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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2장 패역한 엘리자녀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지만 에브라임지파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 사는 레위사람이었고,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사무엘도 자라서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어 성전에서 봉사하게 되었죠.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는 엘리였고, 그도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막에서 살았으며,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즉 정치와 종교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그리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그는 가정교육에 실패한 지도자였고,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 때문에 그의 가문은 멸문당하는 불운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후광을 믿고는 망나니짓을 합니다. 특히 그들은 성전에 쓸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취하기도 하고, 또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건드립니다. 그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사해주겠냐며 꾸짖지만 그들은 듣질 않습니다. 얼마나 하는 짓이 개망나니 같았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보내어 엘리 제사장을 아주 심하게 꾸짖지만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렇게 말만 할 뿐이지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이미 엘리는 자녀들 교육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는 자녀가 자람에 따라 세 가지를 교육시켜야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시켜주어야 합니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놀 때는 "안돼 이건 잘못하면 다쳐" 장난감을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놀아라 하는 것이죠. 위험한 곳에 가면 안돼 위험해 라고 가르치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돼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있어야 할 곳, 할 수 있는 놀이를 가르쳐주어야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만일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방치하게 되면 아이는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라게 되고, 커서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둘째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에는 옳은 일과 그릇된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아이는 점점 옳은 일과 그릇된 일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됩니다. 이때부터 도덕심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죠. 도둑질은 나쁜 일, 선행을 베푸는 것은 좋은 일. 그래서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때는 훈계할 때도 그건 나쁜짓이야, 이건 옳은 일이야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아이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원으로 자라게 되죠.
셋째 청소년기를 지날 때가 되면 가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는 교육을 해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옳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무엇부터 해야할지를 알게 하는 것이죠.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고, 중요한 일은 먼저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뒤에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며, 그런 삶의 태도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육자는 부모입니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사랑으로 훈육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훈육자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친밀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교육자로서 두 가지의 자질을 겸비해야 합니다.
첫번째 자질은 단호함입니다. 아이의 뜻대로 받아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그릇행할 때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가르쳐주어야 하고, 또 해야할 일은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죠. 필요하다면 매를 들기도 해야 합니다. 교육자는 아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지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일관성입니다. 기준을 세워두었으면 그 기준대로 행동해야 하고,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면 아이는 혼란을 겪게 되고,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며, 마침내 아이도 제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런 점에서 실패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신의 뒤를 이어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망나니가 되어 버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께의 진노로 망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로서 우리는 최소한 한 가지는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선지자를 보내 이런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장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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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2장, 패역한 엘리 제사장의 자녀들과 사무엘, 부모가 꼭 해야할 세 가지 교육
사무엘상2장 패역한 엘리자녀들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았지만 에브라임지파 사람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 지역에 사는 레위사람이었고, 제사장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연히 사무엘도 자라서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어 성전에서 봉사하게 되었죠.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사는 엘리였고, 그도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막에서 살았으며,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즉 정치와 종교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그리 훌륭한 지도자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그는 가정교육에 실패한 지도자였고, 자식 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이 때문에 그의 가문은 멸문당하는 불운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이 자라면서 아버지의 후광을 믿고는 망나니짓을 합니다. 특히 그들은 성전에 쓸 제물을 자기 마음대로 취하기도 하고, 또 성전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건드립니다. 그 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고는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사해주겠냐며 꾸짖지만 그들은 듣질 않습니다. 얼마나 하는 짓이 개망나니 같았는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보내어 엘리 제사장을 아주 심하게 꾸짖지만 엘리는 아들들에게 그렇게 말만 할 뿐이지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이미 엘리는 자녀들 교육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부모는 자녀가 자람에 따라 세 가지를 교육시켜야 바르게 자랄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렸을 때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시켜주어야 합니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놀 때는 "안돼 이건 잘못하면 다쳐" 장난감을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놀아라 하는 것이죠. 위험한 곳에 가면 안돼 위험해 라고 가르치고 위험한 행동을 하면 안돼라고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있어야 할 곳, 할 수 있는 놀이를 가르쳐주어야 아이가 안전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만일 아이가 하고 싶은대로 방치하게 되면 아이는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라게 되고, 커서는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이죠.
둘째 말귀를 알아들을 때쯤에는 옳은 일과 그릇된 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에 다닐 나이가 되면 아이는 점점 옳은 일과 그릇된 일에 대한 개념을 갖게 됩니다. 이때부터 도덕심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죠. 도둑질은 나쁜 일, 선행을 베푸는 것은 좋은 일. 그래서 나쁜 짓은 하지 않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이때는 훈계할 때도 그건 나쁜짓이야, 이건 옳은 일이야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아이는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일원으로 자라게 되죠.
셋째 청소년기를 지날 때가 되면 가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는 교육을 해주어야 합니다.
무조건 옳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의 처지와 형편에 따라 무엇부터 해야할지를 알게 하는 것이죠.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하고, 중요한 일은 먼저하며, 그렇지 않은 것은 뒤에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며, 그런 삶의 태도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교육자는 부모입니다. 가장 훌륭한 교육은 사랑으로 훈육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훈육자는 아이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친밀감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교육자로서 두 가지의 자질을 겸비해야 합니다.
첫번째 자질은 단호함입니다. 아이의 뜻대로 받아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아이가 그릇행할 때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가르쳐주어야 하고, 또 해야할 일은 할 수 있도록 격려하며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죠. 필요하다면 매를 들기도 해야 합니다. 교육자는 아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지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일관성입니다. 기준을 세워두었으면 그 기준대로 행동해야 하고, 약속을 했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달라지면 아이는 혼란을 겪게 되고, 부모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며, 마침내 아이도 제 마음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는 이런 점에서 실패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신의 뒤를 이어 제사장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되었지만 사리를 분별하지 못한 망나니가 되어 버렸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께의 진노로 망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하나님을 섬기는 부모로서 우리는 최소한 한 가지는 아이에게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에게 선지자를 보내 이런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삼상 2장 30절)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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