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주기도문_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코이네 2021. 1. 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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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기 도 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는 기도를 들을 때 많은 이들이 이 기도를 영적으로 이해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할리 만무하다는 그런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물질은 천시하는 경향이 강하게 있기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그저 하루 먹을 거리가 아니라 뭔가 좀 더 고차원적인 이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이 기도가 아마 주기도문 가운데서도 가장 절실한 기도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수님 비유에도 보면 일거리를 찾아서 나온 사람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일거리를 주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예수님은 없는 이야기를 비유로 드시지 않고 실제로 많이 있는 그런 일들을 소재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아침 9시에 일거리를 얻었고 어떤 사람은 12시에 일거리를 얻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저녁 5시가 되어서야 일거리를 구했다.

그러면 다 저녁때에 나온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 때 일거리를 찾으러 나왔을까?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는 하루 종일 일거리를 구하러 다녔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한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한 시간이라도 일할 곳이 없을까 해서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 이 비유에 보면 포도원 주인은 품삯을 그날로 계산을 해서 주었는데, 율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었기에 그날로 품삯을 계산해주지 않으면 그날은 굶게 된다.

그래서 반드시 그날로 품삯을 지불하도록 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그날의 염려는 그 날에 족하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는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크고 시급한 문제였다.

그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것이다.

당장 먹을 것이 없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궁금하다.

 

사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는 기도가 우리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그런 기도처럼 느끼는데, 우리가 그런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 아닐 수가 없다생각해 보라. 사실 몇 십 년 전만 해도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드렸겠는가?

그러나 북한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은 지금도 이 기도를 간절하게 드리고 있지 않은가?

정말로 그들에게 이 기도가 얼마나 절박한 기도이겠는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북한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려 죽은 사람들이 거의 3백만에 가깝다고 한다.

달라스에 있는 한 분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그 때는 마침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는 때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반은 10명중 3-4명은 개학을 했는데도 보이지를 않았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인가?

방학 동안에 굶어죽은 것이었다.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지금 북한 주민들 같이 절대 빈곤의 상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반도 더 될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 기도가 가장 절박한 기도일 것이다.

결코 이 기도가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만 필요했던 기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도를 그저 형식적으로 하는데,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셔서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걱정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정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기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다시 한번 이 기도를 살펴보라.

나에게 또는 우리 가정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이다절대 빈곤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에게도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그들을 위해서 우리는 이 기도를 드려야 한다 또 우리는 굶주림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런 기도를 드렸다면 우리는 그 기도에 따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는 우리에게 주님은 어떻게 응답하실까?

 

오병이어의 기적, 잘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빈 들에 나가셔서 가르치셨는데, 그 빈들에 어른만도 5천명 이상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말씀을 듣다가 보니까 저녁 때가 다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다 배가 고파있었다예수님은 허기진채로 그냥 돌려보내자니 너무 안스러워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말씀하셨다. 제자들도 먹을 것이 없었는데,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먹을 것을 다 줄 수 있겠는가?

돈도 없거니와 돈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많은 사람을 위해서 어디에서 먹을 것을 사다 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 더 늦기 전에 빨리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른 그냥 돌려보내시지요 그러면 자기들이 어떻게 해결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아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어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다.

"너희가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어라!"

 

이 세계 곳곳에 불행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래서 한 사람이 하늘을 바라보며 예수님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예수님, 왜 세상에는 이렇게 불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시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계신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어떻게 좀 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왜 아무 도움도 보내지 않았다고 하느냐?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I have sent help. I have sent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