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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 _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3. 2. 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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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스타일

읽을 말씀 : 살전 5:18

외울 말씀 :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감사는 보다 근본적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도리이듯 우릴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피조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도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므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바울 사도는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교하고 가르친 교회와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그는 정말 범사에 감사하며 살았을까요?

 

1. 예수를 만난 바울

 

바울의 삶을 살펴보면 감사보다는 불평과 원망이 더 많았을 법한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기 전 바울은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이 넘친 바울은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 당할 당시 그 배후에 바울이 있었으며, 심지어 외국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를 만난 바울은 변화되어 박해자에서 복음 전파자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죽음과 마주쳐야 하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수 믿게 된 며칠 후부터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광주리를 타고 도망하여야 했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은 곳곳에서 환영을 받기도 했지만 가는 곳마다 거의 매번 핍박을 받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유대인들이 성내의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핍박하여 그 지역에서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바울은 무리에게 돌로 맞고 거반 죽은 상태에서 짐짝처럼 성 밖으로 끌려나가는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은 매를 많이 맞고 옥에 갇히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이 당한 고난을 우리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을 고후11:23 - 27절에 다음과 같이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러한 바울의 환경은 불평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고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복음 전파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생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도무지 감사할 수 없는 극도의 상황에서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곳 보다 더 많은 박해도 받았습니다. 그는 그곳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많은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찬 상태에서 깊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이런 처지에서 바울은 박해하는 자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부릅니다.

또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다가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로 호송됩니다. 배를 타고 로마로 가는데 바다에서 폭풍우를 만나서 무려 14일 동안 먹지 못하고, 표류하였습니다. 죽을 고비을 넘긴 바울은 도리어 그 배에서 자신을 호송하던 관원들과 뱃사람들을 위로하며, 음식을 두고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바울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2. 감사의 비결

 

감사는 먼저 감사할 대상이 있어야 하고, 감사의 내용이 있어야 하며, 감사하는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 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면, 내게 은혜를 베풀거나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고, 심지어 감사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고 했습니다. 내가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감사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의 죄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이 배은망덕의 죄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범사에 감사한 비결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6:23) 여기서 "영생'은 죽어서 누리는 생명만이 아니고 현세와 내세에 누리는 참된 생명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무슨 일을 만나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항상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환란도 선을 이룹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5:3-4)

우리가 시련 중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시련이 우리 속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영생을 붙잡는 순금과 같은 믿음으로 제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6-7)

 

감사라는 영어(Thandkfulness)는 본래 생각(Thinkfulness)에서 나왔습니다. 즉 감사하려면 생각을 잘 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아 누리고 있는 영생의 복들을 생각해보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박애주의자 몬테피오레 경은 "생각하라 그리고 감사하라"는 것을 가훈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역경 속에서도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16:12)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 당연히 받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그것이 시련이라 할지라도 감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3. 감사 스타일

 

" 범사에 감사하라"고 한 바울 사도는 교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마다 서두에서는 반드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어떤 말씀에서는 감사라는 말이 없이만 은혜와 평강을 축원하므로 사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바울 사도의 편지의 스타일뿐만 아니라 바울 사도의 삶의 스타일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감사를 삶의 스타일 즉 삶의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감사는그 사람의 삶의 스타일이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여섯살 짜리 아이가 식사 초대를 받아 이웃집에 갔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그 아이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 아이가 솔직하게 "모두들 식사하실 때 기도하지 않으세요?"라고 하니까 주인은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얼버무렸습니다. 그때 아이는 "여러분은 우리 개를 닮았네요. 우리 개는 밥을 주면 그냥 시작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식사 때 기도하지 않는 것은 개의 삶의 스타일입니다. 성도는 식사 때만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는 삶의 양식을 가진 자입니다. 이러한 삶을 이루는 것이 우리는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