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 묵상

[사순절묵상]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코이네 2018. 3. 28.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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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마태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병을 고친 사건들이 계속 나온다. 먼저 중풍병자를 치료하고, 죽은 회당장의 어린 딸을 다시 살린다. 그리고 회당장의 딸을 살리러 가는 길에 열두해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의 병을 고친다. 또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고, 그 외 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쳤다.

 

예수님은 참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 사람들이 병들어 고통받고 살아가는 것을 주님은 원치 않으시기에 그를 찾아온 수많은 병자들, 그 병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치료해주셨다. 병들어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주님을 잘 알고 계셨고, 이 병이 고침 받는 것을 두고 '구원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마태복음 9장에 병고침을 받은 사람 그리고 죽은 딸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본 사람들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를 생각해내고 예수를 찾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는 내 병을 내 인생을 고칠 수 있다는 강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다.

 

회당장의 경우는 사실 좀 특이하다. 그의 딸이 지금 죽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그 어린 딸이 죽었다. 대부분의 경우 슬픔에 빠진 채 이제 이 딸을 장례치를 준비를 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회당장은 예수께 달려왔다. 그리고는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주시면 다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렇게 요청했다. 결코 상식적인 행동은 아니다. 만일 내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장례준비는 하지 않고 예수를 찾아갔고, 예수의 손을 그 딸 위에 얹어주길 간절하게 청했다. 어떻게 보면 광신적이라 생각할만한 행동이다. 그리고 사실 무례하면서도 무리한 부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죽은 딸을 살려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만일 내게 그런 요청을 했다면 정말 황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회당장의 요청을 받고 순순히 따라가신다.

 

해바라기 해바라기, 사진@레몬박기자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이 회당장은 도대체 왜 딸을 죽음을 보면서 예수님께 딸을 살려달라고 찾아갈 수 있었을까?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그만큼 회당장과 예수님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을까? 생면부지의 관계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친하기에 무리한 부탁인 줄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회당장도 그렇고, 혈루병 걸린 여인도 그렇고 눈 먼 소경들도 그렇고.. 그들은 이 상황에서 예수를 찾아야겠다, 예수께 요청해야겠다는 절실한 마음이 들었다. 그 생각은 어떻게 들었을까? 예수를 찾아야겠다는 간절한 생각, 바로 이것이 성령이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결과이다. 성령의 감동.. 내 딸이 지금 죽었지만 예수를 만나야겠다, 내가 12년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예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져야겠다, 내가 평생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았지만 지금 예수를 만나야겠다.. 지금 예수를 만나야겠다. 지금 예수를 찾아야겠다.. 바로 이 생각,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생각이며, 마음이다.

 

그런데 성령의 감동이 우리 마음에서 요동쳐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믿음이 된다. 회당장이 딸의 죽음을 보고 예수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부질 없는 짓이다라고 해버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는 것이다.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람들이 저리 많은데 하며 포기해버렸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예수를 찾을 들 대수겠어? 예수라고 별 수 있겠어? 그리 생각해버리고 무시해버린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는 것이다.

 

예수께서 소경들에게 물으셨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담겨있다.

내가 죽은 사람도 살리는 능력, 12년을 암으로 고생한 이 여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능력, 그리고 눈먼 소경도 눈뜨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느냐? 예수님의 능력, 실력에 대한 질문이다. 그와함께 내가 너를 위해 이 일을 해줄 줄 믿느냐? 예수님의 의도에 대한 질문이다. 당신의 어려움 때문에 나를 찾아왔지만 내가 굳이 그 일을 맡아 해결해줄 이유가 있을까? 당신을 잘되게 해주고자 하는 선의가 내게 있다고 믿느냐는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나를 잘되게 하시려는 의지가 있을까? 36절에 이렇게 대답해주고 있다. "무리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사" 그렇다. 예수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낌없이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선의를 믿고 그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