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과거를 이해하시는 주님
(요20:19-23)
박동진 목사
1. 어떤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살아갈 때 좀 더 밝은 미래를 펼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특히 과거의 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큰 장애가 됩니다. 과거에 지은 우리의 죄는 우리의 양심을 건드리고, 우리는 이 때문에 죄책감에 빠집니다. 마귀는 곁에서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런 죄를 지은 네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회개해보지만 그 때 뿐, 또 좀 지나고 나면 다시 반복됩니다. 분명히 회개했는데 왜 나는 이 과거의 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아갈까요?
“하나님이 나의 과거를 온전히 용서하셨을까?”
“내가 이전에 범죄 하여 다른 사람을 해한 일, 거짓증거한 일, 간음한 일, 도적질한 일들을 과연 용서하셨을까?”
“내가 모르게 지은 죄, 내가 미처 회개치 못한 죄를 용서하셨을까?”
이것은 근본적으로 믿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은 배반한 제자들을 어떻게 대했습니까?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무리들에게 잡혀갈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그 중 베드로는 내가 죽더라도 끝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대제사장의 집에서 그 하인들의 추궁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욕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죄책감에 자살했지만 유다만 배신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제자들이 배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제자들은 희망을 잃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낸 사람들이나 또 예수님의 시신을 돌보려는 사람들은 열두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하신 후 이런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요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3.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평안의 인사를 합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 제자들에게 왜 배신했냐며 추궁하지도 않고, 섭섭했다고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지도 않습니다. 이미 너희들이 다 그럴 줄 알고 있었고, 너희들이 그렇게 나를 배신한 것을 나는 다 용서했으며, 너희가 행한 모든 섭섭한 일을 나는 다 잊었다는 듯 행동합니다.
도리어 제자들이 앞으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의 믿음을 북돋아 줬습니다. 도마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만지게 하여 믿는 자가 되라 하였고, 엠마오 마을로 가는 두 제자에게는 복음을 풀어 설명하셨으며, 베드로에게는 네 양떼를 먹이라며 사명을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저지른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잊고 이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기에 우리의 과거를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4.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다는 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시각을 바꾸셨다는 말입니다. 단순히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가 요청하면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부모처럼 적극적으로 찾아오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은 이해하고 또 용납하고, 변함없이 사랑해주십니다.
아버지의 마음에 대못을 박고 떠난 탕자가 거지꼴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때 탕자가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눅15:17~20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 분인지 그리고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풍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는 나를 종으로라도 맞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갔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집나간 아들을 걱정해서 매일 동구 밖에서 아들이 행여 돌아올까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는 아버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죽었다 살아난 아들로 여기며 다시 아들로 살아가도록 모든 것을 회복시켜줍니다.
6. 돌아온 아들을 맞이한 아버지께 아들의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시 돌아온 그 아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모두 치유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에서 놓여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가 심하게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의 과거를 자책한다고 우리의 과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도리어 마귀의 유혹과 마수에 빠져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더러 모든 죄가 용서되었고, 너는 더 이상 심판받을 죄인이 아니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벌받을 죄인이지 자신의 죄를 심판하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계속 과거를 끌어안고 자신을 수렁으로 가려는 것은 도리어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 말해보세요.
“내 분수를 지키자. 난 심판자가 아니다.”
그리고 성령을 의지합시다. 성령께서 내 마음을 다스리고 성령께서 나를 새롭게 하시도록 맡기면 성령께서 죄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인생을 살도록 해주십니다.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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