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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8:23] 바다와 풍랑도 순종하다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0. 8. 8.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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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풍랑도 순종하다
본문 : 마태복음 8장 23-27
2020. 8.2.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자 : 박동진 목사

 

어느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목사님,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지금 제가 절실하게 깨닫는 것은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잘 준비되고 완벽하게 준비되어 졌는데 그것이 안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결정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인생의 골목에 섰는데 거기서 반전이 일어나 예기치 않은 축복을 누릴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사건이 손바닥 뒤집히듯 너무나도 쉽게 역전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1.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지난주에 예수님은 아버지 장례 핑계를 대며 예수님을 떠나가려는 제자에게 잔말 말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자 배에 올랐고,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배에 올랐습니다. 주님이 가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우리는 따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건너고자 하는 갈릴리 호수는 크기가 엄청 큽니다. 너무 커서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둘레가 약 53km 이고, 남북으로 21㎞, 동서로 11㎞이며 면적은 대략 166km², 평균 수심은 26미터입니다. 또한 갈릴리 호수는 바다보다 약 209m가량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지리적 특성 상 종종 광풍이 몰아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탄 배에는 최소 4명의 실력 있는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입니다. 밤이지만 배는 순조롭게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어옵니다. 오랜 어부의 직감으로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낍니다. 불길한 예감은 참 잘 들어맞습니다. 순식간에 광풍이 몰아치면서 제자들이 탄 배는 일엽편주처럼 애처롭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경험이 풍부한 실력 있는 어부들이었지만 이런 풍랑에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동안 갈고 닦았던 그 능력과 경력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살다보면 그런 순간이 옵니다. 대단할 줄 알았던 내 능력이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구나. 이제 꼼짝 없이 죽었구나. 제자들은 완전 패닉 상태에 빠져 어떻게 할 줄을 모릅니다.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 앞에 그저 두려움에 질려 있을 뿐입니다. 


살다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당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은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 떠있는 배와 같습니다. 그래서 삶은 계속 흔들리게 되어있습니다. 별일이 다 일어납니다. 안정될 만하면 또 다른 일이 일어납니다. 살만해지면 또 다시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것이 세상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세상이 아닙니다. 세상은 늘 요동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모두 흔들리고 있습니다. 안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견고해보여도 그것 또한 흔들릴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흔들리고 있습니까? 인생이 요동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인생이 요동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십니까?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시련에 부딪힐 때마다, 고난 한 가운데 서 있을 때 마다, 왜 내가 이 어려움을 당해야 하는가? 그러다가 왜 나만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 엄청나게 억울하다고 느끼고, 세상이 참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배에 누가 타고 있습니까? 주님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자고 먼저 배에 올랐고 제자들은 따랐습니다. 주님이 가는 길을 제자들이 따랐는데 갑작스레 광풍이 몰아칩니다.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꼼짝없이 죽게 생겼습니다. 여러분, 여기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왔는데, 그리고 예수님이 곁에 계신데 왜 이런 난리가 났는가? 이해가 되시나요?  

 

메리큐스 마네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은 사업에 부도를 내고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말았습니다. 살림을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 길거리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어린 아들 하나가 문방구에서 연필 하나를 훔치다 들켰습니다.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깨끗이 죽자!’ 이런 생각으로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고 가스를 켰습니다. 정신이 몽롱해져 옵니다. 그런데 이웃집에서 찬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면 근심에 쌓인 날 돌아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찬송을 들으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 내가 죽을 생각을 하면서 왜 기도할 생각은 못했을까?’ 황급히 아이들을 깨워서 밖으로 내보내고 가스를 잠궜습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울부짖듯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냈습니다. 시골에 내려가 빈 집 하나를 얻어 새 삶을 꾸리기 시작합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시골에서 아이들도 훌륭하게 잘 자라고 모두 멋지게 성공을 합니다. 그런 자신의 삶을 간증한 책이 "근심이여 안녕"입니다. 그는 이 책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죽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들이여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용기로 바꾸어 보십시오! 백 번의 탄식보다 한 번의 기도가 당신에게 기적을 가져다 줄 것이요. 백 번의 절망보다 한 번의 믿음이 당신의 운명을 바꾸어 줄 것입니다."

 

제자들은 드디어 주님을 찾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 어떻게 하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다 썼죠. 그럴 때는 주님이 안 보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배를 탔다는 생각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죠. 또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인들 별 수 있겠나? 그런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가르치는 샌님이고 또 목수지 뱃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들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뱃사람 아닙니까? 여기선 우리가 예수님을 돌봐야지 예수님의 도움을 받을 상황이 아니다, 그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젠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더 이상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예수님을 찾습니다. 주님이 어디계시지? 좀 빨리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늦게라도 찾으니 다행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빨리 찾을수록 좋지만 늦었다고 생각될 때, 이젠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도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2. 주무시는 예수님

 

그렇게 예수님을 찾았더니 예수님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태평하게 배 한쪽에서 주무시고 있습니다. 그 배가 그리 큰 배는 아닐 겁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예수님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안 보인 것이죠. 그리고 이제 찾았는데 그 예수님은 이런 난리 중에 배안에서 태평하게 잠자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 배안에서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까? 

저는 이 모습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나는 주무시고 계셨구나. 예수님이 잠들어 있었구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 채 천하태평으로 잠들어 있었구나.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화가 나죠. 배신감이 듭니다.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
또 하나는 어떻게 이런 난리 속에서 잠을 잘 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 나도 좀 본받고 싶다. 나도 좀 이렇게 살고 싶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제자들은 주님을 깨웁니다. 그리고는 외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여러분 가위에 눌려보신 적 있습니까? 저도 한 서너 번 그래본 것 같습니다. 꿈  속에서 마귀가 내 목을 짓누르는데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불러서 쫓아내 버려야지. 그런데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몸도 입도 다 얼어붙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죽을힘을 다해 한 마디 했습니다. 예수님 도와주세요. 그랬더니 갑자기 숨이 쉬어지고 마귀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저와 같이 잠을 자던 동생이 저보고 그럽니다. “행님 자다가도 예수님을 찾데..”

 

예수께서 잠에서 깨셨습니다. 상황을 보니 난립니다.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을 꾸짖습니다.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여기에 나오는 ‘무서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δειλοι(데이로이)’입니다. 이 단어는 어떤 내적인 결함으로 무서워할 때 쓰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용기가 부족해서 무서워하거나, 믿음이 부족해서 두려움을 느낄 때 성경은 ‘δειλοι’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왜 이런 난리가 났다고 묻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난리 속에서 왜 그리 두려워하느냐? 이걸 먼저 꾸짖으시는 것입니다. 배가 물결에 덮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이 작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왕기하 6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와 사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아람나라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기 전에 이스라엘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를 먼저 죽일 계획을 세웁니다. 왜냐하면 엘리사 선지자가 아람나라 군대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다 알려서 아람 나라가 이스라엘을 침공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난 아람나라 왕은 엘리사가 있는 도단성에 밤에 군대를 보내어 그 성을 에워싸게 했습니다. 엘리사의 사환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까 아람나라 군대가 도단 성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그는 엘리사에게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삼하6:16)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삼하 6:17)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자,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 선지자를 둘러 서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나라 군대를 보고 왜 놀랐을까요?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풍랑이 몰아쳐도 무서워하지 않는 믿음이란 어떤 것이겠습니까? 바로 주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능력에 대한 인정..이런 것이 적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한계에 갇혀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고, 그들의 한계 안에 주님의 능력을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한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바람을 멎게 한다든가, 바다를 잔잔하게 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파손이나 면하고 목숨이나 구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방법은 제자들의 생각과는 전연 달랐습니다. 주님은 바람을 멎게 했습니다. 파도를 잠재우신 것입니다. 주님은 상황을 변화시키셨습니다. 상황을 변화 시킨다는 것은 상황에 도전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메리 앤 베이커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큰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했는데, 같은 병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이 차례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도 똑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이 여인은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왜 우리 가정을 돌보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을 믿고 헌신하며 살았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그 때 성령님께서 오늘 본문 말씀을 읽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우자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고 풍랑이 아주 잔잔해졌다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베이커 여사는 “아! 그렇구나, 예수님이 주무시는 것 같아도 아니구나, 그 분이 일어나셔서 잔잔하라고 하시면, 세상의 어떤 파도도 잔잔해지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찬송시를 써 내려 갔습니다. 그 찬송시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371장, 《구주여 광풍이 불어》입니다.


“큰 바람과 물결아 잔잔해 잔잔해 사납게 뛰노는 파도나 저 흉악한 마귀나 아무것도 주 편안히 잠들어 누신 배 뒤엎어놀 능력이 없도다.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해 잔잔해 주 예수 풍파를 꾸짖어 잔잔하라”

 

이 말씀을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주무시는데 거센 파도와 풍랑이 일어납니다. 배가 뒤집힐 것 같습니다. 그 때 제가 그 폭풍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조용히 좀 해라 예수님 주무신다. 니들 자꾸 그러면 예수님께 혼난다.” 그러면 그 때까지 신나게 까불던 녀석들이 조용해지는 것이죠. 이런 믿음으로 살고 싶습니다.(*)
 
by코이네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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