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삼상1:1]한나와 브닌나 두 여인의 결핍

코이네 2017. 1. 3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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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의 결핍

본문 : 사무엘상 1:1-18

2017.1.29.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날)

 

 

1. 옛날 한 가정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아이라 가족 모두 긴장하고 있었고, 그래서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방안에서는 산모의 고함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애끓게 하고 있을 때 목사님이 무사히 출산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후 찬송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1절을 다 불렀는데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안합니다. 힘써도 못하네, 참아도 못하네.. 그래도 아이가 나오질 않습니다. 믿으면 되겠네 주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그러자 응애 하는 힘찬 아기 울음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그 아이의 이름이 믿음이 되었다던가..

 

실제 있었던 이야긴지 지어낸 이야긴지 몰라도 세상에는 열심을 다하여서도 안 되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해줍니다.

 

2.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엘가나라는 사람에게 두 명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한나 또 하나는 브닌나입니다. 그런데 이 엘가나는 두 명의 부인을 차별합니다. 한나에게는 애정을 듬뿍 주고, 늘 그 곁을 지켰지만, 브닌나에게는 소홀했습니다. 같은 부인인데도 왜 그렇게 차별하며 사랑하였을까요? 제 생각에 뭐 그리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을 겁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좋아해야겠다고 사랑해야겠다고 해서 그렇게 마음이 가고 사랑이 오는 게 아닌 것이죠. 그냥 한 여인은 생각만해도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또 한 여인은 아무리 예쁘게 가꿔서 곁에 다가와도 맹숭맹숭.. 이런 마음을 또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두 여인은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사실 브닌나의 경우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이 미워야 하는데 한나를 미워합니다. 내 남편을 사랑을 저 여우같은 한나에게 뺏겼다는 피해의식과 저 여자만 없으면 남편이 날 사랑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브닌나에게 자녀의 복을 줍니다. 어쩌다 한 번 남편과 같이 자는 날이면 임신하게 되고, 또 얼마나 건강하였는지 아이를 쑥쑥 잘도 낳습니다. 이런 걸 보면 하나님은 약자의 편입니다. 그 덕에 브닌나는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하였지만 이 집에서 큰 소리 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식을 등에 업고, 원수 같은 한나를 핍박합니다. 한나는 그런 브닌나의 도발과 핍박에 괴로워하하며, 자신도 아들을 낳고자 염원합니다. 아들에게 대한 염원 이는 남편의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또 다른 갈증입니다.

 

3.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인생은 묘합니다. 한 여인은 남편의 사랑에 굶주렸고, 또 한 여인의 하나님의 사랑에 갈급합니다. 두 여인 모두 공평하게 그들은 치명적인 결핍이 있었고, 이 결핍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죠. 사람들은 이런 결핍을 통해 공평해집니다. 그런데 전 하나님의 이런 공평함이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핍을 통해 공평해지기보다, 모두가 만족할만한 상황을 만들어주어 그렇게 공평하게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 왜 그러십니까? 모두가 다 채워져서 서로에게 더 이상 불만이 없도록 하여 공평해지면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잖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이런 좋은 제안에 그거 좋겠다고 응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단호하게 그렇게는 안 되겠다고 응답하십니다. 도대체 왜 그러실까요? 이유는 간단하더군요.

 

"사람들은 뭔가 부족하고, 하나님이 아니면 해결해줄 수 없는 그런 결핍이 있어야 하나님을 찾아온다"

 

그것입니다. 여러분, 우린 참 많은 결핍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핍 중 없어도 되는 것도 있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결핍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소엔 그 사실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어도 되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결핍에 목마를 때 비로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4. 한나가 그러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자신의 문제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도하고 통곡합니다. “나의 고통을 돌아보사 나를 생각하소서

 

그녀는 하나님을 찾았고, 그녀의 서럽고 답답한 심경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격한 감정을 기도로 풀었습니다. 그녀는 성전에서 통곡하고 몸부림치며 기도했고, 그만 지쳐서 나중에는 입만 달싹달싹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본 엘리 제사장은 한나가 성전에서 술에 취해 술주정하는 것으로 보았고, 그녀를 책망합니다. 그런 제사장을 향해 한나는 자신의 고통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자초지정을 들은 엘리 제사장이 말합니다. “평안히 가라. 네 기도를 하나님께서 답하시기를 원하노라이 말이 한나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들렸습니다.~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구나. 뭔지 모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분명한 확신이 옵니다. “이 여종이 은혜받기를 원합니다엘리 제사장에게 고맙다며 성전을 떠난 후 그녀는 다시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응답의 확신이 왔기에 평안했던 것입니다.

 

저는 우리 소토교회 성도들이 한나처럼 기도하길 바랍니다. 많은 이들이 한나처럼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으셨다는 분명한 증거를 받지 못한 채 기도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증거가 내 가슴 속에서 든, 환경에서든 뭔가 분명한 확신과 믿음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응답의 증거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응답 받았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하는 말씀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올 때까지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5. 특별히 그녀의 기도의 말 중에 나를 생각하소서!”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생각하소서!”

공동번역은 가련한 나의 모습을 굽어살펴 주옵소서!”

, 자신의 현재 모습을 살펴주시고 잊어버리지 마시고 도와달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한지 마음 속 깊은 곳,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가슴 아픈 슬픈 일을 살펴보아주시고 적절히 조처를 취해 달라는 말입니다.

 

이 생각한다는 것은 그저 잠깐 기억하는 그런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듯 곰곰이 깊이 있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니 간절해지고, 생각하니 더 깊이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더 뜨거운 열정이 솟아오르는 그런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나를 생각하소서하는 말은 그렇게 하나님의 속깊은 사랑으로 나를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19절에 뭐라고 하십니까?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한나가 저리 힘들어하는구나,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내가 도와주어야겠구나. 그리고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생각해 주시니 한나에게 아이가 생기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해 주시니까 한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에게 부르짖는 자의 처지를 생각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 사단의 시험을 받습니다. 94:7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하나님이 생각지 못하리라.’ 한나가 그렇게 울며 자신의 처지를 하나님께 아뢸 때 슬며시 사단이 다가와 이런 속삭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생각지 않는다. 네가 뭐라고 하나님이 널 기억하며, 네 말을 들으실까? 네가 하나님게 뭐라도 되는 줄 아느냐? 하나님이 얼마나 바쁘신데 네 말에 귀 기울 정신이 있을까? 네 꼴을 봐라. 넌 하나님이 이미 버렸다.’ 기도 중에도 사단은 마치 하나님의 사자나 되는 양 그렇게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때때로 그런 사단의 방해에 넘어져서 기도를 포기하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 살피시는도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 분은 우리를 기억하시고 생각하십니다. 그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49:15,16)“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비록 나를 낳은 부모님이 나를 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안 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손바닥에다가 새겼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나를 생각해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안 될 거야..우리는 때때로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시며,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결핍 그리고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가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멀어지는 이유가 아니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6. 한나는 이렇게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결핍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웠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나님 남편이 한나처럼 저도 좀 그렇게 사랑하도록 할 순 없을까요? 저도 좀 그렇게 예뻐 보일 순 없을까요?” 하지만 브닌나는 그렇게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또한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해도 자녀를 잉태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음에도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깨닫지 못하고 삽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 하나님께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고,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저 이는 행운이라 여겼고, 자신에게 굴러온 복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에게 굴러온 행운을 누릴 뿐이었지, 그 행운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자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이 채워주기를 바라지 않았고, 여기에 더 나쁜 것은 하나님 없는 인생을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니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채우지 못한 결핍은 불행의 원인이 되었고, 그 불행을 남탓으로 풀었습니다. 그래서 한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것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입니다. 결핍 때문에 자기도 괴롭고, 남도 괴롭게 하는 인생을 살아갔습니다.

 

7. 한나는 자신의 결핍을 하나님께 가져갔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그 결핍을 채워주셨습니다. 부족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 감사하였고, 찬양하였고,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하나님의 은혜, 그 능력으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이 되었으며, 점점 그 삶을 하나님으로 채워갔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신앙의 신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부족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채우지 못해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결핍을 하나님으로 채워갈 수 있어서 더욱 풍요로운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