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계2:1] 첫 사랑 최고의 사랑

코이네 2017. 2. 2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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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최고의 사랑

본문 : 요한계시록 21- 7

2016.1.15.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1. 얼마 전 1231, 서울 여의도 한국방송(KBS)홀에서 진행된 ‘2016 케이비에스 연기대상시상식에 출연한 차인표씨는 배우 라미란씨와 함께 베스트커플상을 받은 뒤, 세 문장으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는 “50년을 살면서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고 언급한 뒤, “첫째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는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는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라는 수상소감으로 박수를 받았습니다. 왜 남편이 부인을 이길 수 없냐고 물으니 그가 하는 말이 부부는 싸워서 서로 이겨야하는 관계가 아니라 사랑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남편이 아내와 싸워 이길 필요도 없고, 그러니 이길 수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차인표씨가 저보다 한 살 아랜데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어가는 비결을 참 빨리 깨달았구나 생각합니다.

 

 

2. 우리는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그는 그곳에서 천국의 실체와 이 세상의 종말을 보게 된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손에 이끌려 천국의 실체를 보았습니다. 그가 본 천국의 실체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둘러있고, 이를 중심으로 온 우주와 세계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종말을 또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본 세상의 종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무시무시한 파멸이 아니라 두 가지의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는 죄와 마귀가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서 영벌에 처해져, 이 세상의 죄의 역사가 끝장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지체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된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며 마침내 하나님의 참된 의를 실현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전하게 되는 역사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 중심에 하나님의 교회가 있고, 하나님은 그 교회를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꾸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래학자는 아니지만 미래를 예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의롭게 행하십시오. 그러면 성공합니다. 세상의 풍습에 따라 불의를 행하면 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그렇게 통치하고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기에 사람들은 마귀에게 속아서 불의라도 주저하지 않고 행해야 세상에서 잘 살 수 있고, 의롭게 살면 망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면 성공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에게는 가장 소중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위해 살면, 당연히 하나님의 소중히 여기는 존재가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는 너무 소중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당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서 참된 교회, 건강한 교회, 부흥하는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 본문에 보면 일곱 금 촛대를 다니시는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2:1), 이 말은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이 절대적인 통제권을 가지시고 교회를 세밀하게 감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1:18). 그리고 일곱별이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주의 종들인 사역자들을 가리키며 일곱 금 촛대는 주님이 피 값을 주고 세운 모든 교회를 말합니다(1:20).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주님께서 교회 사역자들을 붙들고 계시며 또한 교회를 관할하고 치리하시며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16:18). 교회는 인간들이 모여서 우리 교회를 하나 만듭시다라고 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 즉 예수님의 목숨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세운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 분쟁을 일으키고 분열시키는 것, 교회를 마치 자기 소유인양 함부로 대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서운 심판받을 것을 재촉하는 것과 같습니다.

 

4. 예수님은 에베소교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해 먼저 칭찬하십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해서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교회는 소아시아 교통의 중심지, 항구도시인 에베소에서 사도바울에 의해 개척된 교회였고, 계시록이 씌여질 당시엔 사도 요한이 목회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대해 내가 눈물로 너희를 가르친 것을 생각하라고 말할 정도로 그의 눈물의 기도와 헌신으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또한 에베소 성도들 역시 안질로 고생하는 바울을 위해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주고자 했던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목회자의 눈물과 그 목회자를 위해 자신의 눈이라도 기꺼이 빼어주고자 했던 사랑과 신뢰가 넘치는 교회,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였습니다. 주님도 이처럼 칭찬할 만큼 에베소교회는 모범적인 교회였고, 유서 깊은 교회였으며, 소아시아 교회의 장자교회라고 할 만큼 중요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님은 네가 회개하지 아니하면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겨버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로서 그 역할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주님의 심판으로 무너진 것처럼 에베소 교회도 그리하겠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주님은 이렇게 엄중하게 경고하는 것일까요? 이유는 바로 처음 사랑,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처음 사랑.. 이 처음이라는 말의 헬라어 프로토스는 맨 먼저, 첫째가는, 최고의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흔히 첫 사랑은 이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처음이라 미숙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의 첫 사랑은 미숙한 사랑이 아니라, 최고가는 가장 훌륭한 그러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일컫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이 주님의 향한 최고의 사랑이 식어졌고, 또 잃어버리고 있기에 그 존폐의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에베소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웠고, 그 교회 성도들은 사랑이 넘쳐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동이 살아있고, 예배가 살아있고, 주님을 향한 뜨거움이 넘쳤습니다. 안질 때문에 고생하는 바울을 위해 자신의 눈이라도 빼어줄 수 있는 교회였고, 눈물과 사랑으로 뭉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그 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5.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는가?

 

많은 이유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교회가 성장하다 보면 불순한 목적을 지닌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이런 저런 분탕질을 쳤을 것이며, 이로 인해 성도들은 크고 작은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대부분 사랑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됩니다. 또 조용히 들어온 이단들이 갖가지 잘못된 교리로 성도들의 신앙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고, 또 성도들 간에도 누가 교회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크고 작은 문제에 시달리다보면 교회의 분위기가 점점 완고해집니다.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서로간의 관계가 불편해집니다. 어느 샌가 성도들의 얼굴에 웃음이 점점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냉랭해지는 것이죠. 교회에 오기는 오는데 기쁨이 없습니다. 예배는 드리는데 열정과 사랑이 없습니다.

 

한자의 사람 인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서로 의지하며 관계를 갖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만나서 관계를 가질 때 무엇이 옳으냐, 누가 옳으냐부터 따지기 시작하면 절대로 관계가 발전될 수 없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자꾸 멀어지는 이유가 뭡니까? 자꾸 누가 옳으냐 먼저 따지기부터 하기 때문이지 않습니까? 따지기 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제가 사랑합니다라는 사랑이 먼저 깔려 있어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그 다음으로 무엇이 옳은지 누가 옳은지 따져도 따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랑이 없는 상황에서 따지기만 한다면 그건 남남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성도가 서로 남남이 되어버린 교회, 사랑이 죽은 교회, 상상이 가시나요?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너희가 다시 최고의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내가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사랑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니 그 교회를 폐쇄하거나 없애버리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가 무엇입니까? 이것이 없으면 아예 교회가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게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키라. 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여러분 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단을 배격하며 진리를 수호하는 것보다, 교리를 옹호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더 핵심적이며, 그 본질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그리고 이단을 배격하고, 세상의 핍박에 대항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을 일으키고, 교리를 수호하고, 세상에 참된 의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모든 것이 온전해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에는 아주 극단적으로 사랑이 없으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이 사랑이 풍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주님의 지체가 된 여러분이 아닙니까?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교회입니다. 사랑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기본은 바로 사랑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자로 살아가고, 사랑하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바로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또한 사랑하지 못하는 것, 사랑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큰 죄입니다. 이것은 정말 심각한 죄입니다.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이단의 사상을 옹호한다면 난리가 납니다. 교리가 조금만 달라도 순교를 각오하고 그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혹 성도들이 성적인 문제나 윤리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면 교회가 타락했다고 정말 통탄해 마지않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사랑인데, 교회가 사랑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가 잘하는 많은 일들을 칭찬하면서도 오직 하나 사랑이 없는 것으로 그 교회를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랑하며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시인이 첫사랑에 대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이보게, 잊지는 말게나

산중의 진달래꽃은

해마다 새로 핀다네

거기 가보게나

삶에 지친 다리를 이끌고

그 꽃을 보러 깊은 산중 거기 가보게나

놀랄걸세

 

첫사랑 그 여자 옷 빛깔 같은

그 꽃빛에 놀랄걸세

그렇다네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

 

6. 혹 여러분도 사랑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신 십자가의 그 사랑, 그 감격을 잃어버렸지 않습니까? 여러분 먼저 우리는 주님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겸손히 십자가 지시었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 하나 왜 날 사랑 하나

왜 주님 갈보리 가야했나 왜 날 사랑하나

 

나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신 그 사랑에 대해 갈급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날 사랑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배는 바로 그 사랑에 화답하는 자리이며, 주님과 사랑하는 자리입니다. 예배의 핵심은 바로 어떻게 해야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바르게 표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회복할 때 우리는 사랑받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가장 복된 인생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복임을 깨닫길 바랍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