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삶의 활력을 찾은 사람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2. 9. 7. 19:57
>

삶의 활력을 찾은 사람

읽을 말씀 : 4:39-42

외울 말씀 :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던 중 사마리아를 지나게 되었는데 수가성 야곱의 우물에 이르러 목도 마르고 피곤하여 그곳에서 좀 쉬기로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고, 그때 그 동네에 사는 한 여인이 물을 기르기 위해 그곳에 왔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1. 여인에게 말을 걸다

 

예수님께서 한 여인이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을 때 그녀에게 부탁을 합니다. “물 좀 주세요.” 그리고 그 여인과 대화가 이어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생수라는 말에 호감을 가진 여인은 자신에게 그 물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네 남편을 데려오라.” 당시 풍습에 여인이 뭔가를 결정해야 할 때는 보호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 결혼한 후는 남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남편을 데려오라 한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은 남편 없이 살아가는 불쌍한 과부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녀의 말에 예수님은 놀라운 사실을 말합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예수님은 여자로선 가장 아픈 상처를 들춰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이 다른 사람들은 다 집에 있는 한 낮에 우물을 찾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 여인은 창녀가 아닙니다. 다섯 번 결혼한 비운의 여인입니다. 아마 아주 아름다웠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그런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혼을 당한 후에도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될 수 있었지만 뭔가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이런 처지라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다녔고, 사람 접촉을 피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이런 처지를 예수님 앞에서 부인하지 않고 시인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녀의 과거를 들추고 상처를 건드린 것은 상처를 주고 아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무거운 과거를 청산해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날 예수님을 만나 다섯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러면 일생 어두운 그늘에 묻혀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2. 저는 예배자입니다

 

이 여인에게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또한 자신에게 생명수를 주겠다는 말씀을 통해 당신은 선지자라고 말하며, 대뜸 어디서 예배하는 것이 옳으냐고 묻습니다. 아주 불운하고 불행한 처지를 살아가는 여인이지만 이 여인의 최우선적인 관심은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자신은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자가 되고 싶다는 갈망을 나타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합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4:23-24)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사람, 이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이며, 이런 예배자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여인은 예수님께서 바로 자신의 인생을 구원하는 구원자임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3. 보라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여인은 자신이 이고 온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갑니다. 물동이는 생활수단의 하나입니다. 물동이가 없으면 물을 길어다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것을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여인은 새로이 태어났습니다.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물동이는 그의 지나간 과거였고 어두운 삶의 상징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버려야 할 것과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이 있습니다. 소중한 것, 귀한 것, 가치 있는 것은 버려서는 않됩니다. 그러나 해로운 것, 유익하지 않은 것, 나쁜 것들은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녀는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녀의 외침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녀가 부정한 여인이었다면 동네 사람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불행하고 참 가련한 여인이지만 지금 환희에 차서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어떨까 상상해보기 바랍니다.

 

4. 삶의 활력을 되찾은 여인

 

예수님을 만날 때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천국의 기쁨을 소유하게 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평강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4:39)

 

이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4:42)

 

평소 그녀를 아는 동네 사람들이 그녀의 변화된 태도와 용기 때문에 그리고 그녀가 소개하고 전파하는 그 확신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녀 때문에 사마리아 동네에 예수의 소문이 퍼졌습니다. 자랑할 것도 없고, 내 놓을 것도 없는 한 여인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상황을 복기해봅시다.

 

주님은 수가성의 우물에서 한 여인을 만나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과 대화를 하였고, 그 여인은 예수님이 성경에서 예언한 메시아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사람을 피해 다니던 여인이 달라집니다. 그녀는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내가 구원자를 만났다. 그녀의 간증으로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런 후 동네사람들이 이제는 그 여인에 말을 겁니다. 예수님을 통해 서로 등졌던 사람들이 소통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이 여인과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그 후의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 영적인 갈증을 해결했고, 예수님의 구원을 경험했으며, 예수님을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소개하였고, 사람들과 자신 있게 소통하였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도 그녀를 꺼려하지 않고 다가와 대화를 나눕니다.

 

생명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죽었던 것이 살아나는 생동감, 삶의 활력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여인과 또 예수를 만나 변화된 동네 사람들의 모습. 물론 그녀의 과거는 달라지지 않지만 그녀의 현재는 달라졌으며, 그렇게 더 멋진 미래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줍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자가 되게 하며,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살아가게 합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