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엡5:8] 빛의 자녀들처럼 /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18. 7. 2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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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자녀들처럼

성경: 에베소서 5:8-14

2018.7.15.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제 입장에서 다시 풀어보았습니다.

제가 이전에는 어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님 때문에 빛이 되었습니다. 이제 빛의 자녀들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하셨으니 착하게 살겠습니다. 의롭게 살겠습니다. 진실하게 살겠습니다. 저는 고민합니다. 주님의 기쁘게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제게 알려주십시오.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 저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서 손을 떼겠습니다. 도리어 어둠의 일을 책망하겠습니다. 이것들은 아주 은밀하면서도 말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부끄러운 일들을 책망하여 그 일이 대명천지에 드러나도록 하겠습니다. 드러내어서 책망하고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빛의 일이 되도록 고쳐가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이 말씀을 믿으며, 깨어서 주의 빛으로 살아가겠습니다.

 

1. 어둠에서 빛으로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본문의 말씀을 보면 원래 어두움이었는데, 예수그리스도 때문에 빛이 되었다. 그냥 빛이 된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를 품고 있기 때문에 빛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지만 어둠에 덮여 있으면 어떤 함정이 있는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이 길이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우리는 원래 어두움이었습니다. 어두움은 두려움입니다. 어두움은 슬픔입니다. 어두움은 멸망의 길입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낸 이곳 에베소라는 도시는 문화가 아주 발달한 큰 도시였습니다. 그들은 여신 아데미(아르테미스)를 숭배하며, 예배의식으로 매춘을 하였는데, 이것이 에베소의 상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에베소는 살인자들, 도적들, 강도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피난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착함보다는 악함이, 의로움 보다는 부패함이, 진실함보다는 거짓과 속임수와 가증스런 탐욕이 더욱 많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빛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에베소 교인들도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예수를 믿었고, 이러한 어둠의 일을 청산하고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성도들로 인해 교회 안에서 부도덕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교회 안에서의 부도덕한 행위는 에베소 뿐 아니라 바울이 개척한 대부분의 교회에서 심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둠의 일을 구체적으로 지적합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무려 15개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열합니다. (5:19-21) 참으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빛의 자녀라고 한다면 세상의 자녀와 뭔가 달라도 달라야 하는데, 지금 에베소 교회는 그럴 처지가 못 된 것입니다. 도리어 사람들은 교회하면 교회의 이런 어두운 면을 꼬집으면서 교회 가봐야 별 수 있겠냐는 식으로 조롱받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 소토교회는 어둠일까요 아니면 빛일까요? 바울은 에베소교회를 두고 잠자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빛을 잃어버린 잠자는 교회 그러면서 빛이 이제 네게 비추었으니 그만 자고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빛이어야 하는 교회가 빛이 아니라 어둠처럼 보인다면 그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자는 교회 잠자는 성도, 잠자는 교회는 다음 일곱가지의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 죄짓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만 그러냐? 세상이 다 그러는데.. 세상살이 하려면 어쩔 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둘째, 회개하지 않는다면 잠자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잠자는 상태입니다.

넷째, 죄와 시험과 악에 대하여 어떠한 싸움도 하지 않는다면 어두움 가운데서 졸고 있는 자입니다.

다섯째, 육욕적인 기질대로 살면서 어떠한 변화도 없다면 어둠에 깊이 빠진 심령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의 경고와 섭리의 경고를 듣고도 어리석은 행위를 부담 없이 계속 저지른다면 어둠에 잠자는 심령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고 영적 성장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다면 어두움 가운데 졸고 있는 자입니다.

 

주님은 깨어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빛이 우리에게 비추었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로 개종한지 3년된 사람에게 옛 친구가 찾아와 묻습니다.

"자네 교회 다닌 지 3년이나 됐으니까 이제는 그리스도에 관해 자네는 많은 것을 알고 있겠군. 그분이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모르겠네". "그럼 그분은 몇 살때 돌아가셨지?" "그것도 모르겠군". "그분은 설교를 얼마나 했지?" "그것 역시 모르겠군". "자네는 기독교로 개종했다면서 아는 것이 별로 없군, 그래서야 어디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나도 그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무척 부끄럽다네. 그렇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지. 자네가 알다시피 나는 지독한 술주정뱅이가 아니었는가, 우리 가정은 깨어지기 일보직전이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저녁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무척 두려워했었지. 하지만 나는 예수님을 믿고부터 술을 끊었다네, 모든 빚도 청산했고, 못된 짓도 이제 안한다네. 이제 내 아내와 아이들은 내가 저녁에 일찍 들어오기만 기다린다네, 전에는 우리 가족들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웃음이 가득하다네. 저녁식사를 하고 난 뒤 우리 가족은 가정예배를 드리지, 주일이면 온 가족이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린다네, 전에는 어둠에 살았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빛으로 살고 있다네."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부도덕하고 타락한 모습을 비판하면서 교회무용론을 말합니다. 그런 비판 속에서도 교회는 문을 닫지 않고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피할 수 없이 맞닥뜨려야 할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오직 신앙만이 해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단지 착하게, 부유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 이상의 더 중요한 인생의 문제에 해답을 줍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 생명의 종착역은 어디인가? 죽음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 답을 찾아야 우리는 비로소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답은 우리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찾아서 하나님께 들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래서 항상 세 가지 인생의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빛의 자녀이다. 나는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

 

2. 빛의 열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의 동네가 숨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르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오늘 본문이 말씀에 너희는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착함이란(아가도쉬네)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마음과 행실을 말합니다.

5:12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어느 교회 사무원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잘못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사무원은 아주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잘못 거셨군요.” 곧 다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역시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약간 짜증이 났지만 역시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잘못 거셨습니다. 전화 번호를 다시 확인하시고 거세요.” 조금 후 다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역시 그 잘못 건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지만 그것도 잠깐, 화를 가라앉히고 더욱 상냥하게 받았습니다. “똑같은 분에게서 전화를 세 번 받게 되었으니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교회 나가시지 않으시면 우리 교회로 한번 나오시기 바랍니다. 위치는 어디쯤입니다.” 몇 주 후에 담임 목사님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말자 사무원을 칭찬했습니다. 모 회사 사장님이 약간 술이 취해 전화를 잘못 걸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화받는 아가씨가 너무 상냥하게 말해서 세 번째는 일부러 짓궂은 마음으로 걸었는데 역시 더욱 상냥하게 전화를 받아 놀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등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로움이란 (디카이오네) 하나님의 눈에 보시기에 바르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서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난 대형 교회의 모목사님이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집회를 하시고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다이아몬드 가격이 우리나라와 꽤 차이가 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사례비로 다이아몬드를 모두 샀습니다. 정식으로 들여오려니 관세가 너무 비싸 구두 밑에 감추어 세관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 팔았더니 큰돈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이걸 한 푼도 빼지 않고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일에 교인들에게 자랑삼아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 말이죠.

여러분 제가 다이아몬드 밀수해서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완벽하게 밀수하게 된 거 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예전에 이런 식의 간증이 먹혔습니다. 그만큼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도덕심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렇게 불법을 저질러놓고도 교회를 위해 헌금했다고 하면, 교회를 위해서 한 헌신이라고 하면서 다 하나님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정말 큰 문제입니다. 우린 좀 분별력을 갖고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진실함(알레데이아)이란 생각이나 행동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언행일치, 신행일치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빛의 자녀들로서 이러한 빛의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빛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예수님의 삼대요소를 본받으며 살아야 합니다. 착하게 의롭게 그리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뭘까?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믿음은 창의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은 앞서 말한 것처럼 빛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않고 이를 꾸짖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둠의 일을 꾸짖어야 합니다. 꾸짖는다, 책망한다는 말 ελέγχω,엘랭코는 야단치고 꾸짖는 의미도 있지만 폭로하다, 밝히 드러내다, 죄를 깨닫게 하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꾸짖는다는 말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해서 그것이 죄이며,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릴 때 작은 거울로 빛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거울을 빛에 반사해서 건물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겁니다. 마치 서치라이트처럼요. 그러면 그늘에 감추어진 모습이 환하게 보여집니다. 우리는 빛입니다. 빛의 특성은 발광입니다. 빛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으로 가려져 있는 것들이 드러납니다. 이게 빛의 특성입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엔 어둠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이 의롭게 보는 것인지 무엇이 잘못인지 그걸 알게 되고, 잘 못된 것을 향해 잘못되었다고 폭로하고, 잘못을 바로 잡도록 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빛과 어둠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가야 하며, 빛이 꺼지면 어둠은 지배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음행, 부정, 탐욕, 더러운 말, 부끄러운 일, 비양심적인 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일을 보면 이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며 그것이 죄라는 것을 폭로하고, 나는 그 죄에 동참하지 않겠다 그렇게 선언하면서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또한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는 소극적인 자세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둠의 일을 하는 사람을 단호히 책망해야 합니다. 이것이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싫은 소리 들어도 할 말은 해야 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아무리 작을 지라고 드러납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모든 실상을 드러냅니다. 사회의 비리, 직장의 비리를 보고도 묵인하는 사람은 빛을 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둠에 처하여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선포하며, 그들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때로는 저주에 가까운 말로 그들을 질책하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죄에 그대로 두면 망하기 때문에 망하지 말라고 그렇게 애타는 마음으로 책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정된 나라일수록 시민의 고발정신이 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발정신이 부족합니다. 억울해도 참고 넘깁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피해를 고발하는 용감한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일명 내부자들입니다. 그들로 인해 그 사회나 공동체, 회사가 얼마나 타락하고 있는지, 썩었는지를 알게 되고, 그로 인해 잘못된 것을 고쳐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내부자들은 엄청난 고통과 불이익을 받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담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담당하지 못하고 있었다면 이런 의로운 내부자들을 돕고 격려하고 보호해주어야 합니다.

 

다윗왕이 한 여인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간통을 하였고, 이를 덮으려고 충실한 부하를 살해하라고 교사합니다. 그리고 죽은 부하의 아내를 자신의 첩으로 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둠에 감춰진 일들을 나단 선지자는 목숨을 걸고 다윗왕 앞에서 밝힙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며 다윗왕의 범죄를 질책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그 자리에서 회개합니다.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용서를 받습니다. 어둠을 꾸짖을 때 어둠은 물러갑니다.

 

여러분, 이처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항상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어떤 것이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인지 압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즐거움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려면 믿음의 고스톱을 잘 쳐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스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go 하면 나도 go 하고, 주님이 stop 하면 나도 stop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고스톱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고스톱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입니다.

 

네델란드의 코리 텐붐(Corrie Ten Boom)여사는 우리 시대에 큰 간증을 남긴 복음전도자입니다. 그녀는 유대인을 도운 죄목으로 체포되어 온 가족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고생했습니다만, 자기 언니를 죽인 간수를 용서하고 유럽과 미국, 전 세계를 다니며 간증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믿음의 거인이셨습니다. 그런데 코리 여사의 믿음의 감화는 본래 그녀의 아버지의 영향이었다고 증언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캐스퍼 텐붐(Casper Ten Boom)이었는데 시계방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아침과 저녁으로 가족과 함께 성경을 읽었고 자기 상점에서는 친절과 최선으로 기쁘게 손님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였습니다.

하루는 한 부자가 와서 아주 비싼 시계를 현금으로 사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시계만 팔면 온 가족이 얼마동안 고생 안하고 살 수 있는 거래였습니다. 그런데 거래가 끝나고 시계를 받아들면서 부자가 말하기를 사실은 다른 시계방에서 고장 난 자신이 아끼는 시계를 가지고 갔는데 그 시계를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이곳에 와서 새 시계를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코리 아버지는 그 시계를 혹시 볼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시계를 받아들고 몇 가지를 만지더니 이제 시계는 잘 작동한다고 큰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친구는 사실 좋은 시계공인데 아직 조금 더 경험이 필요할 뿐이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주면 그 청년도 자기처럼 훌륭한 시계공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코리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그 부자에게 받았던 현금을 다시 건네주면서 시계를 다시 저에게 주시지요하는 것입니다. 코리는 이런 부친에게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그 돈이 얼마인데 그 거래를 포기하느냐고 부친에게 반문했습니다. 코리 아버지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야, 돈은 하나님이 필요하면 언제나 우리에게 주실 수 있지 않겠니? 그러나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정직하게 손님을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코리야, 우리들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리는 이 교훈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돈많이 벌고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살기 위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착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어둠을 꾸짖고, 여기에 빛을 비추어 어둠이 더 이상 설자리가 없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주님이 가라하면 가고, 주님이 서라하면 서는 그렇게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이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는 예수님을 향해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가 기뻐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들려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