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사도행전 3장, 주목받아야 할 예수 그 이름

코이네 2014. 9. 19.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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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이름

본문 : 사도행전 3:11-26

2014.2.16.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저도 박사과정을 공부해보니 아무리 내가 많은 것을 알고 있어도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요. 내 것이 이 사회에서 정말 쓸모가 있으려면 남이 알아주어야 해요. 그래서 우린 어떻게 하던지 남이 알아주길 바라며, 자기 개발을 합니다. 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일합니까? 회사가 날 좀 알아봐 주기 바라는 것이죠.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바람피운 사람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아내가, 남편이 날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가출하는 아이들도 그럽니다. 내 부모가 날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는 경우를 봅니다. 날 좀 알아달라, 날 주목해달라는 것이죠. 그 바람이 이루어지면 죽을 똥 살 똥 열심히 하는데, 자기 바람만큼 목사님이, 또 성도들이 자길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고 시험듭니다. 지금 이 사회도 그렇고 베드로가 이 병자를 고칠 때도 그렇습니다. 모두가 주목받기 원합니다. 하다못해 이 앉은뱅이 장애인도 사람들이 자길 주목해주길 바랍니다.

 

 

갈매기

 

그런데 여기 엉뚱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되려 따집니다. 아니 당신이 지금 한 일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데, 세상에 앉은뱅이를 말 한 마디로 일으켜 세우는 사람, 건강하게 치료한 사람이 어디 있었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 당연하지, 왜 우리더러 주목하느냐고 따지냐?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와서 아우성을 칩니다. 도대체 비결이 뭐냐? 그 치료받은 장애인 역시 베드로를 붙잡습니다. 여기 붙잡다는 말은 매달리다는 뜻입니다. 날 치료했으니 이제 내가 어찌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것이죠.

 

그렇게 베드로에게 요한에게 매달리고 몰려올 때 베드로가 단호하게 말합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말은 우리에게 주목해봐야 선한 것이 없다. 이 일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누가 했습니까? 예수님이 했다는 것이죠. 그러니 날 보지 말고, 날 통해 역사하신 예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의 시작이며 끝입니다. 베드로는 사람의 관심이 자신에게 향하도록 유도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향하는 관심과 경외의 시선을 즐기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자기부인이며,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다.

 

2. 기적에 연연하지 말라

 

여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기적입니다. 어떤 분들은 나도 이런 기적을 보면 예수 믿겠다고 합니다. 내가 믿음이 없는 것은 기적을 보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말합니다. 아닙니다. 기적이 믿음을 가져다주진 않습니다. 기적은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우리가 예수 믿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줍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이런 기적이 아니면 도저히 복음에 마음이 열리지 않을 사람들에게 기적으로 보여주십니다.

 

윌리엄 바클레이(Barclay)라고 하는 분은 '기적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모이게 하기 위해서 종을 치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기적 때문에 사람들을 예수께로 모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적을 보았으면 이제 기적을 일으킨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배워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내 삶에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로 온 여러분, 너무 기적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기적을 보지 못해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성장시키는 훈련과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삶의 인내가 부족해서 믿음이 약한 것입니다.

 

3. 예수 그 이름에 담긴 힘과 능력

 

베드로는 기적을 보고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이 일어난 것은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죽음에서 살려주시는 바로 그 예수, 예수, 그 이름을 믿음으로 일어난 일이다. 16절에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일으킨 일이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이어 이스라엘의 공회에 잡혀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도 베드로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행4:10,12절을 보면 베드로는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여러분, 이름에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힘과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힘을 빌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예전에 기자일을 할 때 명함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중에 지금은 국정원인데, 당시는 중앙정보부였죠. 중정의 꽤 실력자 되는 분과 어쩌다가 좀 알게 되었는데, 이 분이 자기 명함 뒤에 자필로 사인을 해주더군요. 혹 필요할 때 쓰라구요. 한번은 취재하러 다니다 오해를 사게 되어, 경찰서에 다른 기자들과 함께 잡혀간 적이 있었습니다. 답답하더군요. 그런데 그 때 그 명함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명함을 내밀었더니 두 말 않고, 보내주더군요. 몰라봐서 미안하다고 하면서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 이름을 안다는 것은 정말 귀한 은혜입니다. 내 인생의 최고의 복입니다. 기적입니다. 이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우리를 하나님 백성이 되게 하고, 우리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십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예수 그 이름을 믿으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르리라” 이 ‘새롭게 되는 날’, 개역성경에는 이를 “유쾌하게 되는 날”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헬라어로 ‘아납쉭시스’인데 이 말은 ‘아나’라고 하는 접두어와 ‘프쉬코’라고 하는 말이 합쳐진 겁니다. ‘아나’라는 말은 영어로 upwards, ‘위를 향하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프쉬코’라는 말은 breathe, 호흡한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아나프쉬코’라고 하는 단어는 ‘to breathe upwards’, 위를 향하여 호흡한다는 뜻이 됩니다. 한 마디로 숨통이 트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답답하고 숨쉬며 살기 힘든 세상, 그런 우리 인생을 숨통 트게 하십니다. 우리 인생 숨통 트며 살려면 예수님께로 와야 합니다. 예수님께 멀어지면 숨막혀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마귀는 우리를 어떻게 하든 우리의 숨통을 죄여서 우릴 죽이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 멀어지게 하려고 별별 빌미를 다 제공합니다. 그 이유들을 하나씩 보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내가 예수님과 멀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예수께 가야 숨통이 트이고 살아나는데, 자꾸 그런 빌미들로 인해 스스로 목을 죄게 하는 것이죠. 여러분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맞서야 합니다. 우리를 숨통을 죄는 그 빌미들, 그 정당하게 보였던 그 이유들이 결코 우리를 살리지 않습니다. 눈을 돌립시다. 세상을 향해 주목했던 그 눈을 예수께로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날 수 있고, 숨통 트인 채로 살아가려면 우리의 눈을 예수께로 향하고, 우리의 발걸음을 예수께로 돌려야 합니다. 예수를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인생, 유쾌한 인생, 예수님 때문에 복받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벤후퍼라는 아이

 

미국 테네시 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벤 후퍼 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날 때부터 아주 작은 체구였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생아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기 자녀들이 그런 벤 후퍼와 어울려 노는 것을 원치 않았고, 아이들도 그를 놀리며 멸시했다. 항상 동네에서 따돌림과 비웃음, 멸시를 받으며 어렵게 소년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벤 후퍼가 12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부임했는데, 소문에 그 목사님은 어느 누구든지 사람을 그대로 받아주며 비난하지 않으며, 그 목사님이 가는 곳마다 분위기가 밝아지고, 사람들이 격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어린 후퍼가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 목사님이 어떤 분일까 호기심에 교회에 가기 시작했습니다.가긴 했지만 일부러 늦게 가서 살며시 뒷자리에 앉았다가 축도를 할 때에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빠져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의 설교에 벤 후퍼는 너무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넋을 잃고 있다가 보니 축도까지 끝나버린 것입니다. 나오려고 하니 벌써 사람들이 통로에 쭉 늘어서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교회 사람들 눈에 띄게 되었고, 목사님과 악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벤 후퍼를 보고 "네가 누구 아들이더라?"며 아는 체를 했고, 순간 주변은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때 목사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번지더니 환해지면서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나는 네가 누구의 아들인지 알겠다. 네가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지!” 목사님의 그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더욱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순간 목사님은 후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 네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거든!"

 

목사님의 말을 뒤로 한 채 후퍼는 당황해서 그 자리를 급하게 빠져 나가는데, 목사님은 다시 그의 등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아들답게 훌륭하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 지났고, 벤 후퍼는 테네시 주의 주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직무를 너무나 잘 수행하여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주지사 벤 후퍼는 훗날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날, 젊은 목사님을 만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던 바로 그 날이 테네시주의 주지사가 다시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 이름이 우리 인생의 숨통을 트게 하며,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합니다.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크게 한 숨을 내쉬어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합시다.

 

“예수님 때문에 살겠다...”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