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8:1] 주님이 원하시면 ..내가 원하노니 _박동진목사

코이네 2020. 7. 29. 16:47
>

주님이 원하시면, 내가 원하노니

본문 : 마태복음 81~4

2020.7.5. 양산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스탠리 죤스는 인도 선교사로서 큰 발자취를 남긴 분입니다. 그는 평생을 인도에 가서 복음 전하다가 생을 바친 분입니다. 그는 89세에 뇌일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강제로 보스턴에 있는 병원에 입원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죤스 선교사님은 치료를 받으면서 의사가 들어올 때마다 닥터,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 걸으라하고 부탁을 했습니다. 하도 부탁을 하니까 의사가 그분에게 올 때면 스탠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걸으라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스탠리 선교사는 아멘하고 대답했습니다. 간호사가 들어오면 그 간호사에게도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간호사가 치료를 하다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 걸으라하고 말하면 또다시 아멘하고 대답했습니다. 어쩌면 약간 노망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분은 6개월만에 병상을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90살의 나이에 또 다시 인도에 선교하러 갔습니다.

1. 나병환자

 

고대 사회에서 나병은 모든 질병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이 병은 처음에는 작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것이 썩어져 가면서 고름이 생깁니다. 얼마 안 가서 눈썹이 빠지고, 성대는 거칠어지고, 호흡은 씩씩 거리게 됩니다. 신체의 감각이 사라지며, 그런 속에서 살이 곪아서 떨어져 나갑니다. 먼저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뇌에까지 병균이 침투해서 정신적인 장애와 혼수상태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20년 내지 30년간 지속되면서 몸이 조금씩 죽어 가는 병이 바로 나병-한센씨병입니다.

 

나병 환자는 질병이 확인된 그 날부터 철저히 인간 사회로부터 추방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나병환자가 예루살렘과 모든 성벽이 있는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접촉을 금지하는 61가지의 규정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병환자와 접촉하는 것은 죽은 시체와 접촉하는 것 다음으로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가령 나병환자가 집안에 머리를 들여 밀기만 해도, 그 집은 지붕의 대들보까지 불결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광장에서도 나병환자와는 인사조차도 해서는 안 되었고, 나병환자에게 약 2미터 이상 접근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만약 나병환자가 있는 쪽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온다면, 적어도 약 45미터 이상 떨어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에서 나병환자를 마치 죽은 사람처럼 취급하였습니다. 어떤 랍비는 나병환자가 지나간 거리에서 사온 계란을 먹지 않았으며, 돌을 던져 내쫓았으며, 먼 거리에서 나병환자가 나타나면 아예 숨어버리거나 도망쳤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밖에 살지니라"(레위기 1345,46)고 했습니다. 만약 나병환자가 사회에 나오게 될 때에는 이 율법에 따라 멀리서 사람이 오는 인기척만나도 "부정하다 부정하다" 라고 목청껏 소리질러야 했고, 그런 애절한 절규를 들은 사람들은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나병환자들의 전염을 막기 위한 조처였지만 이로 나병환자들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 냉대와 고통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참담한 생애를 살았던 것입니다.

 

2. 절박한 사람

 

이런 나병환자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대부분 이런 경우 예수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저 좀 고쳐주십시오.” 이렇게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람은 주님이 원하시면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이 한 마디에 참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주님 원하시면이라는 말에는 주님께서 마음만 먹으면 절 고칠 수 있습니다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참 강력한 믿음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불치의 병, 하늘이 내린 벌이라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다는 이 나병도 그저 예수님이 마음만 먹으면 능히 고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딴 사람은 몰라도 예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위험을 무릎 쓰고 이렇게 달려와 그 앞에 엎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호칭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는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주인님 그저 처분만 기다립니다. 그는 그렇게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그 처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원하시면이 말에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람은 그저 병든 것입니다. 왜 이 병이든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보니 병에 걸린 것을 알았고, 그는 가족에게서 떨어져야 했습니다. 격리되어 살았습니다. 몸에는 악취가 나고, 몸이 썩어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참하게 하루하루 죽어갑니다. 자신이 뭔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닙니다. 자기도 모른 채 그렇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저 병이든 것인데, 병자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치료할 약도 없기에 낳을 희망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사람들은 곁에 있는 것조차 기피하고, 저주받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마침내 신의 저주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습니다. 사람이지만 사람의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상황에 순응합니다. 이것을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것이 내 운명이고 내 팔자라고 믿어버린 채 살아갑니다.

 

주님 원하시면이 말에는 사람이되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깊은 질문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입니까? 저 좀 사람답게 살면 안 되는 것입니까?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가족과 함께 웃음꽃 피우며 살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숨쉬고 싶고, 그 사람의 손도 잡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면 웃으며 맞이해주고,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면 안 되겠습니까? 저도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사람들은 내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 부모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나도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이젠 내 인생의 모든 것이 정말 지긋지긋해졌다는 것입니다. 격리지역 악취 구덩이에서 자는 것도 지겹고, 사람들에게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해 목에 달아야 하는 저주스러운 방울도 넌더리나며, 사람들의 기척을 느낄 때마다 부르짖어야 하는 소리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이렇게 사는 것 정말 지겹습니다.

사람들은 나병환자니 그렇게 비참하게 살다 죽어가는 것 그게 네 운명이고, 네가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 것입니까? 그렇게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저도 좀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남들은 천형이라고 하는 이 나병에서 벗어나서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서슴없이 어울리고, 그 손을 잡고, 포옹하며, 울고 웃고 그렇게 부대끼며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사람이 누려야 할 그 행복을 나도 누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까?

 

3. 내가 원하노니

 

그런 나병환자를 향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사람들은 천형이며, 그건 하나님이 네게 주신 저주이고,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나병환자를 향해 주님의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아니다. 네가 그렇게 사는 것을 나는 원하지 않는다. 그건 네가 그저 그렇게 받아들여야 할 숙명이 아니다. 네가 좌절하고 포기해야 할 그런 운명이 아니다.”

주님, 제가 인간답게,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길 원하십니까? 그렇다. 나는 네가 그렇게 살길 원한다. 주님은 그렇게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치료해 주셨습니다.

 

4. 만져주시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기 전에 행한 행동이 있습니다.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주님은 그렇게 자신 앞에 엎드려 있는 나병환자에게 다가 서고는 그의 몸에 손을 댑니다. 그 나병환자를 만진 것이죠. 진물이 흐르며 악취가 나는 그 몸을 만집니다. 잘못하면 그 균에 자신도 감염될 수 있는데, 그래서 그 때문에 나병에 전염될 수 있는데, 그렇기에 사람들은 나병환자가 오면 멀찍이 떨어졌고, 나병환자도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면 안 되기에 항상 부정하다 부정하다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체온을 느껴본 기억이 이젠 없을 정도로 그렇게 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나병환자의 몸에 손을 댑니다. 손을 대어야 나병을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대도 주님은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댑니다. 어쩌면 그 사람을 끌어안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사람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포옹을 하면 뇌에서 엔돌핀이 나와 몸 전체의 힐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혈압을 내리며 여성의 생리통을 경감시키고, 두통, 불안, 스트레스, 우울증이 완화됩니다. 자존감 형성에도 좋고, 곤두선 신경을 가라앉혀 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주고, 불면증을 낫게 하고, 두려움 극복에 도움이 되며, 감각을 자극하고, 행복하게 해주며, 영혼을 침착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노화 과정도 늦춰지고 식욕도 조절이 된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돈들이지 않고 쉽게 만날 수 있는 만병통치약입니다.

 

한 요양병원에 환자가 입원했습니다. 몸에서 진물이 나고, 매일매일 고통으로 신음하며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환자였습니다.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데 너무 고생하며 살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병이 얼마나 깊었는지 진통제도 듣질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간병인이 그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매일 진물을 닦아주고, 대소변을 가리고, 목욕을 시켜주고, 몸을 주물러줍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성을 들였는데도 그 여인은 임종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그 때도 자신의 몸을 정성스럽게 주물러주고 있는 그 간병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합니다. “고마웠습니다. 많이 아팠지만 그래도 그렇게 제 몸을 만져주셔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는 그래본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다가와 손 내밀지도 않았고, 그도 다가설 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다가와 손을 내밀어 그를 만졌습니다. 너무 불쌍하고 가련하고 그래서 그 손을 잡으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그 눈빛이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어쩌면 주님의 눈가에 눈물이 촉촉하셨을 것입니다. ‘내가 안다, 너희 고통을, 너의 설움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한 영화에 치유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병에 걸렸던 그 사람의 몸에 손을 대기만 하면 그 사람의 병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손을 대면 그 사람 몸에 있던 병이 손댄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이 치료자는 자신이 옮겨온 그 병의 고통을 오롯이 감당하면서 그 병을 자기 몸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치료할 능력은 있지만 별로 치료해주고 싶지 않습니다. 왜요? 그 병의 고통이 다 자기가 대신 져야 하니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치유하셨습니다. 그저 말로 너는 치료되었다 해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나병환자의 그 고통을 고스란히 자신의 십자가에 올려놓은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적인 고통도 그 마음이 갖는 슬픔과 아픔도 모두 십자가에 올려서 그 아픔을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내가 아플테니 너는 아프지 말아라.

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인생이 고달프고 힘듭니까? 아무도 날 알아주지 않아서 괴롭습니까? 주님께로 갑시다. 주님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길 원하시며, 복있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고쳐주십니다. 주님께서 내 인생을 만지시도록 나아갑시다.(*)

 

 by 양산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