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거룩한 분노가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코이네 2012. 1.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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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11장, 사울왕의 거룩한 분노



사무엘상11장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사울이 왕으로 선출되었지만 즉시 왕정체제가 갖추어지진 않았습니다. 왕을 뽑는 총회가 끝이 나자 사울이 왕이 되었다는 선포 외에 별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사울 역시 자기 고향 기브아에 돌아가 소를 부리며 농사를 지었죠. 그런데 요단 동편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 족속에 변고가 생겼습니다. 그 지역에 이웃해 있던 암몬 족속들이 세력을 키우더니 야베스 지역으로 침략해온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백성들을 소집해 암몬을 기습 공격하여 마침내 야베스를 구원해냅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왕정체제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암몬왕 나하스는 전쟁을 하기 전 야베스 주민들에게 항복을 권유합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일주일 기한을 달라하고 이스라엘 전역에 전령을 보내 도움을 구합니다. 그런데 전령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그 소식에 목놓아 통곡합니다. 야베스를 구원할 생각을 아예 하지도 못한 채 그저 자신들이 힘이 없다는 사실을 원통해하고, 또 야베스 백성들이 당할 고난을 생각하니 마음 아프고,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곧이어 야베스를 지나 자신들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공포심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우린 안된다는 패배감. 이미 이스라엘은 전쟁하기도 전에 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런 상황이 되었을까요? 그들에게는 최고의 영적인 지도자 사무엘이 있었고, 사울이 병력을 소집했을 때 무려 33만이라는 군대가 동원될 정도의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해보지도 않고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합니다. 그들의 구심점 즉 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력한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 그들의 곁에 있어도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고, 하나님이 없는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쭉정이에 불과한 것이지요. 그저 자신들에게 닥쳐온 위기와 시련에 목놓아 울기만 할 뿐 뾰족한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사울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크게 분개하였고, 자신이 끌고 가던 소를 잡아 조각조각을 내고는 이를 이스라엘 전 지파에 보내면서 군대소집령을 내렸습니다. 모이지 않는다면 이 소와 같을 것이라. 사울의 분개 사울의 분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치 하나님의 진노로 느껴졌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비로소 이스라엘은 깊은 영적 잠에서 깨어나 자신들의 무력감을 딛고 사울왕 앞에 모였습니다. 군대를  세어보니 총 33만명이나 되는 대군이었습니다. 물론 이 수 전체가 다 전투를 담당하는 병사는 아니었겠지만 이렇게 모인 이스라엘은 그 스스로 놀랐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군대였던가? 흩어져 있으면 오합지졸이었지만 자신들의 패배감을 딛고 이렇게 모이니 엄청난 군대가 되었던 것이죠.

거기에 새로운 신임 사령관이자 왕인 사울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사울의 능력이 빛을 발합니다. 그는 먼저 야베스 거민들에게 자신들이 구원하러 갈 것이라는 통보를 하며, 야베스 거민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는 군대를 삼군으로 재편하여 기습작전을 감행합니다. 그의 작전은 주효하여 일거에 적들을 섬멸시키고는 야베스를 당당히 구원해 내었습니다. 그저 농사나 짓는 줄 알았던 사울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그는 왕으로서의 충분한 지도력을 보여주었고, 또 전쟁을 이끄는 탁월한 전술과 용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탄복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죠.하나님은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기회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준비된 사람이며, 이렇게 준비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에게서 거룩한 분노를 배워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베스의 소식을 듣고는 그저 넋놓고 통곡하고 있을 때 사울은 분노했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백성들의 모습, 무기력하고 비겁한 모습, 그리고 감히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고 있는 암몬의 작태에 대해 분노하였던 것입니다. 온전한 분노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며 개혁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이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제사장들의 모습을 보고 분노하며 그 상을 둘러 엎은 것처럼 우리 역시 분노할 일에 분노할 수 있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저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도리어 분노해야 할 일에 그저 침묵한다면 그것은 비겁한 행동인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거룩한 분노를 제대로 알지 못해 비겁한 것과 덕있는 모습을 구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에 무책임하고, 그저 자기 안일이나 돌보는 이기적이며 비겁한 모습을 모범적이라 생각하기에 현 우리 사회에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by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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