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칼럼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나에게 주는 표창장

코이네 2017. 6. 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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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는 표창장

 

 

성경을 보니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었다고 말씀하신다. 영어로 피스 메이커가 되라는 것이다. ‘피스 메이커peace maker' 세상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 분란을 잠재우고, 화해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날 참 곤란하게 만드신다. 왜냐면 난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나에게 도발하는 인간 어떻게 하든 처절하게 응징해서 다시는 그러지 못하도록 해서 평화롭게 살고 싶지, 예수님처럼 참고 이해하고 용서해서 평화롭게 살고 싶진 않다. 그런 나에게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 하시니 이거 참 못하겠다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난감한 것이다.

 

 

 

 

예전에 아주 꼴사나운 일을 당한 적이 있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갑자기 내 차 앞으로 와 위협운전을 하는 것이다.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일 것 같아 가까운 톨게이트로 빠져나갔는데, 이차가 계속 따라붙으며 위협운전을 하는 것이다. 차를 갓길에 정차해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과속으로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내가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속도를 줄여야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온갖 쌍욕을 다 퍼붓는다. 아마 내가 태어나서 단시간에 그렇게 많은 욕을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에게 먹어보긴 첨이었다. 솔직히 살인충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곁에서 딸과 다른 운전자들이 말렸기에 망정이지 계속 그 자리에서 시비가 붙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그렇게 그 사건은 끝이 났지만 정작 힘든 일은 그 후에 벌어졌다. 그 때의 기억이 불쑥불쑥 떠오르면서 그 때마다 분노에 사로잡혀 내 마음속에선 그를 처절하게 응징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생각이 날 때마다 그랬다. 그 사람은 내 머릿속에서 몇 번을 죽었다 살아났다. 살아나면 죽이고 살아나면 죽이고를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거기에 내가 왜 그 때 바보같이 이렇게 응징하지 못했는가 싶어 또 괴로웠다. 새파랗게 젊은 것이 그렇게 쌍욕을 퍼부어대는데도 그걸 고스란히 듣고만 있었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그 자리에서 눈물 콧물 빼도록 처절하게 응징하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던 내가 얼마나 멍청해 보였던지.. 그런 내가 싫었다. 예수님은 이런 나에게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 되라 하신다.

 

피스메이커, 되긴 싫은데, 되라 하시니 되긴 되어야겠고... 그럼 어떻게 하면 될 수 있을까?

일단 생각부터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싸우는 것보다 평화가 더 좋다는 생각. 싸움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말로 해결하고, 그러기 위해 참아주고, 이해해서 일단 폭력으로 일이 커지지 않도록 하길 잘했다는 생각 말이다. 이건 정말 잘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난 이제껏 복수하거나 그 자리에서 맞대응하기 보다는 참 많이 참고 살았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모멸감에 치를 떨기는 했지, 그런 나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보면서 잘했다고 칭찬해준 적은 없는 것 같다. 이제껏 잘해 왔는데, 잘 한 일을 잘했다고 칭찬하기보다 그런 자신을 바보 같다고 학대해 온 것이다. 이제부터는 잘한 걸 잘 했다고 칭찬해주어야겠다. 나 자신에게 상장을 주는 것이다. 부상이 있으면 더 좋겠지.

 

표창장 평화상, 박동진, 위 사람은 싸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참아내며 더 큰 분쟁을 미연에 막은 공로를 인정하여 이 표창장을 드립니다.”

 

잘 참아 상을 받은 나를 위해 박수를 보낸다.

 

 *화목하게 하는 직분으로 글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일단 첫번째 단락 끝맺음을 합니다. 다음 글은 구체적으로 화목하게 살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글이 이어집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