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두 명이 스승을 찾아 왔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공부를 한 두 제자는 이젠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스승의 곁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스승은 두 제자 앞에 하얀 종이를 꺼내어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고서 제자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한 명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 명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떠나도록 허락했지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공부를 더 할 것을 명령하며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
"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하는 훈련인거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선택한 사람을 훈련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아무 대책 없이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기까지 훈련을 시키시며,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기까지 80년이 걸렸지만 하나님은 이 8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영적 훈련은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능동적인 훈련이고, 또 하나는 수동적인 훈련입니다.
능동적인 훈련은 우리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며, 생활 중에 말씀을 실천하고자 애를 쓰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을 통해 좀 더 나에게 유익이 없는 가를 찾아서 주어진 기회들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런 영적 훈련은 아주 삶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시작하라고 권고합니다. 일종의 절제생활을 훈련하는 것인데 먼저 잠자는 것에 대한 영적 훈련입니다. 잠들기 전에 주님께 꼭 인사하고 잠드는 습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 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수면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새벽기도회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으면, 새벽에 일어날 수 있도록 일찍 잠자리에 드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음식에 있어서도 감사의 기도를 드린 후에 식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적당히 절제하며 먹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훌륭한 영적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본능에 지배되지 않고 그 본능을 지배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능동적 훈련을 잘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요셉은 형들이 다 일을 하러 나간 시간에도 아버지 야곱 곁에 있었습니다. 야곱이 어떤 이야기를 요셉에게 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아마 그가 겪은 그 험악한 세월 속에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부르셨으며, 어떤 언약을 하셨으며, 어떻게 그를 지키셨고, 그 언약을 성취하고 계신가에 대해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였을 것입니다. 정말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빠졌을 때에도, 노예로 팔려갈 때에도, 한 장군의 노예로 생활했을 때에도,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감옥에 나와 바로의 신임을 받고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을 가졌으며,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 아버지 야곱이 들려주었던 그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는 수동적인 훈련입니다. 이것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을 살면서 배우고 익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인생공부라고 하기도 합니다. 인생을 통한 영적 훈련,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훈련이기도 합니다. 이 훈련은 예외가 없습니다. 모두가 이미 이 훈련에 들어서 있습니다. 갖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한 삶, 희노애락이 점철되어지는 가운데,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구나, 이렇게 해야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배우고, 깨닫는 것입니다. 때로는 엄청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좌절과 시련, 실패의 경험을 하기도 하며, 때로는 뿌듯한 자부심에, 자기도 모르는 새 그렇게 성숙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대견해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도 예외없이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요셉은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하나님이 자신의 생명을 책임지시고 있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자신의 생명에 관여할 수 없다는 확신과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차적인 훈련의 목표를 향하여나아갑니다. 그 목표는 바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의지하고자 할 때마다 심한 좌절을 겪습니다. 먼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격리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아버지의 후광이 사라진 요셉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정말 비참한 자리에 놓이게 됩니다. 그는 노예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또 성실히 일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그 주인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 주인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이 주인을 의지하기만 하면 요셉의 여생은 그런대로 살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주인에게서 요셉을 떼어놓습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요셉이 선 자리는 더욱 비참한 감옥이라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감옥에서 그는 또 하나의 기댈 곳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그 감옥에 수감된 왕의 술따르는 관원입니다. 그 관원은 그를 감옥에서 충분히 석방시킬 수 있는 권력층의 사람입니다. 그 관원이 석방되기 전 그는 관원에게 자신의 무죄함을 호소하고, 자신을 이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을 애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관원은 석방되었지만, 요셉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그 관원이 석방된 다음날부터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관원은 그를 잊어먹었습니다. 혹시나 하던 그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이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습니다.
요셉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네서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제 다 끝났다, 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좌절하는데 반해 믿는자들은 이제 내 곁에 하나님만 남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제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싫던 좋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요셉은 “오직 내 인생을 책임지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이전엔 이 사실이 이론이었는데, 이제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제 하나님만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이 때 하나님은 비소로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십니다. 그 결과 요셉은 놀랍게도 바로왕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했을 때, 바로왕이 그를 필요로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왕은 그를 의지했습니다. 온 나라 백성이, 주변 모든 나라와 백성이 그를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의지할 땐 세상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니, 도리어 세상이 우리를 의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루고자하시는 우리의 참모습입니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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