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계2:8]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코이네 2017. 2. 25.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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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본문 : 요한계시록 28- 11

2017.2.5.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남자들 군대 갔다 온 이야기와 축구 이야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고로 싫어하는 이야기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오늘은 좀 싫어하는 군대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제가 군에 입대하여 자대 배치 받고 내무반에 들어가니 고참이 너 몇일 남았냐?” 묻습니다. 제가 계산한다고 머리를 굴리자 한다는 말이 아 됐다 됐어 네가 말하는 숫자 상상만해도 어지럽다. 어이구 불쌍한 녀석 그 먼 세월 어떻게 견디냐?” 그럽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 긴 세월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한데 다른 고참이 제 어깨를 툭툭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걱정마라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간다그럽니다. 와 정말 제가 이제껏 들었던 말들 중 최고의 명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군생활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국방부시계는 돌아가고 있고, 때가 되면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군생활도 제대할 때가 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서머나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서머나교회를 향해 주님은 자신을 처음이요 나중이며, 죽었다가 살아난 이라고 소개합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뭐라고 소개하십니까? 오른 손에 일곱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라고 소개하면서 주님의 관심은 온통 교회에 있으며, 주님은 교회를 통해 당신이 계획한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주인은 바로 주님이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머나 교회에서는 나는 시작과 끝이다, 나는 죽었다가 부활하였다고 소개합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께 달려있으며, 주님은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하신 생명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서머나교회에 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할까요?

 

서머나 지방은 에베소와는 약 40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무역이 성행한 아주 부유하고 큰 도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서머나 교인들을 보고 네 환란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부요한 도시의 성도들은 궁핍하고 힘들게 살까? 그 이유는 당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도시에 도시 발전기금으로 1만데나리온을 낼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이들이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도록 부추기고, 또 여러 가지 빌미를 제공하였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도들은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순교자까지 나왔던 것입니다. 가난해서 가난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재산을 빼앗기고, 또한 엄청난 핍박과 반역의 무리라는 누명까지 썼기 때문에 환란과 궁핍한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난 그리스도인 안 할랍니다고만 하면 그런 환란과 궁핍을 면할 수 있었지만 서머나 성도들은 주님을 배반해서 세상에서 편히 사느니 차라리 환란과 궁핍한 생활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꺼이 고난과 궁핍을 당하고 있는 서머나 교회에 주님이 무엇이라 말씀합니까? 앞으로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옥에도 집어넣을 것이며, 많은 시험을 받을 것인데 10일 동안 받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줄 것이며, 네가 이 시험에서 이기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약속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환란이 10일간 있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계시록에 많은 숫자들이 나오는데, 그 중 3, 7, 12 이런 수는 완전수라고 합니다. 즉 어떤 것을 이루는데 완벽할 수 있는 기간이나 숫자를 말합니다. 10이란 숫자는 일반적인 숫자인데, 크면 크고 작으면 또 작은 수입니다. 즉 환란이 오는데, 그 환란은 대충 고통을 주다 마는 정도가 아니라 고통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가 완전히 무너질 정도로 완벽하게 그리고 영원히 오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사라지는 기간이 10일이란 숫자가 상징하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군대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끝날 것 같지 않아도 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놓아도 돌아가서 때가되면 제대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아무 문제없이, 아무 고통 없이, 아무 막힘없이, 술술 잘 풀려나가는 인생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사는 것도 복 있는 삶이며, 이런 평강을 누리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이런 인생만이 복 있다,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려움 당한다고 복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할 때 내가 믿음이 없다, 문제가 있다, 기도하지 않았나보다, 기도해도 쎄게 하지 않았나보다, 하나님이 버리신건가? 하나님께 내가 뭔 죄를 지었나 이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환란은 누구에게나 와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란이 와도 그 환란은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을 믿고, 그 고난에 맞서 그 고난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을 믿음의 사람, 복 있는 사람,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바로 그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의 주인공이 되며, 둘째 사망의 해, 즉 고통을 당하지 않는 겁니다.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한 번은 육신의 죽음 그리고 두 번째는 심판으로 인한 영벌, 지옥에서 형벌 받는 것, 이것을 둘째 사망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겨야 할 고난을 회피하고, 요령부리고, 타협하고, 항복해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겪어야 할 고난을 피하면, 도리어 죽어서 지옥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예요. 이 땅의 고난은 기껏해야 10일간입니다. 하지만 지옥은 형벌은 영원입니다. 그래서 영벌에 처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2.그런데 9절에 보니 내가 내 환란과 궁핍을 알거니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주님 때문에 환란과 궁핍을 당하는 걸 안다는 것입니다. 이게 정말 중요합니다. 다시 군대이야기 좀 하겠습니다. 제가 포병에 근무했는데 155밀리 곡사포를 다루었습니다. 후방에 있는 부대로 포사격장이 없어서 일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예비군이 들어오면 포사격장이 있는 광주나 포항에 실거리 사격을 하러 떠납니다. 50여대의 군용트럭에 대포를 매달고 또 짐칸에는 군인들을 실어서 광주까지 가는데, 아주 천천히 갑니다. 부산에서 광주까지 무려 11시간에 걸쳐 이동합니다. 출퇴근 시간을 피해 국도와 고속도로를 통해 이동하는 그 광경이 정말 장관입니다. 그런데 이 때 주의해야할 것이 바로 급정거하는 것입니다. 트럭들이 대형트럭이다 보니 운전자가 도로 상황을 잘 모릅니다. 이를 알려주기 위해 트럭 짐칸에 있는 현역군인들이 깃발이나 야광등을 들고 수신호를 계속 해줘야 하는데, 이거 엄청 힘듭니다. 봄이긴 해도 밤에 달리는 차에서 그렇게 계속 수신호를 하면 몸이 완전 얼어붙습니다. 저희가 하도 열심히 하니 예비군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대충해라.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그 말이 맞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는 거 누가 알아주는 이 없습니다. 그런데 새벽 동이 터올 때 쯤 차안에서 예비군들은 다 잠자고 있는데, 우리 두 현역병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열심히 깃발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뒤에서 작은 짚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저희에게 이렇게 고함칩니다. “야 최고다. 수고 많다그러면서 엄지 척을 하며 지나가는데 우리 부대 대대장입니다. 대대장이 우릴 보면서 엄지척 하고 지나가는데 순간 울컥하더라구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우리 대대장이 알아주는구나.

군대 다녀온 남자들이 군대이야기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왜 그리 침튀기며 이야기하는 줄 아십니까? 스스로도 대견하거든요. 일단 내가 나라의 부름을 받고 내 의무를 다했다는 자부심과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훈련과 군생활을 이겨냈다는 사실에 뿌듯한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 할 일을 했고, 또 그 일이 그렇게 힘들었지만 해 냈다는 자부심 그거 자랑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런 고난을 이겨냈기 때문에 다른 어려움이 와도 내가 군생활도 해냈는데 그까짓 거 못하겠나 그런 용기도 생기는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여러분,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두고 만용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겁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그렇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주님께 버림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러니 세상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세상이 마귀가 주는 환란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것들은 때가 되면 그칠 고난이고, 속히 지나갈 것입니다. 그 고난은 우리를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연단시키는 하나님의 도구이고, 그것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용기가 나도록 해주셔서 우리에게 닥친 환란과 핍박이 어떠하더라도 너끈히 이길 수 있도록 해주실 줄 믿습니다.

 

3.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우리는 여기서 교회의 두번째 본질을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교회는 바로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충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충성된 자들에게 부탁하여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바로 이런 충성된 자,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믿음의 일꾼들이 있어야 하며, 바로 우리가 이런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충성이란 말의 본 뜻은 신실한’, ‘성실한’, ‘충실한입니다. 영어로는 faithful 이고 헬라어로는 pistos 입니다. 우리 말의 충성은 좀 다른 뉘앙스를 지니고 있지만, 헬라어의 피스토스와 영어의 faithful신실한’, ‘성실한’, ‘충실한’, ‘믿을만한또는 기뻐할만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성실하고 충실하고 믿을만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는 그런 충성된 사람, 충성된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도록 충성하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분간할 수 있는 실력, 진리와 비진리, 가치 있는 것과 허무한 것을 구별해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흐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운영하는 영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하며, 자기관리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영성과 실력을 겸비한 그런 훈련된 그리스도인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성은 결코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 두 눈 꼭 감고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주님을 위해 죽을 준비를 하고 산 사람, 그렇게 훈련된 사람만이 죽도록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머나는 그렇게 죽도록 충성한 일꾼들로 인해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AD 160년 이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로마제국에 체포되었습니다. 그의 인품이 너무 훌륭하여 그를 처형하려는 감독관이 어떻게 하든 그를 살리고 싶어 애원했습니다. 단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나는 예수와 무관하다 한 마디만 하시고, 여길 나가셔서 그 땐 아무리 예수 믿으셔도 간섭하지 않겠습니다. 도리어 보호해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를 86년간 한 번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어찌 내가 주님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담담히 화형대에 올라서 불에 타 순교하였습니다. 그가 12번째 순교자였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렇게 죽도록 충성하는 일꾼들로 인해, 그 이름에 예수의 향기를 풍겼습니다.

 

여러분 서머나의 이름 뜻은 향기, 향료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나는 몰약이 최고였습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바친 몰약도 이곳에서 난 것이라고 합니다. 서머나 성도들과 서머나 교회의 이름이 너무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지역 중 다른 지역은 다 역사 속에 사라져버렸는데, 서머나만이 유일하게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너희는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내가 시작과 끝이며, 내가 죽었다가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주님 안에 있습니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축복합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