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세리 삭개오의 변화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2. 8. 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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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 삭개오의 변화

읽을말씀 : 19:1-10

외울말씀 :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 

 

 

 

 

 

1. 세리장 삭개오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세금을 거두는 세리을 관리하는 세리장이었습니다.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권력을 등에 입고 같은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무 과하게 세금을 거두어 매국노 취급을 받았으며, 그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에게 착취한 돈으로 그들은 부유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세리들을 관장하는 세리장인 삭개오 역시 돈이 많은 부자였습니다.

 

부자였지만 삭개오는 스스로 풀 수 없는 인생의 문제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를 사람 취급하지 않으며, 또 그와 어울리지 않으니 그는 소외된 채 살았습니다.

거기다 로마정부를 등에 업고 로마의 개로 살았기 때문에 백성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인이라는 질책을 받고 삽니다.

이로 인한 죄책감도 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일을 그만두지 않았고, 돈을 위해 계속해서 악한 짓을 계속하며 살았습니다. 해서는 안되는 짓인줄 알면서 안 할 수 없는 그런 자신의 모습에 어쩌며 자기 혐오에 빠져 살고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키가 작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더 의기소침해졌고 그래서 사람들과 더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작은 키 콤플렉스를 갖고 있을 수도 있고, 작은 키로 인한 열등감도 꽤 있었을 것입니다.

 

2. 예수를 만나다

 

이런 삭개오에게 인생의 전환점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삭개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사는 마을에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것이죠. 아마 삭개오는 평소에 예수님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을 들어 예수님에 대한 호감을 크게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예수님이 지나는 길에 있는 뽕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긴 분인지 보고자 하였습니다.

 

본문 3절에 보니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라고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 호기심이 많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예수님을 만날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다 아는 세리장이었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갈 수가 없었고, 또 이런 죄인을 예수님께서 만나주실지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죠. 그리고 그 근처로 간다해도 그는 키가 작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때문에 나온 한 가지 해결책이 바로 뽕나무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장쯤 되면 삭개오의 나이가 적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겐 손가락질 받는 죄인이지만 그래도 그 지역의 유지이고, 나름 체면이 있는 신분입니다. 그런 사람이 낑낑대면서 뽕나무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걸 누가 봤다면 사람들은 삭개오가 뽕나무로 올라간다며 손가락질하고 또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삭개오는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그만큼 갈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저 높은 나무에서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기만 하려고 했는데 예수님이 그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아셨는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삭개오야 속히 내려 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삭개오는 놀라서 내려왔고 많은 사람들은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립니다.

 

3. 수군거림

 

이 장면에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수군거림입니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참 쉽게 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모욕을 줍니다. 욕을 합니다. 이런 수군거림은 당사자에게 큰 상처를 안겨줍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막말을 합니다. 도를 넘은 비난을 가하지만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감도 갖지 않습니다. 희안한 건 또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후벼 파서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말을 잘 합니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상처를 받고 나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등 안타까운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런 수군거림에서 치유 받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부터 그런 수군거림을 하지 않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에 죄인들의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8~31)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수군거리며 남을 비방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다스려 주셔서 이런 수군거리고자 할 때 “STOP" 이라고 외치며 난 수군거리는 자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수군거리는 자리에 있을 때 그들을 향해 남의 뒷담화하지 말고 그를 이해해보자. 그리고 도와주자.“ 그런 식으로 분위기를 반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참 재밌는 사람입니다.

그가 하는 일이 세리짓이었기 때문이어서인지 뒤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삭개오야 원래 욕먹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한다 쳐도, 존경받아 마땅한 예수님을 두고 사람들이 뒤에서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며 예수님을 삭개오와 같은 죄인과 한통속인양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말 들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습니다.

 

이런 태도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담아두느냐? 삭개오나 예수님처럼 뒤에서 수군거리며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게 여기고, 중요한 것은 중요하게 마음에 담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마음을 강하게 하는 훈련입니다.

 

성령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정리를 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소멸하는 불입니다. 소멸하는 불로 제 마음을 정화해주옵소서. 마음에 담지 않아야 할 것들은 모두 불태워 소멸시켜주셔서 제 마음에 찌꺼기도 남아있지 않게 하소서. 기억도 나지 않게 하소서.”

 

4.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

 

최근 한 커뮤니티에 로또보다 더 큰 행운을 만났다며 한 장의 사진을 올렸는데, 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휴가지에서 우연히 문 대통령 일행과 만나게 되어 아는 채 했더니 반갑다며 사진도 함께 찍어주셔서 가문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 사진과 글을 본 사람들은 모두 너무 부럽다며, 정말 로또보다 더한 행운이라고 댓글을 남겼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무엇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그것도 잠시 만남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집에 모셔서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은 정말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삭개오는 너무 감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이 말은 앞으로 양심있는 세리가 되겠다는 선언입니다. 먼저 이전에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갚기 위해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줄 것이며, 앞으로 또 세리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면 네 배를 갚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율법에 고의로 남의 것을 속이면 그 벌이 네 배를 갚는 것인데, 이렇게 율법을 준수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새 삶을 살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선언합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들은 삭개오와 같은 세리는 절대 용서받지 못하는 죄인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그런 삭개오가 구원받은 사람이 되었으며,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거듭났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의 이 말씀에 삭개오는 두 가지 큰 은혜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보도 죄인이라며 손가락질했는데, 이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고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려 예수님입니다.

 

5. 달라진 삭개오

 

예수님은 변화된 삭개오를 두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잃어버렸던 자를 다시 찾으니 그에겐 엄청난 인생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생각이 달라졌고, 삶의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잘 못 된 것이 무엇인지 알았고, 그것을 고치고자 예수님 앞에서 양심선언을 했으며, 새 사람으로 살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새 인생을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하겠다고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생활로 그렇게 하겠다고 예수님 앞에서 약속합니다.

이후 삭개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이 삭개오에게 성령이 임하시며, 성령께서 그가 약속한 것처럼 삶을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by 박동진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