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장, 성전 미문 앞에 사람이 있었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본문 : 사도행전 3장 1-9절
2014.2.9.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주목 받고 싶은 세상
이 세상은 온통 주목받을 사람들만 살아가고 있고, 또 그럴 자격이 있으며, 자신 또한 그렇게 주목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 속에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누구든 그렇게 주목받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어합니다. 누군가가 내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부터 모든 사람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성공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죠.
그런데 생각을 한 번 바꾸어보았습니다. 사고의 전환인 것이죠. 어차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런 사람되려고 박터지게 살 것이 아니라, 난 주목하는 사람이 되면 되지 않겠나? 내가 주목해주고, 내가 관심을 가져주었기에 저 사람이 산다. 내가 관심 가져주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 집사람이 한 번씩 그럽니다. 자기가 재밌게 보는 드라마가 있으면 그 드라마 성공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내가 봐주는 것은 재밌는 것이고, 그렇기에 성공한다는 것이죠. 내가 재미없다고 고개 돌리는 것은 다 망하더라는 자신감. 여러분, 주목하는 사람이 좋나요? 주목받는 사람이 좋나요?
오늘 그런 사람들이 말씀의 주인공으로 나옵니다. 먼저 성전의 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언제나 남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누가 나에게 돈을 한 푼 주지 않나? 그런 관점으로 사람을 보고 사는 거죠. 자신이 다른 이의 관심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기를 유심히 바라보는 눈길을 느꼈습니다. 이 사람 도대체 내게 얼마를 줄려고 하는가?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좀 이상하기는 했을 겁니다. 왜냐면 대부분 자신이 붙잡아야 자기를 봐주는데, 이 사람은 그러기도 전에 자기를 보고 있거든요.
2. 주목하여 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습관적으로 하루 세 번 기도합니다. 아침 해뜰 때, 오후 3시에 그리고 해질 때 기도합니다. 성전에서 하기도 하고, 자기가 있는 그 자리에서 엎드려서 기도합니다. 보통 기도문을 외거나, 성경말씀을 읽거나 자기의 소원을 반복적으로 말하면서 기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을 받은 후 항상 오후 세시가 되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갈 때 항상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때는 그저 저런 불쌍한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 사람이 눈에 들어옵니다.
원문에 "주목"이란 말은 “아테니조” 인데, 그 의미는 "강한 시선으로 똑바로 응시하는 것"입니다. 즉, 주목한다는 것은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는 태도입니다. 이 구걸을 하는 장애인은 베드로와 요한의 눈길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 사람이 내게 뭘 주려나 보다 하고 기대감을 가지기도 했겠죠.
베드로와 요한은 왜 이 사람을 주목했을까? 혹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아하 요거 기회다. 오늘 여기서 이 사람을 벌떡 일어서게 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우릴 주목할 것이고, 이 때 전도해보자.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것이다. 어떻습니까? 때때로 좀 그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 장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 됩니다. 그저 전도하기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 것이죠. 안타깝게도 우리 주위에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사람이 사람이 아니라 필요에 따른 소모품이 되게 하는 것이죠.
베드로와 요한은 그 사람을 긍휼의 마음으로 주목하여 본 것입니다. 지금껏 아무도 제대로 주목해주지 못한 사람.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으로 온갖 설움을 받고 살아왔고, 지금은 이렇게 구걸하며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 그런데 그 불쌍한 사람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살아야 할 하나님이 지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사람들을 만나시며 예수님이 하신 일은 바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며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죄 때문에 저리 불행하게 사는데, 저들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 저 사람이 회개하고 회복되면 어떤 모습일까? 이런 기대감으로 우리 사람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최고의 지도자들도 아주 불쌍한 천민들도, 사람 대접 못받는 죄인들, 나병환자, 장애인 가리지 않고 그들을 찾으시고 만나시며, 그들을 치료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저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어떻게 될까?” 저 사람이 예수 믿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베드로와 요한은 그런 마음으로 그 장애인을 본 것입니다. 이전에는 그저 그 자리에 구걸하는 걸인이 있었는데, 지금 베드로의 눈길이 머문 그곳에는 하나님이 회복시키고 구원할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베드로의 눈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때때로 우린 쓸데 없는 고민을 합니다. 이 사람이 예수 믿으면 어떻게 될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까? 괜시리 부담이 되고, 그 다음을 생각하다보면 차라리 안하는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을 행할 것을 포기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 그 다음은 고민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책임지십니다. 여러분이 지금 믿음을 갖고 생활하듯이 그 사람에게도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며 책임지실 것입니다.
3. 우리를 보라
이 말을 가슴에 간직해야 합니다. 아마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일 하기 힘든 일이 뭐냐고 물으면 전도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누구나 그것은 부담이 되는 일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전도지 한 장 주는게 왜 그리 힘드는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전도할 때 가장 잘 못하는게 있습니다. 못하는게 아니라 잘못하는 것입니다. 바로 구원을 구걸하는 것입니다. 제발 구원받아주세요. 예수 믿는 일을 아주 싸구려로 만들어 버립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나 모르겠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이사 온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처음에 고마워하다가 이 분이 교회 집사님인 것을 알고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뭐 맡겨둔 것처럼 이것 저것 요구하기 시작하는거예요. 집사님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한 동안 찾아가질 않았더니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났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그 분이 집사님에게 하는 말이 요즘 왜 우리 집에 오지 않아요? 절 전도할려면 그래가지고 되겠어요? 하더랍니다. 교회에서 이벤트성 전도를 하도 하다보니까 사람들이 이제는 그걸 이용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을 그렇게 싸구려로 만들지 마십시오. 혹 여러분 손에 1억짜리 수표를 들고 있고, 이걸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데 누구에게 줄까 고민하고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지금 갖고 있는 복음, 우리가 전하는 예수님은 그저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장애인은 베드로에게 한푼의 돈을 바랐지만 베드로는 그에게 내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병을 고쳤습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빌 2: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이 예수의 이름은 보통 이름과는 다른 놀라운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째, 예수 이름은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경배하기에 족한 귀한 이름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모든 만물을 만드신 제 2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 이름은 구원을 주는 이름입니다. 예수 이름 이외에는 죄악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이름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셋째, 놀라운 표적과 기사가 이루어지는 이름입니다. (행 4:30)"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넷째, 예수 이름은 기도 응답의 보증이 되는 이름입니다.
5. 꽃을 보는 눈길로 사람을 보라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누구나 활짝 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이쁨 받고 싶고, 또 그렇게 창조되어진 존재입니다. 참된 기독교의 모습은 사람을 꽃으로 대접해 주는 사역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꽃을 보는 눈길로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그는 밤마다 꿈을 꾸었을 것입니다. 멀쩡한 다리로 마음껏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아침이면 비참한 자신의 실상과 만나게 됩니다. 또 다시 다른 사람들의 어깨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신세, 몇 푼 동전을 구걸하며 살아야 하는 자신의 가련한 몰골과 조우하게 됩니다. 그는 가난과 불구라는 족쇄에 걸려 서서히 꿈과 희망을 내동댕이치게 됩니다. ‘인생에 희망은 없다. 오직 냉엄한 현실만 있을 뿐’이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고 성전을 돌아다니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그는 걸었네 뛰었네 찬양했네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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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이네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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