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사도행전 4장, 산헤드린 공회에게 날린 베드로의 돌직구

코이네 2014. 10. 3.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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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을 따를 것인가?

본문 : 사도행전 4장 1-22절

2014. 2. 23. 소토교회 주일낮 예배 설교

 

 

1. 잘못 알고 있는 역사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역사를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조선 마지막 왕 고종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저는 고종 그러면 일단 나라를 망하게 한 무능한 왕, 명성황후와 아버지 대원군 사이에서 휘둘려 제대로 자기 정치를 펼치지 못한 왕. 명성왕후가 궁에서 피살당하자 죽는 것이 겁이나 러시아대사관에서 1년이나 피신해 있던 겁많은 왕. 그리고 어줍잖게 열강의 흉내를 내 나라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가 되었다가 13년만에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왕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그가 조선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가 된 것은 열강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가 되게 해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나라를 근대화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정치적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서울을 근대화한 것입니다. 그래서 도로를 정비하고, 공원을 만들고, 도시를 활성화시켰습니다. 여러분, 아시아에서 전차가 가장 먼저 도입된 나라가 어디일까요? 당연 일본이라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우리나라입니다. 서울에서 전차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들어섰습니다. 이를 위해 전기회사가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서울 전역에 가로등이 생겨 거리를 환하게 밝혔습니다. 서울에 최고 더러운 도시 중 하나였는데, 대한제국으로 바뀐지 3년만에 아시아에서 가장 깨끗하고 근대화된 도시로 불렸습니다. 서울을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이 그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군함을 만들고, 근대식 군대를 만들어 우리나라의 안보를 강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종의 개혁에 위기의식을 가진 열강들이 서로 담합해서 대한제국의 개혁을 주저앉혀버린 것이죠. 안타깝게도 열강들의 전쟁과 그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엔 역부족이었긴 해도 그 13년간의 변화는 우리 스스로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기엔 충분하였다고 역사가들은 평가합니다. 그런데 우린 왜 대한제국과 고종에 대해 그렇게 몰랐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근대사에 대해 들었던 것은 당시 이 나라를 침탈한 일본이 해석한 역사를 그대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경복궁

 

 

여러분, 누구의 말을 듣느냐? 그리고 누구의 말을 따르는가는 이처럼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또한 신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 역시 그 선택에 기로에 놓여 있었습니다.

 

2. 사두개인과 부활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장애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료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으며,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해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사두개인과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사로잡아 공의회에 세웠고, 그들을 위협하여 더 이상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부활을 전하는 제자들을 겁박하여 그러지 못하도록 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들과 사두개인, 서기관들입니다. 이상한 걸 느끼지 못하셨나요? 이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지 못하게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좀 더 나가서 성경을 유심히 살펴보면 예수님을 못박아 죽게 하는데 앞장 선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인데, 그 지도자들의 중심이 바로 이 제사장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입니다.

 

조금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알아봅시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나중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룹니다. 이 나라는 열두지파의 연합체이고, 이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한 후 사사들이 이끄는 시대가 됩니다. 사사시대라고 하죠. 그 후에 왕이 세워지고, 다윗왕가가 이어집니다. 그러다 솔로몬왕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다 북 이스라엘이 망하고, 나중에는 남 유다도 망합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식민지가 됩니다. 바벨론에 의해, 나중에는 페르시아에 의해, 그 후에는 알렉산드의 헬라제국에 의해, 그리고 로마제국에 의해 지배를 당합니다.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이 식민지 기간이 약 500년 정도가 됩니다.

 

이 식민지 기간 중에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이 중심이 되어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주전 160년 경에 마카비라는 별명을 가진 유다라는 사람의 지도 아래 이스라엘은 독립전쟁을 하게 되고, 성공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왕조가 하스모니안 왕조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대제사장이 왕도 되는 그런 나라가 된 것이죠. 이 왕조는 약 80년 정도 지속되다가 로마에 의해 무너지고 맙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로마의 총독과 로마가 세운 괴뢰정부인 헤롯이 왕이 되어 다스리지만, 이스라엘의 전반적인 실권은 이들 제사장들에게 있었습니다. 이 제사장들 중에 사독의 후예가 대제사장이 되었는데, 이 사독의 후예들을 두고 사두개인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율법을 해석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하는 지도자를 서기관이라고 하는데, 이 서기관은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맡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공회를 산헤드린이라고 하는데, 이 산헤드린은 바로 제사장과 사두개인 그리고 서기관들이 중심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가장 권위 있는 사법기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나중에는 이 산헤드린에 귀족과 바리새인들도 일부 참여하였지만, 이 산헤드린은 그야말로 제사장과 레위사람들로 짜여진 기관이었고, 이 산헤드린의 수장은 대제사장이 맡았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렇게 제사장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고, 이 제사장들을 이끄는 그룹이 바로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몇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이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즉 종교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은 아주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이었으며, 권력추구형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제사장들이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았고, 내세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카비 시대부터 이미 메시야가 도래했고, 자신들이 그 사명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메시야의 구원을 믿지 않았습니다. 즉 현세적인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무늬만 종교인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고, 이들 역시 일반 백성들보다는 당시의 권력자들을 더 좋아했습니다.

 

이 산헤드린 공회가 가장 싫어한 사람들이 둘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성들의 신앙의 지도자로 떠오른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메시야의 도래와 부활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보다 더 싫은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현세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쳤고, 부활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여서 부활을 이루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부활을 말하는 것도 싫었는데, 그보다 더 싫은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선포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더 싫고 미운 것이었죠. 그래서 그들은 백성들을 부추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합니다.

 

우리도 사두개인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오직 현세적인 것에 몰두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가 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을 금식기도를 마쳤을 때에 마귀는 예수님께 이런 제안을 합니다. 예수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 천국 이런 거 다 필요 없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잘먹고 잘사는가에 있습니다. 그러니 돌들을 떡으로 변하게 하셔서 먹을 걸 풍성하게 주시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셔서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셔서 인기를 얻으시고, 나를 경배하셔서 내가 가진 권세를 다 가지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아가는 인생을 가르쳐주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마귀를 쫓아내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두개인들은 그런 마귀의 말을 듣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린 것처럼 예수님을 배척하고, 그 구원을 저버린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현세적인 욕망에 충실해 있었고, 이것을 이루어준다는 말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기들이 듣고 싶은 것만 들었고 보았습니다. 그 외에는 다 배척해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귀에 예수님의 말씀은 들려지지 않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도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복음을 핍박하게 된 것입니다.

 

3. 누구 말을 따를 것인가?

 

그런데 핍박도 아주 교활하게 진행합니다.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공회에 잡아서는 위협합니다. 그러고는 묻죠.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했느냐?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것은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 같이 전문적으로 성경 공부를 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주신 권리로” 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 되어 체포할 빌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주 지혜롭게 대답합니다. 그는 장애인이 멀쩡하게 치료된 것을 하나님의 선한 일이라 주장하였고, 이 일을 이룬 것은 바로 당신들이 죄없이 죽인 예수님 때문이며,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증언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부인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 예수님을 증언했습니다. 그러니 공회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으로 제자들을 위협하고 억눌렀습니다. 지금은 풀어주지만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지 말라는 것이죠. 이 때 베드로가 돌직구를 날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건 정말이지 사두개인들과 제사장들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는 말입니다. 뼈아픈 말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는 너희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갈등과 고민을 겪게 됩니다. 우리는 사두개인들처럼 이 세상의 현실에 사로잡혀 살아왔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 역시 이 땅에서 사두개인들처럼 현실적인 욕망을 얼마나 잘 이루는가에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세상의 말에 귀기울이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에게 어느 순간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예전에 살았던 사두개인과 같은 그런 인생을 계속 지속해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새로운 인생을 살 것인가?우리도 베드로처럼 이 세상을 향해 멋진 돌직구를 날려봅시다. (*)

 

 

 

 


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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