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창26:12] 거부가 된 이삭 그 비결

코이네 2016. 6. 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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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가 된 이삭 그 비결

본문 : 창세기 26장 12-25절

2016.6.5.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창26:12~13)

 

저는 이삭이 참 좋습니다. 특히 그가 거부가 되었다는 이 표현이 너무 좋습니다. 이삭이 농사를 지었더니 백배의 결실을 하였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가 거부가 되었다.. 저의 기도 제목 중 하나가 ‘주님 우리 소토교회 성도들 거부가 되게 해주십시오, 앞으로 매달 십일조를 100만원 이상 할 수 있는 사람 10명이 있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아멘 하시는 분들은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삭과 같은 거부가 될까?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삭과 같은 거부가 되는 비결을 배우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그 땅에 다시 흉년이 찾아옵니다. 팔레스틴의 지리적인 특징 상 그 땅에 흉년이 들면 내륙지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풍이 있어 비옥한 지중해 연안 지역으로 사람들이 이주하기 시작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래도 자기 땅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하겠지만 목축업을 하고 있던 이들은 정착지가 없었기 때문에 풀이 있어 짐승들을 키울 수 있는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자기의 소유를 이끌고 지중해 해안인 그랄지방으로 이주했고, 그 그랄지방도 가뭄으로 어려워지면 나일강이 있는 이집트로 이주했던 것입니다.

 

이삭 시대에도 그런 지독한 가뭄이 들었습니다. 가뭄이 얼마나 심한지 이삭은 이집트로 내려갈 계획을 가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한 땅에 거하라고 하십니다. 3절에 보면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따릅니다. 이삭 판단에는 지금 당장 나일강이 있는 이집트로 내려가야 하지만, 하나님 뜻은 이곳에 있으라 하니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뭔 일을 하기 전에 꼭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할까요?” 묻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면서도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리고 일을 마친 후에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게 습관이 되어야 이삭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2. 100배의 결실을 이루기 위한 노력

 

그래서 이삭은 그의 소유를 다 이끌고 지중해 연안에 있는 그랄 지방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땅은 블레셋 사람들이 다스리는 곳이었고, 이삭은 이곳 사람들의 견제와 감시를 받으며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가 한 부족의 족장이었고, 당시는 그런 부족들이 이루는 국가들이 서로 연합하던 시대였기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주해온 이삭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죠.

 

이삭은 이곳에 이주해서 직업을 바꾸었습니다. 이전에는 목축업을 하였지만 이곳에서는 농사를 짓게 된 것이죠. 여러분도 농사를 지어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것입니다. 그저 씨뿌리고 물준다고 곡식이 자라지 않습니다.  농사는 과학이며, 또한 경험이 축적되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런 농사를 그곳에서 짓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지역 사람들의 견제와 감시 속에서 이제껏 해보지 않은 농사일을 하려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해에 백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백배의 결실을 생각할 때 우린 단순하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그렇게 되었구나, 좋겠다. 그리 생각할 것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여러분은 100배의 결실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덜 경험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100배의 결실 속에는 이삭이 농사를 제대로 짓기 위해 엄청난 연구를 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인내와 함께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고 완성할 때까지 끝까지 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잘되게 되고, 또 노력하는 사람보다 그 일을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억지로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일의 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즐길 때 그 일은 내 인생을 행복하게 하는 하나님의 복이 되는 것이죠. 진정한 농부는 자식을 키우는 정성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곡식들은 농부의 정성과 사랑으로 자라는 것이죠. 백 배의 결실을 얻었다면 이삭은 다른 농부들보다 백배의 정성을 기울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이삭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셨습니다.

 

흔히 2% 부족하다는 말을 합니다. 어찌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그 2%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우리 인생이 성공하는데 열심과 정성과 사랑만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돌보심과 은혜가 있어야 이제껏 쏟았던 열심과 정성과 사랑이 빛을 발하며, 결실을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우리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2%부족한 것을 채웠다고 생각하는 이 하나님의 은혜가 가장 크며, 절대적인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3. 주신 은혜를 지키는 용기

 

그렇게 100배의 결실로 거부가 된 이삭이 거부가 된 또 다른 비결이 그가 판 우물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가 되자 그 땅의 왕이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다 막아버리고 그를 내쫓아버립니다. 죽을 고생해서 겨우 땅을 개간해 놓았더니 그것을 힘으로 빼앗아 버리고, 그는 쫓겨나 그랄 골짜기에 다시 터전을 잡습니다.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어 쫓겨난 것입니다. 울화통이 터질만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불가항력입니다. 세상 살다 보면 이런 험한 꼴을 겪습니다. 이럴 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 더러운 세상..”

 

그런데 이삭은 거기서 다시 우물을 파고 열심히 땅을 개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새로운 우물을 하나 주셨습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천신만고 끝에 새롭게 얻은 우물, 그런데 이 우물도 다시 빼앗겨버립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와서 이건 우리 거라며 빼앗아 버린 것이죠. 어떤 분들은 이삭이 마음이 좋아서 빼앗으니 그저 주었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우물 이름을 보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름이 '에섹'입니다. 다투었다는 것이죠. 주기 싫어서 안된다고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적으로 뺏긴 것입니다. 우물을 뺏겨버린 이삭. 겨우 입에 풀칠 하나 했는데 다시 주저앉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여기서 주저앉지 않습니다.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랬더니 또 땅에서 물이 솟아오릅니다. 그는 새로운 우물을 얻었습니다. 그러자 그 지역 사람들이 다시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것도 빼앗아 버립니다. 이번에는 이삭이 이전보다 더 극렬하게 저항했습니다. 하지만 힘이 부치니 빼앗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물 이름이 '싯나'입니다. 대적했다는 뜻입니다. 다툰 정도가 아니라 대적했지만 뺏겼다는 것입니다. 그 허탈함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키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삭이 우물을 판 장면을 두고 그를 무골호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싸움이 안되는 사람, 마음이 무지 넓은 사람, 착하고 또 착한 사람이 이삭이라며 이런 비폭력의 태도를 칭찬합니다. 하지만 그건 성경을 좀 깊이 읽지 않고 그저 이삭이라는 사람을 자신들이 원하는 캐릭터에 맞춘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에섹과 싯나라는 우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키고자 그것을 뺏는 사람들에게 저항하였습니다. 뺏길 때 뺏기더라도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용기와 노력을 해야 합니다.

 

4. 또 다시 도전하는 이삭

 

이렇게 저항했지만 불가항력으로 빼앗겨 버렸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한 번의 시련은 그래도 용기를 내어 일어서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시련이 계속 이어진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이삭처럼 이제 좀 될 듯 하면 빼앗기고, 또 빼앗기고.. 자신이 뭘 잘못해서 그랬다면 내 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잖습니까?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내 이웃들이 악해서 그런 것입니다. 내가 뭘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리고 도대체 하나님은 뭘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저항할 때 천사를 보내셔서 조금만 도와주시면 될 것을 하나님은 그저 뺏기도록 보고만 계십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면 하나님도 믿을 수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삭은 다시 우물을 팝니다. 그의 끈기는 정말 대단합니다.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의지, 좌절하고 절망한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인내의 사람. 불평하고 절망해야 할 때 그는 이것을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았고, 변함없이 그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절망과 좌절의 순간이 새로운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로 만든 사람, 그가 바로 이삭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도 충분한 우물을 주셨고, 나에게도 앞서 두 개의 우물을 파게 해주셨는데 세 개라고 주시지 않겠는가? 세 번째도 뺏기면 네 개도 주시겠지.. 하나님이 이 땅에 살라고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책임을 지시겠지. 이게 이삭의 믿음입니다.

 

5. 르호봇, 원수까지도 용서하는 포용심

 

그리고 그는 마침내 새로운 우물을 또 얻었습니다. 그가 세 번째 우물을 파자 그 지역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양심의 가책도 있었겠고, 또 이삭에게서 아주 특별한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겉으로 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 저 사람은 건들면 안 되겠구나 싶은 그런 마음이 들게되는 그런 특별함이 이삭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삭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우물을 얻자 그는 그 우물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합니다. 이 우물은 우리가 먹기에 풍족하니 당신들도 함께 먹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물 이름이 '르호봇'입니다. 넓다는 것이죠. 이삭의 마음이 그렇게 넓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거부가 된 진정한 비결이 아닐까요? 많은 사람이 복을 바라지만 정작 하나님이 복을 주셨을 때 이를 복되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이렇게 복이 복되게 한 사람이며, 그 복을 더욱 넓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거부가 된 것이며, 그는 거부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흔히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돈을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지 돈에 매인 사람, 돈에 현혹되고 돈의 노예가 되면 그 사람은 부자가 아니된만 못한 불행한 인생이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은 많이 보지 않습니까? 저는 이번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서 정말 개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옥시라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살균제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계속 제품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더 중요했던 것이죠. 이런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안 됩니다. 자기도 망할 뿐 아니라 남의 인생도 망치게 됩니다.

 

6.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삭은 거부가 될만한 사람이었고, 거부가 되어 하나님께 복받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각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키는 용기를 가졌고, 그것을 빼앗기고 실패했을 때 또 다시 도전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그를 핍박한 원수 같은 사람들까지도 용서하고 그들과 함께 자신의 것을 나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소토교회 성도들도 이삭과 같은 멋진 거부가 되길 축원합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