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화평이신 예수
본문 : 엡 2:11-18
2017.12.17.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자 : 박동진 목사
지난 시간에 우리는 ‘인생의 목적’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더 높고 귀한 목적으로 우릴 만드셨습니다. 바로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여, 선한 일을 하며, 우리가 예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내가 믿는 게 진짤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 걸까?” 긴가민가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가슴 졸이고, 걱정도 되고, 은근히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마귀는 이런 때를 놓치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 곁에 다가와서 우리를 사정없이 흔들어버리려고 합니다. 이럴 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사정없이 흔들릴 때 ‘내가 이러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 누가 제일 좋아하겠습니까? 그렇죠. 마귀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잘하고 칭찬받는 일은 힘들어도, 마귀 좋아라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마귀에게는 못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귀가 좋아할 일 계속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그리고 또 한 가지를 생각하기를 권합니다. 바로 ‘예수 믿고 달라진 게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더욱 견고하고 믿음이 성장하려면 잘 생각하고 살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당신들이 예수를 믿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생각해보라. 당신들은 이전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유대인들에게는 이방인이라 불렸고, 할례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기에 하나님을 몰랐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도 무관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랬던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예수 믿고 무엇이 달라졌는가? 바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지 않았는가 살펴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생에 끼친 가장 큰 변화가 바로 하나님 모르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깝게 해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자부합니다. 우리에겐 할례가 있고, 율법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그런 유대인들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의 눈을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들은 율법으로 하나님을 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람답게 살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율법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여러분 법이 뭡니까? 잘 지키면 별 일 없지만 못 지키거나 그런 법이 있는 줄 모르고 있으면 낭패를 봅니다. 벌금을 물기도 하고, 감옥에 가기도 하고, 심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법대로 살아야 하지만 매사에 법의 잣대를 갖다 대며 살아보십시오. 항상 내가 뭘 잘 못했나? 뭘 어겼나? 법 때문에 불안한 것이죠. 여러분의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법을 갖다 댄다고 해보십시오. 숨이나 제대로 쉬고 살겠습니까? 법은 꼭 있어야 하는데, 법이 그리 반갑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율법의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내가 혹 뭐 잘 못하게 없는가? 항상 율법에 맞추어 하나님께 흠 잡히지 않으려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 보기에는 번듯하게 사는 것 같은데, 그 속을 보면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강박증이랄까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게 좋을 리가 없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히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과의 담을 두텁게 쌓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담을 헐어버렸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제물이 되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 무엇도 우리의 목숨값을 대신할 만큼 고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숨 값에 비할 바는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어 죽으셨기에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 용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신학적인 말로 ‘하나님과 화해하였다’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한 사람으로, 사랑하는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헐어졌고, 우리는 하나님께로 당당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모든 갈등을 없애 버린 것입니다. 거기다 우리는 예수님 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새로운 생명을 받아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그 평화를 맛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살아간 후 우리의 삶에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 평안을 누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샬롬'이나 헬라어의 '에이레네'는 평화나 평강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원적인 깊은 뜻은 '완전, 완성, 결함이 없는 무흠'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언제 평안하지 못합니까? 뭔가 우리에게 심각한 결함이 있을 때, 부족한 게 있을 때 불안하고 두렵고 그래서 평안이 없습니다. 그 부족한 것이 우리의 평안을 뺏어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병들고 헐벗으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평안치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 어떻게 하든 많은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채워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 앞에서 그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항상 불안하고, 두렵고, 평안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많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한 것은 실제 하나님이 없어서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족했기에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것으로 채우고 채워도 부족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님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참 평화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래서 평화가 있습니다.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투에서 패전한 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있을 때의 일입니다. 지난 날 그는 세계를 제패했던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죄인의 몸이 됐기에 좀처럼 남들에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기자가 어렵사리 그를 인터뷰하였습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지난날을 회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나폴레옹은 백발을 날리며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스위스의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였지. 잠시 전투가 그친 어느 주일 아침이었는데, 산 아래 조그만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왔지. 그 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갔다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며 인생 최고의 행복을 맛 봤다네.” 천하의 나폴레옹도 하나님의 집에서 안식을 찾았고, 그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주님이 주신 평화를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로 인해 하나님과 화해한 여러분, 이제 우리는 그 예수님으로 사람들과 서로 화해하며 살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잘못 이해했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것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축복하셨습니다.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런데 그들은 이런 하나님의 뜻보다는 단지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고, 할례를 받았다는 것을 자랑하며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구분해 버렸습니다. 복 받은 사람과 저주 받은 백성으로 구분하고, 다른 민족들이 복받는 길로 못 오도록 막아버렸습니다. 율법을 독점해서 오직 우리만 구원받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쌓아놓은 이 담마저도 헐어버렸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갔고, 그들도 하나님을 믿어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구원받았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구분하고 구별하고 차별하여 서로 분쟁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도리어 그런 자리에 주님은 평화를 가져주시며, 서로 화해하고 함께 위하며 살라하시는 것입니다.
옛날 프랑스의 왕 중 루이 12세라는 분이 있습니다. 1504년 재정 개혁과 1508년 세금 동결 및 세금 징수과정 개선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프랑스 국내에서 큰 지지를 받았고, 1506년 투르에서 열린 삼부회에서는 루이 12세는 '국민의 아버지'(프랑스어: Père Du Peuple)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루이 12세도 왕이 되기 전까지는 참 험난한 길을 걸었습니다. 죽을 뻔한 위기도 수차례 겪었습니다. 그런 그가 드디어 왕위에 오른 것이죠. 그는 원수들의 명단을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그 위에다 십자가 표시를 해 놓았습니다. 이것을 안 당사자들이 얼마나 불안하고 겁을 먹었겠습니까? 그런데 왕이 그 리스트에 적혀 있는 인물들을 다 불러 놓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 십자가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표입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내 죄까지도 용서해 주셨으므로 나도 여러분의 죄를 다 용서해 드립니다." 라고 했습니다. 프랑스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모두 한 성령으로 하나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 소토교회 성도들이 하나 되어 화평을 누리고, 이 세상도 평화로운 세상이 되도록 힘을 씁시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코이네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엡3;1] 은혜의 경륜으로 살아가는 인생 / 박동진목사 (0) | 2018.02.23 |
---|---|
[엡2:19]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 (0) | 2018.02.21 |
[엡2:10]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 (0) | 2018.01.09 |
[엡2:1] 그리스도인 하늘에 앉은 사람 (0) | 2017.12.19 |
[엡1:22]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교회 / 박동진목사 (0) | 2017.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