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25:19]달라도 너무 다른 두 아들 야곱과 에서

코이네 2016. 6. 3.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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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 야곱과 에서, 하나님은 왜 야곱을 사랑했는가?

 

본문 : 창세기 25장 19~35절

2016.5.29.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20년 만에 낳은 아들

 

예전 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놀이동산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가면 아이들끼리 얼마나 잘 노는지 한 번은 우리 부부가 살짝 숨었습니다. 첨에는 아이들이 놀이동산의 분위기에 취해 엄마 아빠가 없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놀다가 문득 눈을 들어 보니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엄마 아빠가 보이질 않는 것이죠. 첨에는 놀라서 두리번거리면서 찾다가 그래도 보이질 않으니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엄마 아빠를 불러봅니다. 그래도 보이질 않으니 그 때부터 크게 소리 지르며 울기 시작합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긴 천국 같은 놀이동산입니다. 그렇게 재미날 수가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 이곳은 무시무시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공포에 질려 울고불고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목놓아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죠. 엄마아빠입니다. 부모가 곁에 있을 때는 여기가 천국 같은 놀이동산이지만 부모를 잃어버렸을 땐 그곳은 무시무시한 공포의 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언제 가장 불행하냐? 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린 것처럼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고 살아갈 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를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찾으라고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주십니다. 그래도 그런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이삭도 그렇습니다. 그가 나이 40에 리브가와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2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후손이 될 것이며, 너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이 약속을 믿고 믿음의 여정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100세에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삭도 결혼하지 20년이 되도록 자녀가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약속은 어디에 간 것입니까? 하나님 내 아버지 아브라함과 한 약속 기억이나 하십니까? 이렇게 불평하며 물을만도 하지 않습니까?

 

이삭은 이럴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간절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기대 이상입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을 한꺼번에 주십니다. 쌍둥이를 임신한 것이죠.

 

 

 

2. 에서와 야곱

 

그렇게 쌍둥이를 낳았는데 한 배에서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 둘이 왜 이리 다를까요?

 

큰 아들 에서는 상남자입니다. 몸도 털이 많고 붉으며 사냥하기를 좋아합니다.

둘째 아들 야곱은 조용한 사람입니다. 세심하면서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아들은 아버지 이삭이 좋아하고, 둘째 아들은 엄마 리브가가 좋아합니다.

 

하루는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야곱이 때를 맞춰 붉은 죽을 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아주 계획적으로 한 행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형의 성향을 잘 알기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형이 외면할 수 없는 맛있는 죽을 쑤었던 것입니다. 배가 고픈 에서는 그 죽을 달라하고, 야곱은 안 된다며 밀당을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형의 장자권과 죽을 바꾸자고 합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자에 대한 권리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상당히 컸습니다. 재산을 분배할 때도 장자라는 이유로 더 많은 배분을 가졌습니다. 당시는 더했습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권리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재산에 대해서도 2/3를 상속할 권리가 있습니다. 거기다 아브라함의 가문은 하나님의 축복권까지 곁들여 있습니다. 먼저 장자를 축복하고 그 남은 것을 차자가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자권은 정말 엄청난 권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자권과 죽 한 그릇을 바꾸자고 합니다. 말이 안되는 제안이죠. 그런데 놀랍게도 에서는 야곱의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있을 수 없는 어리석은 판단입니다. 에서가 야곱의 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도 참 어이없습니다. 지금 내가 죽으면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면서 바꿔버립니다. 그 죽 한그릇 안 먹는다고 죽겠습니까? 또 어머니에게 달려가면 배고픔을 달래줄 음식들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에서는 그런 생각 하지 않고 저 죽을 지금 당장 먹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집착해서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합니다.

 

보통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다보니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집의 장남으로 살아오면서 장남 대접 받는 것이 당연했던 에서기에 그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대체로 소중한 것들은 평소에 그 가치를 잘 깨닫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겨 버리거나 잃어버렸을 때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에서의 태도를 두고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34절에 보면 에서가 죽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바꾼 것을 두고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축복하신 아브라함의 집안에서 장자라는 권리를 우습게 여겼다는 말은 그 아버지 뿐 아니라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우습게 여긴 것이며, 또한 그 집안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우습게 여긴 것이라는 뜻입니다. 에서의 행동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쯤이야..

 

과연 그럴까요?

야곱은 어떻습니까? 사실 야곱의 행동은 어떻게 설명해도 정당화하기 힘든 얄팍하고 치사한 짓입니다. 야곱은 사실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수를 쓰더라도 얻고자 하는 욕심과 욕망이 가득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람 친구로 삼아도 문제고, 적으로 삼으면 더 큰 문제입니다. 아주 치밀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이런 사람 적으로 삼으면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야곱이지만 에서가 갖지 못한 탁월한 식견이 있습니다. 야곱은 그래도 소중한 것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특히 그는 장자권이 갖는 권리 중 장자에게 주는 축복의 우선권에 눈독을 들였습니다. 딴 것은 몰라도 저 것만은 내가 포기할 수 없다..그래서 그는 에서의 성격과 성향 그리고 그의 일상의 습관 등을 종합해서 죽 한 그릇으로 그 소중한 장자권을 얻는데 성공하고야 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여러분은 에서와 야곱 둘 중 어떤 사람을 더 좋아하겠습니까? 뭐 솔직히 둘 다 하자가 많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만..하나님은 에서보다 야곱을 선택하십니다. 왜일까요? 야곱은 여러 단점이 있는 교활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또 그렇게 대합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면 엄지를 척 내밀고 “하나님 최곱니다” 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하나님을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흔히 닭살 돋는 연인들의 멘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너는 가끔 나를 생각하지? 난 가끔 딴 생각을 해. 야곱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면서 어쩌가 가끔 딴 생각을 하지만, 에서는 늘 딴 데 집중하며 살다가 가끔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에서를 버립니다. 그리고 야곱을 선택하시고 야곱을 사랑합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깊이 사랑하시며, 나중에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 앞에도 두 가지의 갈림길이 있습니다.

 

먼저 에서의 길이 있습니다. 에서는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아버린 사람입니다. 인생의 참 소중함을 알지 못하고 항상 현실에 급급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저거 없으면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며 얻었지만 겨우 배고픔 잠시 달래는 죽이나 얻는 사람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제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쓸모없는 것을 얻기에 자신의 인생을 모두 소진해버리는 불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내 인생에 소중한지 알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이 없는 사람이며, 하나님의 미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야곱의 인생이 있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안 사람입니다.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축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에 서 있습니까?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