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질병을 짊어지다
본문 : 마태복음 8장 14-17절
2020. 7. 19.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자 : 박동진 목사
예수님이 베드로의 집에 가니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누워 있습니다. 장모가 있었다는 걸 보니 베드로는 이미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집에 장모가 있었다는 걸 뭘 의미하는 걸까? 어떤 분들은 베드로가 데릴사위로 처갓집에 얹혀 살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장모가 잠시 딸을 보러왔다가 너무 지친 나머지 병을 앓았다고 추측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베드로가 과부가 된 장모를 자기 집에 모시고 살았다고 합니다. 같은 내용을 마가복음 1장에도 나오는데 거기에는 이 집을 “시몬과 안드레의 집”(29)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걸 보면 베드로는 참 착한 사람입니다. 자신도 어렵지만 홀로된 장모님도 모시고 또 아직 결혼하지 않은 동생과 함께 한 집에서 살면서 이들을 부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고깃배에서 그물질을 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시고는 너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라 하신 말씀에 두 사람은 모든 걸 처분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여러분이 베드로의 아내 또는 장모라면 어땠을까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며 자신과 가정을 잘 돌보던 성실한 남편이 아무 대책도 없이 갑자기 모든 걸 다 버리고 예수라는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한 마디 의논도 없이 한순간에 ‘저는 이제부터 예수님을 따라 다니겠습니다’ 그러고는 집을 나가버립니다. 이때가 예수님의 사역 초기라 예수라는 분이 누군지도 잘 모르던 때였습니다. ‘이젠 우린 뭘 해먹고 살지?’ 이런 걱정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앞이 보이질 않는 것이죠. 딸의 이런 처지를 본 어머니는 어땠을까요? 딸의 처지가 얼마나 불쌍해보였겠습니까? 그리고 지금까진 마음 좋은 사위가 열심히 일한 덕에 그럭저럭 먹고 살았는데, 그런 사위가 예수를 따라다닌다고 집안 살림을 팽개쳐 버렸으니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이젠 여길 나가야 하나? 이럴 때는 입이라도 하나 덜어줘야지.. 오만 생각이 나질 않겠어요? 비록 풍요하진 않았어도 행복하고 화목하게 잘 살고 있던 자기 가정에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 평지풍파를 일으킨 예수. 베드로의 장모는 예수님이 참 미울 겁니다.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딸. 고생하는 딸을 보면서 울컥, 때로는 끼니가 떨어져서 배고플 때도 울컥, 예수 따라간다고 집나간 남편 기다리는 딸을 보면서도 울컥, 남자 없는 집에 누가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될 때도 울컥, 예수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장모의 열병을 ‘화병’으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때문에 화병이 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제 아는 후배 중에 하나가 저더러 갑자기 예수님이 원망스럽다고 하더군요. 이유를 들어보니 아내가 교회 일에 너무 열심이다 보니 자신과 가족들은 늘 뒷전이라는 것입니다. 평일에는 서로 바빠서 함께 식사할 시간도 없으니 주말이라도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토요일부터 아내는 교회에 가서 산다는 것이죠. 아내가 해주는 따뜻한 밥 한 번 먹어보는 게 소원이랍니다. 아내가 지어준 밥이 아니라도 주말에 가족들 모두 함께 다같이 식사라도 하고 싶은데 안 된다는 것이죠. 정말 화병이 생길 것 같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아내를 뺏어가 버려서 자긴 예수님을 좋아할 수가 없다고 그럽니다. 너도 같이 교회 다니지..라는 말이 턱밑까지 올라왔지만 그랬다간 원수질 것 같아서 참았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게 참 힘들다고 하네요. 우리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일이 화병이 날 정도로 이렇게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이죠.
화병인지, 말라리아 열병인지 아니면 장티푸스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병들어 누워 있는 베드로의 장모를 예수님은 치료해주십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우리 가정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은 우리 모든 생활의 기초가 됩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모든 일이 순조롭고 또 가정이 잘 되어야 내가 하는 일이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가정이 잘 못 되면 아무리 좋은 일, 훌륭한 일을 해도 신나지 않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도 가정이 평안해야 돈 번 보람이 있고, 또 돈을 제대로 쓸 일이 있는 것입니다.
가정을 돌보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신학자들은 가정을 작은 교회라고까지 합니다. 여러분 잠언에 보면 현숙한 여인에 대한 칭찬이 있습니다. 집안을 잘 돌모고 세우는 현숙한 여인은 그 값이 진주보다 더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준 부부를 사람이 나눌 수 없고, 이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서신서를 보면 ‘남편들아, 아내들아, 자녀들아 부모들아’ 라고 부르며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해 강조하며 가르칩니다. 교회에서 일꾼을 세울 때 일꾼의 기본적인 자격은 바로 남편의 도리를 잘하고, 가정을 잘 세우고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정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여러분, 베드로도 가정이 평안치 않은 채로 계속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면 어떠했겠습니까? 몸은 주님 곁에 있지만 늘 마음은 가족 걱정으로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으니 자신도 힘들고 그것이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가정에 우환이 있으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가정이 평안해야 제대로 집중해서 온전히 헌신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그런 사정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친히 베드로의 집에 가셔서 장모의 열병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을 잘 세우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을 평안케 하시고, 모든 걱정과 우환을 해결해주시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를 지날 때, 사흘이 지나도록 물을 얻지 못하다가 마라에 이르렀지만, 그곳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자 모세는 하나님께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물이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쓴물이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하나님의 별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바로 ‘여호와 라파’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여호와 라파’라는 이름에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이 담겨있습니다. 그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실 뿐 아니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자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지금 건강하다고 나는 어떤 질병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요즘 코로나19로 완전 난리입니다. 매일 5만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고, 현재까지 무려 13만명 이상이 이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런데 일부 정신 나간 젊은이들 중에 코로나19에 확진된 사람을 초대하여 파티를 여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린 안 걸릴 자신이 있다는 것이죠, 걸리더라도 우린 안 죽을 자신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합니다. 건강하게 우리 몸을 돌보는 것도 신앙적인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좋으면 병이 얼씬도 하지 않고, 어떤 병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병에 걸리는 것은 믿음이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치료하신다는 말은 우리가 병드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로 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아플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아픈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우리는 병들 수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병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병들지 않도록 평소에 건강을 잘 챙겨야 하고, 혹시 병들게 되면 병이 낫게 기도하고, 또 병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복음서 4권은 총 3,774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484개의 절이 육체적, 정신적 질병의 치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복음서에는 총 1,257개절의 대화체가 있는데 이 중 485개의 절(무려 38.5%)이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도 보았듯이 예수님이 하신 일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병을 치료해 주시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 사람이 되신 하나님, 여호와라파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라파의 약속을 예수님을 통해 이루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병들었을 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병든 분들이 제게 기도를 요청을 하면 전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귀한 자녀가 병들었습니다. 아픈 자녀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이 병에서 고쳐주옵소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과 의사를 붙여주시고, 이 병에 효과가 있는 약을 주시며, 온전한 치료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의사의 손에 주님의 치료의 손길을 더해주시고, 병을 치료하는 성령의 능력을 주옵소서. 또한 주님께서 직접 손대어주시고, 어루만져 주셔서 병마가 떠나가게 하시고, 온전히 치료하여 건강을 회복하여 주옵소서”
의사도 약도 그리고 여러 가지 치료의 방법도 다 하나님이 우리를 치료하는 도구가 되며, 여기에 하나님의 손길이 더해질 때 치료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플 때 주저 없이 먼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 제가 병들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 치료하여 주옵소서.
이제 예수님께서 치료하는 방법을 살펴봅시다. 주님은 베드로의 장모를 어떻게 고쳤습니까? 본문 15절을 보니 예수님께서 장모의 손을 만지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칠 때, 다가가셔서 그의 손을 만졌고(ηψατο: 헵사토)병이 나았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어루만지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손을 잡아주시기도 하고, 환부에 손을 대거나, 어떨 때는 안아주시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셨습니다. 주님의 손길이 닿은 환자들은 모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눌한 혀가 풀려 말을 했고, 맹인이 눈을 떴으며, 못 걷던 사람이 일어나 걸었습니다. 심지어 불치병이라 여겼던 나병환자도, 중풍병자도 나았습니다. 육신의 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길에 마음의 상처도 영혼의 상처도 치료받았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중에 ‘주님과 같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은 ‘There is none like You’입니다. 같이 한 번 불러볼까요?
“주님과 같이 /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 내겐 주밖에 없네 /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 주 손길 치료하네 / 고통 받는 자녀 부르시니/ 주밖에 없네”
여러분 주님의 손은 치유의 손입니다. 우리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주님께로부터 옵니다. 주님께서 손을 대는 순간, 터치하는 순간, 치유의 역사 일어납니다. 저는 오늘 이 예배시간에 주님께서는 그 치유의 손길로 여러분을 만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한 부분, 병든 곳에 손을 대어 만져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상처 난 마음, 상한 영혼을 만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손을 만지는 것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전하고 위로와 공감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랑의 손길을 나타냅니다.
둘째는 능력의 전달을 나타냅니다.
셋째는 병을 짊어짐 즉 전가됨을 나타냅니다. 예전에 다모라는 드라마에 남자 주인공이 칼에 맞아 아파하는 여인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차라리 너의 아픔을 내가 가져가서 내가 대신 아픈 것이 좋겠다. 너의 아픔을 내가 가져가마. 그런 의미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장모의 손을 잡았습니다. 앞서 홧병을 이야기했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장모는 장티푸스나 말라리아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한이 나고 심한 열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받는 병입니다. 자칫 전염될 수도 있는 병입니다. 그런 그녀의 손을 주님이 잡아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여인의 질병을 대신 짊어지겠다는 행동입니다. 네 아픔을 내가 대신 지겠다.
마지막으로 치료가 된 장모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우리는 병 낫기를 위해서는 아주 많이 애쓰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병 낫고 난 뒤에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병이 낫고 난 뒤에 다시 예전에 병이 들게 되었던 행동을 그대로 행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재발하고 아파하고 후회하고.. 그러다보니 정말 죽을힘을 다해 벌어놓은 재산 병원에 다 갖다 바치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게 되지 않습니까?
오스카 와일드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가가 지은 "지옥의 단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술집 앞에서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술주정뱅이를 만나 깜짝 놀라시며 물으셨습니다. "네가 절름발이였을 때 내가 고쳐 주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은 날카로웠습니다. "주님이 내 다리는 고쳐 주셔서 걸어 다녔지만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직장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돈은 없는데 다리가 멀쩡해서 구걸할 수도 없었습니다.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홧김에 술을 계속 먹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알콜 중독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거리를 방황하는 창녀를 만났습니다. 가만히 보니 알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간음 현장에서 잡혔다가 예수님의 도움으로 구출된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당황하시며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다시 창녀가 되었느냐?"그녀가 대답합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저를 그때 구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나를 더럽다고 외면했습니다. 아무도 저를 사람으로 취급해 주지 않았습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 다시 창녀가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또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저작거리에서 깡패가 사람을 때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또 놀라십니다. 그 예수님을 본 깡패가 "예수님! 저는 본래 앞 못 보는 소경이었는데, 예수님께서 고쳐 주셨지요. 그런데 보면 무엇합니까? 온 세상이 다 썩은걸요. 그래서 화풀이로 닥치는 대로 부수고 때리고 살아갑니다. 저는 제 인생을 부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치료받은 병자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저 은혜를 받은 것으로 그치면 저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다시 자신의 인생을 망칠 뿐입니다. 은혜가 은혜 되게 하는 것은 먼저 감사하는 것입니다. 내 병을 고쳐주신 하나님, 내 인생을 고쳐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보답하는 것은 바로 주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병에서 회복되자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아마 쉴 수 있도록 방을 정리하고, 또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제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환경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편히 쉴 수 있도록 섬겼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건강에서 회복되자 예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모든 하나님의 선물을 써야 하는 방법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섬긴 일은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그런 큰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껏 예수님의 일을 도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을 섬기다 보니 그녀도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한 사람이 되었고, 예수님의 동역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나도 한 수 거들었다.. 이것만큼 자신을 훌륭하게 하는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
by 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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