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네신앙훈련

제자훈련, 겸손으로 서로 허리를 동이라 _ 박동진 목사

코이네 2023. 4. 5.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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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읽을 말씀 : 베드로전서5:2-6

외울 말씀 : 벧전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기독교는 겸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들 높아지려고 하지 낮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의 약점이라도 잡힐까 더 완벽하게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완전하면 겸손해지기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겸손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의 말씀을 따라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교회 지도자에게

 

본래 장로는 각 교회가 세운 직분으로 사도들을 도와 교회의 행정과 관리, 목회, 설교 등을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어 모인 교회에서는 그들을 장로라고 불렀고, 헬라인이 중심이 된 이방 교회에서는 `감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장로와 감독은 같은 직분을 뜻합니다.

초대 교회 당시 사도들과 함께 장로들은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스스로를 함께 장로된 자라고 하면서, 사도로서의 고자세나 권위주의를 내세우지 않고 지방 교회 지도자들과 자신은 모두 같은 교회의 봉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겸손한 자세는 초대교회 사도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교회 장로들을 향해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2)

라고 권면합니다. 장로는 그 양무리를 맡은 자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충직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3) 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 무리를 돌보되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봉사하는 자세로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가진 책임 가운데 하나는 모든 양떼가 다 돌봄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양들 중에서 유난히 콧대를 높이고 다른 양들 앞에서 잘난 듯이 으시대는 양을 보는 것은 매우 민망스럽고 슬픈 일입니다.

교회에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육 정도에도 차이가 있고 교회 생활의 연륜에도 장단이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에도 사회적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는 다른 어떤 단체보다도 여러 형태의 상이한 배경을 가진 자들이 모인 집합체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을 잘난 사람들의 수준에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는 성경을 더디 깨닫는 분들도 있고 교리에 익숙치 못한 분들도 있으며 남들보다 재능이 뒤떨어지는 듯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그들의 지적 수준이나 경제력이나 혹은 직명을 내세워 미숙한 신자들을 얕본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초대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는 사도들을 포함해서 극히 기초적인 초등교육만 받은 자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겸손하게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난 사람이 없고 자기를 자랑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2. 교회의 성도들에게

 

주전 800년 헤시오드(Hesiod)라는 시인은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내가 소년이었을 때 어른들을 존경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와 자제를 모른다. 그들은 버릇이 없고 권위를 비웃으며 어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떤 종류의 인간들이 될 것인가?” 라며 당시 젊은이들을 비판합니다. 그런데 시건방진 젊은 것들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통해 계속 회자되고 있는 말입니다.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젊은 세대들은 그렇게 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의 젊은이들을 향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권면합니다. 세상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지식과 능력을 과시하며,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소 무례하고 또 어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려고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그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글을 쓸 당시 아마 그 교회에도 신구간의 갈등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갈등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어른이 장로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교회의 젊은이들을 향해서는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3. 서로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 사도는 교회의 장로들과 젊은이들을 향해 서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합니다.

허리를 동이라는 것은 하나의 천을 몸에 달아맨다는 뜻입니다. 당시의 노예들은 자유민과 구별하기 위해 하얀 앞치마나 스카프를 옷 위에 별도로 달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자들은 겸손을 자신들의 행위에 항상 달고 다님으로써 구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권면은 마치 노예들의 앞치마처럼, 신자들이 언제나 겸손의 앞치마를 입고 있어야 된다는 교훈입니다.

베드로는 겸손에 대한 권면을 줄 때, 아마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성찬을 가졌던 때를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 때에 아무도 손님들의 발에서 먼지를 씻기는 겸손한 일을 맡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물과 수건을 가져다가 제자들의 발을 닦아줌으로써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길 차례가 되었을 때, 베드로는 그 일을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13:7)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기억하며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깔뱅은 본 절에서 우리들이 서로 낮은 자세로 대할 때보다 더 아름답고 또한 아름다워지게 하는 것은 없다.”고 이 말씀을 풀이하였습니다.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성도들은 어른들 앞에서뿐만 아니라 서로서로 겸손해야 했습니다. 바울도 빌립보 신자들을 향해 겸손한 마음으로 각기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교훈하였습니다.(2:3). 우리들이 서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에는 모든 신자들이 귀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 귀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이 구절은 잠언 3:34절의 인용인데 야고보도 동일한 교훈을 가르치면서 사용하였습니다(4:6).

 

여러분 우리 성도들이 자신을 높이며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그렇게 구별하는 것도 우습지만, 사실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은 모두 다 주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까? 주님께서 필요하셔서 우리에게 그러한 자랑거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3:27).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능력 있는 손에 대해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성령께서 인간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마치 하나님께 손이나 눈이 있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주어진 축복을 말하면서 야곱의 전능자의 손이 요셉 위에 있다고 하였습니다(49:24).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구원될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한 손을 더하므로 바로가 그들을 보내리라”(6:1).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나님의 능력 있는 손에 의한 구원이었다고 찬양하였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15:6).

이처럼 하나님의 오른손은 그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오른손 아래에서 겸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질 않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또한 높여주십니다. (*)

 

 

by 박동진 목사(소토교회)