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설교

[마8:28] 귀신들도 순종하다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0. 8. 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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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린 사람을 만난 예수님 

본문 : 마태복음 828-34

2020.8.9. 소토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설교 : 박동진 목사

 

 

유명한 부흥사 무디가 무심코 길을 가다 가까운 어느 교회 지붕 위를 쳐다보니 이상하게 생긴 귀신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떠들고 있었습니다. 이상해서 그 교회 안에 들어가 살펴보니 교회 안에는 썰렁하고 텅텅 비어있고 먼지가 가득한게 정말 귀신이 나올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그 곳을 지나갈 기회가 있어 지나가며 교회지붕을 바라보았는데 이번에는 귀신들이 괴로워하며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궁금하여 다시 교회에 들어가 보니

몇 사람의 성도들이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한참 후에 다시 그리로 지나가다 그 교회 지붕 위를 보니 이번에는 귀신들이 새까맣게 타 죽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 안을 들어가 보니 교인들이 가득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가다라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가다라 지방은 갈릴리 호수에서 약 10km정도 남쪽에 위치해 있는 곳으로 고산지대에 있는 아주 큰 마을입니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무덤들이 많이 있고, 이 무덤들 사이에서 귀신 들린 두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사나왔고, 그래서 그 길로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그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1. 귀신이 들린 사람

여러분은 귀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귀신이 있을까요? 어떤 분은 있다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영적인 민족입니다. 귀신을 부르는 명칭이 무려 273종류나 된다고 합니다. 산에 가면 산신령, 강에 가면 강신령, 바다에 가면 용신이 있고, 우물에는 대동정신, 집을 지키는 성주신, 동자귀신, 몽달귀신, 처녀귀신, 심지어 계란귀신도 있습니다. 진짜 별의별 귀신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귀신들의 특징은 한이 많고,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듯 무섭습니다.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성경에는 귀신이 분명히 있다고 말합니다. 귀신은 이런 존재라고 딱 규정하고 있는 부분은 없고, 귀신에 대해 성경 여러 곳에서 그 특징을 조금씩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흩어져 있는 귀신의 정보를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이며, 천사들이었다. 하지만 집단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난 자들이다.

둘째, 이들 세계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그래서 대장격인 귀신들을 마귀 또는 사단이라고 하고, 그 아랫것들을 흔히 귀신이라고 한다.

셋째, 이들의 특징은 거짓말을 잘하고, 자신을 마치 광명의 천사인양 위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사람들을 유혹하여 시험에 빠지게 하고, 마침내 사람들을 파멸하게 한다.

넷째, 이들은 종말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그 심판 터로 무저갱이 준비되어 있다.

다섯째, 이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제 멋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이며, 때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귀신의 대장이라 할 수 있는 마귀는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소자(12:10), 시험하는 자(4:3), 악한 자(6:16), 바알세불(12:27), 벨리알(고후 6:15), 악귀의 머리(3:22), 이 세상의 왕(14:30), 공중의 권세 잡은 자(2:2), 어두움의 권세자(6:12), (12:3), 옛 뱀(12:9) 등등입니다.

 

마귀와 귀신들은 어떻게 하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미치려고 노력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귀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우리 곁에 다가와서 우리의 마음을 부추깁니다. 우리의 마음을 교만하게 하고, 때로는 절망하게 하고, 욕심을 부리게 하고, 자신을 과신하게 합니다. 욕망을 부추기고 돈이 좋다며 돈의 노예가 되도록 합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게 하고 하나님 곁을 떠나게 부추깁니다. 사도 바울은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성도들을 위협하고 또 시험에 들게 하려고 하니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그래서 귀신이 가까이서 우리를 부추길 때는 쫓아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단아 물러가라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자꾸 귀신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슬슬 우리 속으로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잡아먹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인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 고유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함부로 빼앗거나 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도 이를 존중합니다. 함부로 뺏거나 억지로 하지 않고 존중합니다. 마귀가 아무리 힘이 세도 우리와 똑같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니 잠자고 있는데 마귀가 쓰윽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을 뺏어버리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신들릴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귀신들릴까? 세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첫째는 허락을 받는 것입니다. 대부분 무당들이 이런 식으로 신들림을 받게 되고 무당이 됩니다. 내가 들어가도 되겠는가? 그럴 때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와서 우리 마음을 분탕질 치고, 제 정신이 아니게 하고 마침내 마음을 뺏어버려서 주인 노릇을 합니다.

둘째는 협박해서 강탈하는 것입니다. 허락을 구하다가 안 되면 협박합니다. 무병이 들리게 하고 별의별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게 해서 마침내 그 사람을 굴복시키고 억지로 허락을 받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셋째는 훔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제정신이 아닐 때 슬그머니 들어와서 주인 행세를 합니다. 그래서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귀신들림의 현상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늘 예수님이 만난 귀신들린 사람도 세 번째와 같은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귀신이 사람의 마음을 훔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두려움을 심하게 심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을 못자게 만듭니다. 사람이 잠을 못자게 되면 이성을 잃게 되고, 환각과 환청을 보게 되고 정신줄을 놓아버리게 됩니다. 이럴 때는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재워야 합니다. 며칠을 잘 자고 나서 정신이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이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완전히 잠식하여 우리 마음과 인격의 주인이 되어 버린 상태를 귀신들렸다고 합니다. 귀신들게 되면 어떨 때는 잠시 제 정신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귀신이 하라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귀신의 꼭두각시가 되며, 마귀짓을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 이 귀신들린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무덤사이에 살고 있었습니다. 귀신도 귀신이 살기 좋은 환경이 있는 모양입니다. 흔히 우리가 귀신 나올 것 같다고 하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으스스하고, 불결하고, 지저분하고, 메케하면서 기분이 나쁜 곳, 뭔가 죽음과 가까운 그런 곳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환경을 청결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쓰레기방이라고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습니다. 여러 이유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방을 치우지 않고 쓰레기를 계속 쌓아두다가 방 안에 쓰레기가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게 되고 삶을 포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와서 그 집을 깨끗하게 청소해주었더니 다시 삶의 의욕을 갖게 되었다는 방송이었습니다. 우리 사는 곳이 귀신 나올 것 같은 환경을 만들면 귀신이 좋아합니다. 반대로 성령이 계시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성령충만해집니다. 그리고 귀신들린 사람들은 굉장히 사나왔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은 사람을 흉폭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소외당하게 합니다. 괴성을 지르면서 사람들을 위협하지만 또한 말을 합니다. 인격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예수님께 나아와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애원합니다. 영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돼지 떼에 들어가서 돼지떼를 죽여 버립니다. 그들의 마지막은 이렇게 멸망하는 것입니다.

 

2.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는 예수님

 

이렇게 귀신 들린 두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쫓아낼 게 뻔한데도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피해 깊이 숨어야 할텐데 왜 벌벌 떨면서 예수님 앞에 자수하듯 나아왔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은 귀신 들린 두 사람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이 길로 일부러 왔고, 이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굳이 이 사람들을 찾아서 만났을까요? 이렇게 귀신들린 사람들도 하나님이 치료하길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귀신들려 인간답지 못하고 마귀짓하는 이 사람들도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치료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고 그 무엇으로도 제압할 수 없었던 이 귀신 들린 사람을 예수님은 다스리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 앞에 벌벌 떨며 애원합니다. 이런 귀신들도 다스리는 분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 된 우리도 예수님의 권능으로 마귀를 물리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귀신들린 사람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는데 정신이 멀쩡한 사람들은 왜 이 사실을 알지 못할까? 영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며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영적으로 무지한 육적인 인생을 살 뿐 이었고, 예수님은 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통해 영적으로 무지한 우리 자신을 깨달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3. 돼지 떼

 

예수님께 불려 나온 귀신들은 예수님께 항변합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귀신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은혜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을 목빼고 기다려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생각에는 아직 그런 심판의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아직 때가 안 되었는데 이렇게 오신 것은 반칙 아니냐고 항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웃기지 않습니까? 심판의 때를 누가 정합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죠. 마귀가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협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심판의 때를 하나님과 마귀가 협치해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마귀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맘이죠. 귀신 생각에는 아직 때가 아닌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합니다. 우린 귀신이면 다 알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용한 점쟁이 찾아가서 자신의 운명을 점쳐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셔야 합니다. 귀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며,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이 준비한 때입니다.

귀신은 귀신의 때만 압니다. 귀신이 계획해서 귀신이 이루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귀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귀신은 도적이고, 도적이 오는 것은 빼앗고 죽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무언가 때를 준비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준비한 기회인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에게 점치러 가는 사람들은 정말 멍청한 짓을 하는 것입니다. 귀신들에게 찾아가서 비싼 복비 대가며 절 언제 망하게 하실 건가요? 그렇게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단호한 태도에 그들은 이제 쫓겨나서 심판받을 처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애원합니다. 저기 돼지떼들에게 들어가게 하옵소서.. 그냥 쿨하게 나가면 될 것이지 왜 하필이면 돼지떼에게 들어가길 원했을까요?

 

돼지는 본디 물가나 습한 곳에 사는 동물입니다. 땀구멍이 적고 털이 적어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가끔 진흙에 뒹굴어 몸의 열기를 다스려야 하기에 돼지가 더러운 짐승으로 여겨진 것은 그 때문입니다. 유목민들이 주로 키우는 것은 소, 낙타, , 염소 등으로 모두 섬유소가 많이 포함된 식물을 먹고 사는 반추동물들입니다. 다른 반추동물들은 고기와 젖 그리고 가죽을 제공하지만 돼지는 그렇지도 못합니다. 돼지는 또 무리지어 이동하는 동물도 아니기에 원거리 이동에 부적합하기에 돼지 사육은 여러 모로 지역의 형편에 맞지 않았습니다. 또한 돼지를 키우려면 사람이 먹는 곡물도 먹어야 합니다. 사람과 먹을거리가 겹치기 때문에 당시에 곡식이 넉넉지 않는 상황에서 돼지를 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부정하다고 하여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이 지역에서 돼지를 치던가 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누가 이 돼지고기를 키우고 먹을까요? 바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힘 있고 재력 있는 이방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부정한 동물 그리고 탐욕스런 사람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 .. 이렇게 본다면 돼지는 귀신이 좋아하는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귀신들은 이 순간까지도 주님의 사역을 방해할 계획을 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재력가들 이 권력자들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돼지떼들은 몰살당하였고, 그들을 키우던 이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도 배척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마귀의 계획대로 된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한 동물, 그래서 사육해서는 안 되는 돼지떼들은 몰살당하였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돼지떼를 키운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였고, 무엇보다 귀신들려 고생하던 두 사람이 치료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귀신이 떠나자 그들은 정신이 온전해졌고, 귀신들에게 빼앗겼던 인생을 다시 찾았습니다.

 

4. 복을 걷어찬 사람들

 

자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제목을 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의 명령에 귀신도 떠나갔다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제목입니다.

귀신 들린 사람 드디어 새 인생을 찾았다

치료되어진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 것이죠.

갑자기 강으로 뛰어들어 몰살당한 수천마리의 돼지 떼

몰살당한 돼지 떼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여러 제목을 달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돼지 떼에 집중합니다. 그만큼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몰살당한 돼지 떼에 집중하고, 그것이 너무 아까운 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보지 못합니다. 그저 돈.. 돈이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찾아오신 예수님도,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도 거절해 버리고 맙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찾아온 복을 걷어차 버리는 우매한 짓을 서슴지 않습니다. 복 달라고 그렇게 외치면서도 복이 굴러오니 그 복을 차버리는 어리석은 사람들, 혹 지금 우리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께서 우리들을 복있는 자의 길로 이끌어주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by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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