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아담이 먹었다는 선악과 과연 그 정체는 무엇인가?

코이네 2013. 8. 2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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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장, 선악과와 뱀의 유혹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결과




창세기를 읽어보면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뱀이 사람과 대화한다든지 하는 것들이구요, 또 선악과, 생명과 등 이름을 통해 그 의미만 이해할 수 있는 생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런 점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에덴동산의 일을 신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뭐 실제로 에덴 동산이 발견되거나 다른 문헌에서 검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어서 신화라고 주장해도 학술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그 시대에서 재현한다면 또 상황은 달라집니다. 왜냐면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브라함 시대가 우리나라의 단군이 등장할 때와 거의 비슷한 시기입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도 보면 곰과 호랑이가 동굴속에서 쑥과 마늘을 100일간 먹었더니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걸 두고 그저 전설에서 내려오는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면 곤란합니다. 왜냐면 이런 이야기를 그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 방식으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라는 것이죠. 지금 우리의 의식수준으로 이해하니 이상한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대할 때도 전설이냐 신화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 속에서 전하고 싶은 핵심 내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서설은 이제 여기서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은 에덴동산의 선악과에 관한 것입니다. 이 과일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성경을 보면 이 과일의 명칭이 정확하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이를 줄여서 일반적으로 "선악과"라고 부르는 것이죠. 먼저 나무의 이름도 재밌죠? 선악을 알게 한다니 도대체 선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선악이란 기준이 있습니다. 여기 에덴동산에서의 선악의 기준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모든 만물의 질서가 잡히고, 그 묘리와 이치와 법칙을 따라 세상이 이루어져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십니다. 왜 그럴까요? 

앞서 말했듯이 선악을 알게 한다는 것은 선악의 잣대, 그 중심이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중심이 될 때 세상이 온전하게 되는 것이죠. 왜냐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지으신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그 하나님에 의해 지어진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그 피조물이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이제 세상의 기준을 "인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세상을 보게 되고, 그러한 관점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사과_선악과_주왕산

흔히 선악과를 사과의 모습으로 상상하기도 합니다. 사진은 주왕산 가는 길에 찍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렇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왜일까요? 그건 당연한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야 그 창조된 인생의 본분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인데, 이제 자신이 중심이 되면 인생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그 본분을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서 받고 있는 생명력을 상실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것을 죄라고 합니다. 사람이 그 지어진 본문을 잊어버리고, 그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본위대로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죄인 것입니다. 이 죄의 댓가는 죽음이라고 분명히 하나님은 못박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인간은 하나님의 이 경고를 무시하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성경의 표현대로 하면 먹은 후 그들은 눈이 밝아져 자신의 부끄러운 곳을 가렸고, 하나님의 음성을 두려워하여 그늘에 숨었다고 하였습니다. 즉 인간이 선악과를 먹어 자기 중심적인 삶으로 삶의 모습이 달라졌을 때 몇 가지의 특징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너와 나의 구별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를 가리기 시작한 것이죠.

둘째는 하나님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하나님의 낯을 피해다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셋째는 그늘에 숨었습니다. 자신을 감추기 시작한 것이죠.

바로 이 모습이 죄를 지은 사람의 모습이며, 이런 죄가 인간들의 삶을 지배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세상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그런 인생의 모습을 고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불행이라는 그늘 아래 살아가게 되고, 온갖 인생의 비참한 모습들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이 행복을 회복하는 것, 성경은 바로 이 선악과로 비롯된 인간의 죄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죠.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창세기 에덴동산은 하나님과 인간이 소통하는 자리
죄책감에 시달려 살아온 사람 그러나 죄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끝없이 추락하는 날개 없는 꿈쟁이 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