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한나와 브닌나 그 여인들의 치명적인 결핍

코이네 2017. 1. 1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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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때문에 불행한 사람, 부족해서 행복한 사람

 

본문 : 사무엘상 1장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한 사람은 한나 또 하나는 브닌나이다. 엘가나는 두 명의 부인을 차별하여 사랑한다. 한나에게는 애정을 듬뿍 주고, 늘 그 곁을 지켰지만 브닌나에게는 소홀했다. 같은 부인인데도 왜 그렇게 차별하며 사랑하였을까? 이 때문에 두 여인은 서로 원수가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차별받는 브닌나에게 자녀의 복을 주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약자의 편을 들어주신다. 그 덕에 브닌나는 이 집에서 큰 소리 치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식을 등에 업고, 원수 같은 한나를 핍박하였다.

 

한나는 그런 브닌나의 도발과 핍박에 괴로워하였고, 그때문에 자녀를 갖고자 하는 애착이 강하였다. 이는 남편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또 다른 갈증이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인생은 묘하다. 한 여인은 남편의 사랑에 굶주렸고, 또 한 여인의 하나님의 사랑에 갈급했다. 두 여인 모두 공평하게 그들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이 결핍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결핍을 통해 공평해진다. 

 

그런데 난 하나님의 이런 공평함을 이해하기 힘들다.

이렇게 치명적인 결핍을 통해 서로를 처지가 공평해지기보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상황을 만들어주어 그렇게 공평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난 그렇게 하나님께 많이 불평한다.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모두가 다 채워져서 서로에게 더 이상 불만이 없도록 하여 공평해지면 안되겠습니까?"

 

그런 나의 불평에 하나님은 단호하게 그렇게는 안되겠다고 응답하신다. 왜 그러십니까? 전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또 간단하게 대답하신다.

 

"사람들은 뭔가 부족하고, 내가 아니면 해결해줄 수 없는 그런 결핍이 있어야 나를 찾아온다"

 

그렇다. 이건 정말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며, 또한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결핍 속에서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브닌나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결핍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또한 자녀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음에도 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저 자녀를 갖게된 것을 행운이라 여겼고, 자신의 복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하나님께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에게 굴러온 행운을 누릴 뿐이었지, 그 행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요행을 바라며 사는 인생인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달랐다.

그녀는 하나님을 찾았고, 그녀의 서럽고 답답한 심경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그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격한 감정을 기도로 풀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를 돌아보셨고, 그녀의 기도에 응답해주셨다.

한나는 마침내 사무엘을 낳았다. 그렇게 바라던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한나는 하나님께 구해서 자신의 결핍을 채웠다.

하나님에게서 결핍을 채웠더니 소원성취 외에 또다른 은혜가 같이 온다.

하나님은 불쌍한 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란 사실을 체험으로 믿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채웠을 뿐 아니라 믿음의 사람으로 더 크게 성장했고, 믿음의 길을 더 힘차게 걸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하나님께 헌신하였다.

 

브닌나는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께로부터 채우는 법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니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다. 그녀의 결핍은 불행의 원인이 되었고, 남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해결하였다.

 

한나는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께 가져갔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결핍을 채워주셨다. 부족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찬양하였고, 헌신할 수 있었다.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은혜, 그 능력으로 대체하였다.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이 된 것이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