌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는 아예 이 형벌 제도 자체가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죽으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죄인 아닌 사람이 없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로 용서 받지 못할 죄인도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의 생명 값으로 우리 죄 값을 치렀고, 그 아들의 생명 값을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주셨다는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자리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3)죄사함을 받은 사람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값으로 그 아들의 생명을 주고 우리의 생명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생깁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우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변해서 긍휼과 자비가 됩니다. 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았었지만 죄사함을 받게 되면 그 담이 무너져 없어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고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다 아뢸 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사함 받으면 우리 마음에 평화가 임합니다. 우리가 죄 아래 있을 때는 항상 우리의 양심이 우리에게 고통을 줍니다. 마음이 괴롭습니다. 평안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으면 마음의 고통이 없어지고 우리 마음속에 참 평안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 받을 때 하늘로부터 유쾌하게 되는 날이 임하게 됩니다.

죄사함을 받으면, 장래에 대해서도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죄가 그대로 있을 때는 앞을 바라보아야 캄캄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죄인에게는 장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죄인의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절망과 낙담뿐입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으면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죄사함 받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이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영생이라고 했습니다(6:23).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죄사함의 신령한 복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까? 죄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예수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이제 죄에 매인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령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