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신앙

[제자훈련] 왜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코이네 2023. 6. 21.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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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십일조를 해야 하는가?

읽을 말씀 : 누가복음11:42

외울 말씀 : 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신앙생활 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과 헌신 봉사 등은 그래야 한다고 수긍을 하고 또 해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돈 문제에 걸리면 고민이 많아집니다. 특히 '십일조'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번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이것을 결단하고 실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성도들이 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목사들도 이에 대해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자칫하면 시험에 들어 신앙생활을 포기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 십일조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들은 생활 속에서 실천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율법의 규례로 십일조를 바치게 하였고, 온전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신앙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24:1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하늘과 그 아래 모든 것, 땅과 그 위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지은 모든 것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은혜를 내려줍니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시며, 돌보아 주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셔서 곡식이 풍성하게 자라게 하시고,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십니다.

 

65:9~13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표시로 드리는 봉헌입니다.

2. 십일조는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가 조카 룻을 구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고, 전쟁에 승리해서 많은 전리품을 갖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고, 축복을 받은 아브람은 즉시 자기 소유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표시로 십일조를 드린 것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왕 가운데서도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간다고 고백합니다. 결코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이며, 은혜로 이해하였습니다.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크나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감사와 영광은 마음으로만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3. 십일조는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사랑의 실천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회정의의 실천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십일조는 모든 율법의 클라이막스입니다. 십일조는 결코 물질적인 계산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정의구현이라는 복음적인 생활의 표현인 것입니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그 밖의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바치면서 정의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구나. 십분의일을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되고 이것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는가?" (누가복음11:42)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게 된 것은 바리새인들의 위선과 화석화된 율법주의를 고발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일조란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의 희생제사요 이웃사랑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 십일조가 걸림돌이 될 수 있을까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정의의 실천을 의미합니다. 정의의 구현을 위해 십분의 일을 봉헌한다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의무요 영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에 꼬리가 되는 인생이 아니라 머리가 되며,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에서 자유로운 인생입니다. 사랑과 정의의 실천은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일하는 최고 최선의 영역이며, 십일조는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일하는 최고, 최선의 영역에 동참하는 표시입니다.

 

신학자 발도 비취(V.Beach)는 사람은 삼차원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재물과의 관계 속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가지는 길은 예배이고, 사람과의 관계를 바로 갖는 길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재물과의 관계를 바로 유지하는 길은 잘 쓰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재물을 잘 쓰는 것일까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재물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써야 합니다.

 

"재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히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지도 못한다.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마음도 있다"(마태복음6:19-21)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씁니다. 예수 믿고 영생을 얻는다는 데는 쉽게 동의하면서도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재물을 쓰는 데는 거부 아니면 인색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합니다. 그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십일조는 영원히 무거운 멍에가 되고 걸림돌이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사요 이 땅에 정의를 구현하는 행위가 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자기가 몸 담고 사는 사회가 불의한 사회가 아닌 정의 사회이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지갑을 기꺼이 열어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 하고 주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