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가르친 행복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첫 내용이 바로 '행복'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을 원하지만 그 복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자는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께서 이미 이천 년 전에 복의 개념을 정확하게 알려 주셨고 본을 보여 주셨는데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도 크게 예외는 아니어서 "세속적인 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오복을 복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장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입니다. 우린 중국의 고전 서경에서 말하는 오복에 아직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요?
1. 성경에서 말하는 복
구약성서에 복을 한마디로 한다면 하나님 자체가 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아브라함을 향해 '네가 복이 될 것이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자에게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은총을 한량없이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라고 노래하였고, 신명기에서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신7:11~15 "그런즉 너는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지니라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네가 복을 받음이 만민보다 훨씬 더하여 너희 중의 남녀와 너희의 짐승의 암수에 생육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모든 질병을 네게서 멀리 하사 너희가 아는 애굽의 악질에 걸리지 않게 하시고 너를 미워하는 모든 자에게 걸리게 하실 것이라"
하나님께서 복 자체이기에, 아니 복이 하나님 것이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
전통적인 오복에 예수님의 삶을 비추어 보면 예수님은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장수하지 못했고, 부유하게 살지도 않았으며, 그는 십자가에서 가장 처절한 고통 속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을 복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복 있다고 말한 대로 살았고, 그 덕에 우리 인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가난 자체는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나 복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가난은 궁극적으로 극복되어야 할대상입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자기 죄가 너무 커서 다른 사람의 죄가 보이지 않는 사람, 그저 바닥에 엎드려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며 가슴치는 세리와 같은 이가 심령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천국을 주길 원합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심령의 가난을 고백하는 사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고 그래서 가슴을 찢으며 애통하는 사람, 죄의 상처와 고통이 너무 커서 그리스도의 위로가 아니고는 치유받을 수 없기에 주님 앞에 울며 나아가는 사람. 그런 불쌍한 인간을 보시며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에 우리의 눈물이 씻겨 나갑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애통하는 자를 위로합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는 겸손과 관용의 태도입니다. 자신의 죄로 애통하는 자는 온유하고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에게서 우리는 온유의 본을 보며, 온유를 배웁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자기의 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세울만한 자기 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나 만큼만'이라고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은 의에 배부른 사람입니다. 의는 악을 미워하며, 하나님과 동거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기에 악이 내 속에 머물지 못하도록 악을 미워하며, 처절하게 싸우며, 몰아내는 것입니다. 또한 내 속에 의가 거하지 않음을 깨닫고 내 속이 하나님의 의로 가득차게 해달라고 애통하며, 간구하여 온전히 의로우며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긍휼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하여 잔치를 베푸는 용서의 마음입니다. 긍휼은 자비와 용서입니다. 우리는 죄인인 우리를 용서하고 또 용납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긍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힘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용납하면 죄의 악다구니를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립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청결한 마음은 두 가지 마음을 품지 않은 것으로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지 않은 마음입니다. 도덕적인 완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순종하는 마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의지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숨기는 것이 없이 솔직한 마음. 꾸미거나 조작하거나 변명하거나 위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아가 예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7)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심령의 가난을 고백하고, 그로 인하여 애통해 하고, 온유한 마음이 되어, 주님을 의지할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를 누리기만 하려 하지 않고 평화를 위해 싸우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남의 해칠 수 있는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여서 평화를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미움과 분쟁의 씨를 무너뜨리며 평화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싸움이 가득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 진정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도구가 되길 소원하며, 주님이 사용하시는 평화의 도구가 기꺼이 되어야 합니다.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의는 불의를 싫어하며, 불의에 항거합니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의인이 핍박을 받는 경우란 거의 없습니다. 의인이 박해를 받는 이유는 의인의 말과 삶이 박해하는 자들의 삶과 말을 결과적으로 정죄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존경과 칭찬도 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가 핍박받지 않는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지만, 그런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과감히 핍박을 받아야 할 때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의를 위하여도 핍박이 없는 좋은 세상을 하나님 혼자서 다 만드시고, 그 곳에서 우리를 살게 하기 보다는, 그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우리를 동참하게 하신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은 기뻐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부활을 주십니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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